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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땅의 숨은 보화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18년 06월 29일
ⓒ 고성신문
한반도 남녘에 바다를 면한 아름다운 풍광의 암자 세 곳을 들면 다음과 같다. 남해 보리암, 여수 향일암, 그리고 고성 문수암이다. ‘남해안 3대 절경’이라
도 부른다. 대개 절이나 절에 딸린 암자는 산속의 명승을 찾아 터를 잡는 것이지만, 이렇게 바다를 바라보거나 그에 면대하여 도량을 짓는 연유는 여러 가지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 발품을 팔아 이 암자들을 찾아가 보면, 굳이 그 까닭을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보리암과 향일암은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산길도 좋거니와 바로 눈 앞에 펼쳐진 큰 바다가 마음부터 시원하게 한다. 문수암은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청량산 정상에 자리 잡고 있어서 전망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이 산마루가 살큼 안개에 잠기거나 먼바다에 모색이 짙어가는 때이면, 문득 정갈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을 더하여 자신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된다. 풍경이 그윽하고 맛이 깊기로는 고성 개천의 옥천사가 아닐까 한다. ‘사찰 건축의 박물관’과도 같다는 전문적 표현은 멀리 제쳐두고라도, 그 절에 이르는 길과 부드러운 산세, 안온하고 균형 있게 들어앉은 모양새 등이 언제나 발길을 흡족하게 한다.
필자는 어린 시절 어머니 손을 잡고 이 절과 이 절에 딸린 청련암을 다녔다. 어머니는 시오리 먼 길을 걸어 불전(佛殿)을 찾는 그 걸음 또한 공덕의 하나이며, 절의 문간에서 손을 씻고 입을 가시는 것은 세속의 먼지를 털어내는 일이라고 가르쳤다.이 시절의 기억은 일생을 두고 반추하게 되는 귀한 장면들이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가슴 속에 품고 사는 이의 영혼은 결코 피폐해지지 않는다. 더욱이 거기에 동심의 순수와 어머니의 그림자가 겹쳐 있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필자가 고성신문에 글을 연재하기로 하고 쓴 첫 칼럼에 ‘고향은 어머니다’라는 제목을 붙인 바 있거니와, 그 고향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이와 같은 풍광을 통해서다. 고성 땅 곳곳에는 가까이 살면서도 미처 발길을 내디뎌 보지 못한 명소들이 많다. 하긴 오늘에 이르러 승용차로 수십 분이면 족한 거리지만, 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교통편 자체가 없었던 터이라 언필칭 지척이 곧 천리였다.
이번 글에서는 고향 땅 고성의 유려한 산수 자연 속에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숨기고 있는 사적(史蹟)들을 지역별로 살펴보기로 한다. 고성읍을 중심으로 연희되던 오광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로, 상리면의 모내기 소리 농요(農謠) ‘둥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84-1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가면에 있는 갈천서원(葛川書院)은 조선조 숙종 39년(1713년)에 창건되었고 이암, 어득강, 노필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는 곳이며 이는 도 문화재자료 제36호다. 그런가하면 여러 곳에 임진왜란 또는 정유재란에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의인들의 사당이 있다. 이러한 정신적 유산이나 의기(義氣)의 흔적을 뒤따라가다 보면, 고성의 옛사람들이 올곧고 충직했음을 실감하게 된다.동해면에 있는 호암사(虎巖祠)는 임진·정유 양란 때 출정하여 공을 세운 천만리(千萬里) 공의 신위를 모신 사당으로 도 문화재자료 제39호다. 구만면에 있는 소천정(蘇川亭)은 임란 의병대장 최강(崔堈) 공을 기리는 사당으로 도 문화재자료 제160호다. 그런가하면 삼산면에 있는 망사재(望思齋)는 임란 의병대장 운정(雲汀) 박애상(朴愛祥) 공과 전사한 남편을 따라 순절한 부인 어씨(漁氏)를 기리는 사당이다. 영현면에 있는 연화교풍회관(蓮花矯風會館)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농촌 계몽과 개혁운동을 시작했던 취산(翠山) 서호직(徐浩直) 선생을 기리고 그 발원지를 보존한 곳이다. 
이처럼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숨결과 그 자취가 이 고장 곳곳에 서려있다.먼 곳까지 산하의 동향을 바라보며 시원하게 열린 전망을 누릴 수 있는 고지에 하일면의 좌이산(佐耳山)이 있다. 해발 392미터로 남해안의 명산이라 불리는 그 산정에는 지금도 36미터 길이의 원형 석축으로 된 봉수터가 남아 있고 그 곁에 봉수군(烽燧軍)의 막사 자리도 볼 수 있다. 이 봉수대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기록이 전하며 도 기념물 제138호다. 마암면에 있는 석마(石馬) 두 기(騎)는 화강암으로 된 소박하고 투박한 석조 형상인데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고 주민들은 이를 석신(石神) 또는 마장군(馬將軍)으로 호명해 왔다. 각기의 길이가 1.5미터와 2.1미터이며 도 민속자료 제1호다.풍경이 그냥 그대로이면 사물에 그치나, 거기에 마음을 담고 세월을 담으면 역사가 된다. 이러한 유적을 소중히 여기고 보살피며 또 동시대에 하나의 교범으로 삼는 일은, 각자 개인에게도 긴요하지만 군의 정책적 뒷받침 아래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추동력이 발양되어야 한다. 과거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과 같이, 오랫동안 삶의 근본으로 전해오는 유적에서 현실의 거울을 얻지 못하는 지역사회는 정서적 탄력과 정신적 건강을 담보하기 어렵다. 산세가 맑고 땅이 순후하며 바다 또한 풍성한 고성 땅에 이렇게 많은 보화가 잠복해 있는 줄을, 필자도 예전엔 미처 몰랐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18년 0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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