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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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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이미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를 겪으면서 폐교가 줄줄이 생겨났다. 우리와는 달리 도쿄 도심 한복판에서도 폐교가 생기기 시작했다. 관리지 않은 폐교는 흉물로 방치되기 일쑤였다.그러나 최근 10년 사이 폐교가 새생명을 얻기 시작했다. 문화예술센터로 지역주민들의 사랑방이자 예술교육, 예술인들의 창작공간으로 활용되는가 하면 폐교를 리모델링해 내부에는 일본의 장인들이 일본산 나무들을 깎아 만든 친환경 장난감들로 가득히 채워 이제 연간 15만 명이 찾아오는 체험장이 된 학교도 있다.
# 40년 넘은 폐교가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
애니메이션, 전자기기 회사가 밀집된 지역으로 잘 알려진 아키하바라. 지금도 전자제품을 사기 위한 각국의 발길이 이어진다. 그러나 1970~80년대 호황기를 맞이한 아키하바라에 상가와 회사들이 늘어나면서 주택가는 오히려 줄었고 덩달아 이곳을 터전 삼아 생활하던 원주민들이 감소했다. 거주민이 줄면서 학생수도 당연히 적어졌고 아키하바라의 학교들은 문을 닫기 시작했다. 도심에서 인구공동화가 일었다.3331 아츠 치요다는 일본의 중심 도쿄,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구가 오가는 아키히바라와 우에노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모르고 간다면 지금도 학생들이 다닌다 해도 믿을 법하다.다만 작은 공원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이야기 나누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학교가 아닌 ‘특별한 공간’임을 알 수 있다. 3331 아츠 치요다는 원래 렌세이중학교(練成中学校)였다. 2005년 렌세이중학교는 폐교됐지만 40년이 넘은 학교건물은 거의 원형대로 유지 중이다.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의 건물은 교실은 물론 강당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수도시설과 복도의 마룻바닥, 교실의 미닫이문조차 학창시절 보던 그 모습이다. 건물 전체에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입구로 쓰이는 공원이 실은 건물 뒤편 수영장이었다는 정도다. 1층에 들어서면 향긋한 커피향과 함께 아기자기한 소품과 문구에 탄성을 지르는 일본인 특유의 감성을 만난다. 그리고 또 한쪽에서는 한창 동창회가 진행 중이다. 렌세이중학교가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도쿄로 이주해온, 우리나라로 치자면 향우회와 비슷한 모임이다. 아츠 치요다가 학교였던 시절에는 현관이었을 로비를 지나면 본격적인 전시공간이 펼쳐진다. 기자가 3331 아츠 치요다를 찾은 6월의 주말에는 SNS를 통한 소통과 만남, 사랑에 대한 주제로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2층 체육관에서는 마을 대항 농구 경기가 한창이었다. 주말이면 주민들은 체육관에서 배드민턴, 농구 등 다양한 경기를 진행한다. 때로는 전시회가 강당에서 열리기도 한다.복도에서 만난 이시다 씨는 “주민들이 이용하기 쉬운 공간이 마을에 있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라며 “교육공간에서 예술공간이자 체육공간으로 거듭난 3331 아츠 치요다 덕분에 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는 동시에 주민간 연대의식이 강화된다”고 말했다.2층에는 사무공간들은 물론 크고 작은 갤러리와 공방들이 자리하고 있다. 교실을 반으로 나눈 작은 전시실에서는 세계 각국의 작가들이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선보인다. 흔히 볼 수 있는 전시가 아니라 먹을거리가 인체 각 기관에 미치는 영향을 형상화한 갤러리도 있고, 스탠딩마이크에 웨딩베일을 씌워놓은 조형물도 있다. 2층 전시실에는 강석호 작가의 트랜스 소사이어티 프로젝트 작품들이 전시돼있다. 건축 설계도를 흰개미가 갉아먹는 과정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 전시실에서는 흰개미가 파먹은 다양한 작품들의 원본이 전시 중이었다. 큐레이터 김시현 씨는 인간의 입장에서 흰개미의 습격은 파괴고 소멸이지만 흰개미 입장에서는 새로운 사회의 창조라는 점을 보여주며 다른 관점에서 세상에 접근하자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설명했다.큐레이터 김시현 씨는 “3331 아츠 치요다는 개성 있는 작가들의 작품 전시는 물론 창작활동공간으로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예술의 장”이라면서 “누구에게나 익숙하면서도 추억이 어린 학교라는 공간에서 예술의 문턱을 낮춰 주민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예술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허물고 작가들의 예술세계는 존중받을 수 있어 독특하면서도 편안하고 효율적이면서 창조적인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 지역민의 참여 가능성이 허가 기준
