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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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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심장
민정순 (시인)
아! 이 붉은 화신(花身)
붉은 철필로 새긴 연서
누가 말리든 손사래 치든 가을은 이 깊이 와 버렸다. 사람을 사랑해 버린 것. 그렇지 않고서야 선홍빛 펄떡이는 심장을 백주에 저리도 뜨겁게 열어 보일 수 있겠는가 말이다. 분명 큐피트의 화살이 저 심장을 관통한 것. 울컥울컥 핏물 배인 연서를 쏟아내고, 받아든 사람들의 심장이 한꺼번에 쿵쾅거려 앉을자리를 찾지 못한다. 한 행 단 일곱 자의 촌철살인의 문자 기호로, 꽃의 몸으로 화한 가을심장을 노래한 민 시인도 저기 어딘가에 있다.
부연하지 않아도 사시사철 늘 붉은 심장이지 않았는가. 그 빛이 이 계절에 더 선명한 것은 우리들 심장이 그와 함께 심박수를 높이기 때문. 맥압을 드높이며 사랑의 메시지, 살아있음의 환희를 붉은 철필로 심장마다 새기고 있기 때문. 그 연서로 곁과 먼 데를 하나로 물들이며 이 계절의 끝자락에 가 닿기까지 절절한 가슴마다 찾아가고 있기 때문. 짧고 유한한 화신(花身)의 시간을 영원히 꺼뜨릴 수 없는 그리움으로 새겨놓느라 저리 붉디붉어졌다는 것.
사랑을 해본 이들은 안다, 온통 쿵쾅거리는 심장의 소리를 온천지간 온몸으로 듣게 된다는 것을. 그 소리의 빛깔이 저 선홍빛인 것. 화르륵 화신에 불붙이지 않아도 이미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것. 역설로, 함께 타오를 가슴을 만나지 못했을 때 미련 없이 낙화하겠다는 것. 붉은 심장으로 흩날리겠다는 것. 그러니 가을에 외사랑은 금물. 홀로 붉기는, 홀로 타오르기는, 홀로 낙화하기는, 홀로 흩날리기는, 속절없이 서럽고 서럽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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