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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고성신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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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소녀에게 가난은 벗어날 수 없는 굴레 같았다. 형제 많은 집 딸이라 육성회비도 제때 못내기 일쑤였다. 공부를 잘하지도, 아주 예쁘거나 부잣집 딸도 아었던 소녀는 선생님에게서 예쁨받을 수 없었다. 화가 났고 선생님이 미웠다. ‘나중에 혹시라도 내가 선생님이 되면 저러지 말아야지’ 생각했다.소녀는 교사로 성장했다. 여중생 시절로부터 30년이 흘렀다. 어느 날, 학교로 전화가 걸려왔다. 미안하다는, 그 시절의 선생님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선생님이 그때의 저는 늘 선생님을 째려보고 있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서로 이해하지도 배려하지도 양보하지도 않았던 거예요. 반면교사라고 하잖아요. 그 기억이 오히려 제가 교직생활 35년을 넘기는 동안 거름이자 기둥이 됐어요.
내 아이들을 이해하고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제가 늘 되새기는 교사의 첫 번째 자질이지요.”대성초등학교 전명옥 교사는 고성군내에 한 명뿐인 초등학교 ‘수석교사’다. 수석교사는 교감이나 교장으로 승진할 수 없다. 하지만 교사의 교수·연구활동을 컨설팅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교수법을 개발하고 교육현장에 적용할 수 있다. 담임을 맡지 않아 수업연구 외 일반업무는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연구와 컨설팅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일반교사의 절반 정도만 수업한다.일반교사로 연구부장일 적에는 하루종일 일하고도 일거리를 싸들고 퇴근해 새벽 2~3시까지 일하기 일쑤였다. 5일을 입원하라는데도 사흘만에 퇴원해 학교에 갔고, 명절 연휴에도 계획서를 만들어야 했다.“일반업무가 많아지면 교사가 아이들의 감성을 챙길 수 없어요. 아이들을 살펴볼 시간이 없거든요. 수석교사는 교수학습법을 연구해 적용하고, 후배교사들에게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수업방식을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어요. 무엇보다도 퇴임하는 날까지 아이들과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이 제일 좋더라고요.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일이잖아요. 마지막까지 교사로 남고 싶었어요.”선생님은 있어도 스승은 없는 시대라고들 한다. 스승은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어쩌다 한 번, 스승의 날쯤에나 들을 수 있는 말이 돼버렸다.
세대가 빠르게 바뀌는 중이다. 전명옥 수석교사 역시 시행착오가 있었다. 아이들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해 1년을 힘들게 보냈다. 아이들의 눈에 전 수석교사는 ‘나이 많은 선생님’일 뿐이었다.하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손을 내밀었고 아이들은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 한 해를 꼬박 함께 지냈을 때 ‘학급 아이들’은 ‘내 아이들’이 됐고, ‘할머니 같은 선생님’은 ‘우리 선생님’이 됐다.까마득히 어렸던 고 1 시절에 학교에서 적성검사를 했다. 초등학교 교사가 1순위였다. 막연하게 교사를 하고 싶었던 소녀 전명옥은 기뻤지만, 가난했기 때문에 이루기 쉽지 않은 꿈이었다. 중학생 시절 겪은 선생님의 차별대우도 교사의 꿈을 접는데 한몫 했는지도 모른다.“형제는 많고 가진 건 없는 집의 딸이었으니 대학은 언감생심이었어요.
부모님도 대학 안 보내주겠다고 엄포를 놓으셨지요. 하지만 대학에 다니고 있던 언니오빠가 지원군이 돼 무조건 대학에 보내야 한다고 우겼어요. 타협한 게 학비가 싼 교대였습니다. 그런데 문득 소녀시절 꿈이 교사였다는 걸 깨달았죠. 제가 갈 길이었나 봐요. 지금은 그때 대학 진학을 반대하던 어머니가 저를 제일 예뻐하세요. 선생하는 우리 딸, 이라시면서요.”35년 전 초임교사 시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전명옥 수석교사는 그 중에서도 아픈 손가락이 있다. 6학년 담임을 맡았을 당시 유독 엇나가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늘 위태위태했다. 학교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진 않을까 불안했다. 아이를 붙들고 싶었다. 고민하다가 매일매일 전화하는 방법을 택했다. 오늘은 네가 이렇게 했을 때 선생님은 기뻤단다, 너는 이러저러할 때가 참 예뻐, 무작정 칭찬했다. 아주 작은 칭찬거리라도 찾아내려 애썼다. 그녀의 정성에 아이가 먼저 항복했다.
밝은 얼굴로 졸업했다.처음부터 그녀가 승진에 관심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고성에서 나고 자라 고등학교까지 고향에서 보낸 그녀는 모교 교단에 서고 싶었다. 승진점수를 받을 수 있는 벽지학교를 거절하고 2000년 모교인 율천초등학교에 왔다. 아이들과 고성농요를 불렀고, 판소리도 배웠다. 승진보다 더 즐거운 일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아이들을 대할 때면 늘 아이들의 생각을 기다려준다. 모범답안을 제시하기보다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 스스로 답을 찾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또한 수석교사로서 교사들의 수업 컨설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질타보다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자 최고라고 생각한다.“물론 공부와 성적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는 것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이들을 대할 때면 항상 아이들의 입장과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초등학교 교사는 아이들의 감성과 이성을 자라게 하는 사람이에요. 우리 교사들은 아이들의 방향키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바른 생각을 하고 자라는 아이들은 바르게 자란다는 전명옥 수석교사의 말처럼 다음 세대를 이어갈 아이들은 바르게 자라나기를. 또한 바른 아이들을 길러내는 바른 교사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