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향수를 느끼기도 전에 통하지 않는 언어, 전혀 다른 문화에 익숙해져야 하는 머나먼 타국 생활은 쉽지 않다. 낯선 곳에서 뭔가를 이루기는 더더욱 들다. 웬만큼의 노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누엔티 베띠 씨의 고성군 다문화가족 미용사 자격증 획득 1호라는 것이 더욱 특별한 일이다.“처음 한국에 와서는 힘들었죠. 한국어도 할 줄 몰랐으니 혼자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남편이 있으니까 든든했습니다. 미용사 자격증을 따고 싶다고 했을 때도, 공부하는 동안에도 남편이 제일 큰 힘이었어요.”미용사 자격을 증명하는 ‘국가기술자격증’에 적힌 이름은 베트남 이름인 누엔티 베띠가 아니라 원하나, 한국 국적 취득 후 생긴 한국어 이름이다.결혼 7년차인 하나 씨는 여섯 살 형록이와 10개월 지원이 남매의 엄마다. 형록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여유시간이 생겼다. 뭔가를 배우고 싶어 고민하던 끝에 손으로 하는 걸 좋아하니 미용을 배우면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미용사 자격증을 위해 공부하고 싶다는 뜻을 남편에게 전했을 때 남편 김종운 씨는 적극 찬성했다. 남편은 “워낙 야무진 아내이기도 하지만 꿈과 목표를 갖고 노력한다는 자체가 감사했다”고 한다.“사실은 필기시험에서만 10번 정도 떨어졌어요. 실기는 연습하면 되지만 필기는 1년을 준비해야 했어요. 한국어로 된 문제에다 매번 문제도 바뀌니 저한테는 꽤 어렵더라고요. 최종합격통지를 받고 어찌나 감격스러웠는지 몰라요.”큰아이가 5살 무렵이었으니 손이 많이 가는 시기에 공부했다. 저녁까지는 줄곧 아이를 돌보고 밤늦은 시간에서야 공부할 수 있었다. 때로는 새벽 네다섯 시쯤 일어나 아이가 깨기 전까지 공부했다.
남편 종운 씨는 주말이면 휴식 대신 형록이 손을 잡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집에서도 자기 전이면 늘 책 두세 권씩을 읽어준다. 그 덕분인지 형록이는 말문도 빨리 트였고, 생각도 또래에 비해 깊다.하나 씨도 형록이에게 책을 읽어준다. 가끔 어려운 어휘가 나오면 아이가 잘 때 사전을 찾아보며 공부했다.자격증을 따면 미용사로 일하고 싶었다. 미용실을 차릴 생각도 했다. 예상치 못하게 둘째 지원이가 생겨서 미용사로서의 삶은 조금 미루기로 했다.하나 씨는 인터뷰 중간중간에도 “대단한 일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 했다. 하지만 아이를 기르면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은 절대 예사일이 아니다.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고, 가족들의 응원과 협조도 중요하다. 그래서 하나 씨는 남편이 더 고맙다.“한국에 먼저 와있던 사촌언니가 형부 직장에 괜찮은 사람이 있다면서 소개해줬어요. 나이차이도 많이 나고 아주 잘 생긴 얼굴은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이 막 가더라고요. 이 사람이라면 내가 평생 믿고 서로 이해하면서 응원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오로지 남편 하나 보고 택한 한국행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이제는 법적으로도 한국인이 됐다. 남편은 여전히 말 한 마디 함부로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도 않는다. 늘 아내를 이해하고, 아내의 입장에서 생각한다. 그러니 싸울 일도,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돈을 버는 것도 좋지만 제가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게 미용사였고 자격증을 땄으니 다행이에요. 꿈을 이루기 위해 차근차근 노력하는 멋진 사람이 될 거예요. 취직도 좋지만 기술이 있으니까 어르신들을 위해서 미용 봉사도 하고 싶어요. 저도 고성군민이니까 고성을 위해서 뭔가 하고 싶거든요. 고성군 다문화 미용사 1호 원하나, 기대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