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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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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집
조영래 (시인)
밤새 바람이 일고
수많은 생각들이 쌓인다
눈을 떠보면
지붕도 기둥도 없는
모래 위의 집 한 채
바람(風)이 바람(希)이 되지 못하고
아하, 바람의 집은 저렇게 생겼구나. 그의 얼굴도 손도 발도 형체도 본 적 없어 궁금했다. 너무나 단순해서 심오한 물음을 묻는 진리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그’라는 말. 잠깐 스치고 지나간 잎사귀나 가지의 시간은 있겠으나 그에게 머물기도 기거하기도 하는 집이 있는 줄은, 가끔은 허공에다 그의 몸을 뉘었으리라는 생각은 했으면서도…… 몰랐다.
바람의 옷을 빌려 입은, 인생노선에서 우리의 소관이 아닌 것들을 향한 뿌리 없는 생각들이, 의미와 초월성을 추구하는 신기루 같은 자긍심이나 행복감들이, 유토피아나 파라다이스나 로맨틱 로맨스를 꿈꾸다 쿵쾅대는 가슴들이, 마음을 뒤흔드는 끝도 없이 차오르는 부끄러움이나 그리움들이, 모래알처럼 저마다 등을 돌려 서걱거리는, 잠 앗겨버린 이 계절의 밤.
보라. 붙잡힌 또는 붙잡은 우상들로 쉬지 못하는 마음이 밤새워 지은, 안전이나 통제를 흩어놓는 내면의 골리앗들, 이를테면, 두려움, 거절감, 안일함, 분노로 난분분한, 진지하면 할수록 슬픈 손길들이 지었다 허물고 허물었다 짓기를 수 천 수 만 번씩 한, 바람(風)이 바람(希)이 되지 못한, 지붕도 기둥도 없는 모래 위의 집 한 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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