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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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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
류정운(시인)
기도하게 하소서
그 무엇이든, 내려놓게 하소서
곧 밤이 오리니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크게 지어졌는지 우주로도 채울 수 없다. 채우고 채워도 채워지지 않을 마음의 블랙홀을 채우고자 욕망하는 애초 ‘슬픔’인 우리들의 생. 그 생의 비애를 직면하며 내려놓을 수 있기를 기도하는 마음은 그러므로 저 ‘황혼’만큼이나 붉디붉고 절절하다.
모든 것이 절실하게 다가오는 황혼녘(김인애-황혼녘). 마지막을 예견하여 준비할 수 있는 절호의 시간에 내려놓기를 기도하는 고결함이란. 아쉬움이나 안타까움을 동반한 자포자기적 심정으로가 아닌 능동적으로 자원하여 내려놓기를 기도하는 그 고매함이란.
궁극적으로 자신이 스스로는 내려놓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차린 이들만이, 공수래공수거라는, 저 고색창연한 만고불변의 생의 진리를 체득한 이들만이, 황혼의 날에 두 손을 비우고 비워진 두 손을 모아 모든 것 내려놓을 수 있기를 기도할 터이니 참으로 그 지혜롭고 아름다운 자세를 무엇과 견줄까.
뜨거운 폭염의 날들을 견디며 그렸던,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가을이 우리들 곁으로 왔다. 거두기도 비우기도 하는 황혼의 계절인 가을에 다형은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김현승-가을의 기도)하고 간구했다. 영혼을 공명하는 겸허한 모국어로 채워주시기를, 오직 한 사람을 택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절대자와의 대면을 위하여 홀로 있기를… 우리는 무엇을 기도할까. 생의 결산을 해야 하는 밤이 곧 오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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