3331 아츠 치요다에는 40여 개의 문화단체가 입주해있다. 한 해에 개최되는 이벤트만도 1천 건이 넘는다. 아동교육프로그램은 물론 전시와 파티, 패션쇼까지 다양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담은 공간으로 운영된다.총괄디렉터 나카무라 마사토 씨를 비롯해 지역담당매니저, 관리직, 회계 및 총무,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홍보, 예약 코디네이터, 매장 코디네이터와 국제코디네이터 등 모두 17명의 스태프가 3331 아츠 치요다를 이끌고 있다.아츠 치요다의 행사 허가 기준은 예술의 수준이나 화제성이 아니다. 시민을 위한 예술인지, 시민들이 얼마나 참여할 수 있을지가 행사 허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이것이 바로 연간 100만 여명이 3331 아츠 치요다를 찾는 이유다. 또한 아트(Art) 치요다가 아닌 아츠(Arts) 치요다는 예술을 복수 형태를 센터 이름으로 사용한 이유이기도 하다.나카무라 마사토 씨는 “공공미술은 지역주민과 함께 해야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며 “학교에 보내는 것도 지역주민이고 학교를 지킨 것도 지역 주민이며 주민들이 있었기에 다양한 커뮤니티 형성한 만큼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공간을 꾸린다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그의 말처럼 3331 아츠 치요다는 예술공간임과 동시에 지역주민들을 위한 열린 공간이다. 1층부터 3층까지가 전시와 창작을 위한 공간이라면 옥상의 도심 정원은 유기농 채소를 재배하는 농장이다. 가족이나 친구들이 함께 기른 채소를 맛보는 것도 주민들에게는 소소한 즐거움이다.
# 공공지원 없는 민설민영 방식
3331 아츠 치요다는 공공지원 없이 민간에서 독자운영하는 민설민영(民設民營) 방식으로 운영된다. 학교였던 건물은 치요다구의 소유지만 운영은 민간이 맡고 있다.아츠 치요다는 개관을 위해 투입한 초기 리모델링 비용 20억 원을 제외하면 공공지원이 전혀 없다. 치요다구에서 임대한 센터의 공간을 작가, 주민들에게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단체가 입주한다. 입주단체에서 나오는 임대료와 다양한 상품 판매 등의 수익으로 운영된다.센터 입장에서는 공공자금이 투입되지 않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운영이 가능하다. 그러니 전시, 운영에 자율성이 확보된다. 공공전시관이나 미술관은 운영 상의 효율을 위해 폐관시간을 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민설민영 방식은 24시간 언제든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치요다구 입장에서는 골칫덩어리 폐교를 활용해 지역민에게 문화적 기회를 제공할 수 있고 센터 측에서 매년 내는 임대료 수익을 얻을 수 있으니 구의 재정적 측면에서도 득이다. 3331 아츠 치요다의 색다른 전시와 체험 등이 입소문이 나면서 운영수익이 해마다 늘어나니 흑자경영인 셈이다. 나카무라 마사토 씨는 “흑자경영은 도쿄가 대도시여서 방문객이 많기 때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작은 도시일수록 문화예술을 위한 시설이 적기 때문에 민설민영 형태의 문화공간이 늘어나야 하고 이왕이면 버려지는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 재정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3331 아츠 치요다는 폐교 활용의 새로운 모델”이라고 말했다.과거 에도시대에는 ‘에도잇폰지메’라는 풍습이 있었다. 축하하는 자리에서 감사를 표하기 위해 “이요~오”라는 구호와 함께 박수를 세 번 치고 마지막에 또 한 번 박수를 더하는 것이다. 3331 아츠 치요다는 여기서 착안한 이름이다. 3과 3에 또 한 번의 3을 더하면 9가 된다. 9는 일본어로 괴로움과 동음이의어다. 마지막 손뼉 한 번은 괴로움을 떨치는 의식이자 9(九)에 한 획을 더해 동그라미(丸)가 된다고 여긴다. 버려질 뻔했던 공간이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나면서 지역민들이 하나로 연결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 면에서 3331 아츠 치요다는 지역민들의 소통을 위한 폐교 활용의 우수한 모델이 분명하다.
“본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