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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고성신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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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늘 고향을 두고 자신이 떠나던 때의 모습으로 있을 것이라 착각한다. 마치 고국을 떠나 해외로 이민 간 사람들이, 떠던 그 시기의 모습으로 고국을 간직하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이는 어쩌면 고향과 고국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 추억의 자리를 잊지 못하는 마음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어디 고향만큼 안온하고 또 오래 간직할 만한 공간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떠난 자의 기억이요 감상이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변하는데 오래 전 삶의 터전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 턱이 없다. 그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논의는 한갓 뜬구름 잡는 언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필자가 운영 책임을 맡고 있는 경기도 양평군의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에서 북한강변을 따라 거슬러 오르다가 서종면 문호리에서 오른쪽 중미산 기슭으로 꺾어 들어가는 곳에 있다. 그런데 그 북한강변이 예로부터 소문난 명품 드라이브 코스였다.
강심이 가까이 바라다 보이는 물가에 수양버들이 줄지어선 이 길은, 관상하기에는 참으로 좋았으나 여름철이 되면 물이 넘쳐 교통이 불편했다. 결국에는 길을 높여 강물과 멀어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2차선 도로로 변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지만 지역 주민의 생활환경이 우선이라고 할 때 이를 납득하지 않을 수 없었다.누구의 고향이든 그곳을 떠나 그리워하는 사람과 그곳에 살며 삶의 밭을 일구어야 하는 사람 사이에는 그러한 간극이 있다. 필자는 내 고향에 살고 있는 가까운 이에게 짐짓 이렇게 물어 보았다. 지금은 중앙과 지방의 격차가 여러 부문에서 해소되었는데, 지방에 거주하면서 가장 아쉬운 대목이 뭐냐고. 그는 단박에 그리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문화생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 절목에 있어 크게 불편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으나 수준 있는 문화생활은 근본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는 쉽사리 그 논리에 수긍했다. 동시에 정말 그 해결의 방안이 없을까도 깊이 생각해 보았다.한국사회구조의 특성 상 지역 주민이 이 문제를 연구하고 계발하여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기는 당초부터 불가능하다. 이는 군정(郡政)의 책임이요 더 나아가서는 국가 문화당국의 책임이다. 우선은 상황을 바꾸어 갈 인식의 변화와 그것을 가능하게 할 인적 자원의 확보,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예산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이 문제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아이디어와 시스템의 개발이 제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이 어찌 개인 또는 민간의 차원에서 가능하겠는가. 군정·도정·국정의 담당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그 방안을 탐구하고 방향을 도출해야 한다. 물론 이보다 앞서는 쟁점은 허약해가는 농촌의 실정을 파악하고 군민들의 삶이 향상될 수 있도록 하는 경제적 측면의 대안일 것이다. 잘 사는 일보다 더 직접적인 관심을 촉발할 안건은 없다. 문제는 밥 먹는 일 만으로는 삶의 질이 고양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사람이 느끼는 행복의 지수는 외형적 물리적인 것보다 내면적 정신적인 것에서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그러기에 문화요 문화생활이다. 텔레비전 시청이나 오디오를 통한 음악 감상과 같은 범박한 차원의 문화가 아니다. 문화예술의 원본과 진품을 직접 체험해야 심리적 충족도를 높일 수 있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공히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프로그램에 관심을 더해야 한다. 그것도 구두선(口頭禪)이나 공치사에 그치지 않는 실효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우리 고성에는 많은 문화적 자원의 원자료들이 있다. 오광대놀이나 월이 설화와 같이 소중한 향토문화가 있는가 하면, 그동안 공들여 확립한 공룡 세계엑스포와 디카시 같은 새로운 콘텐츠도 있다. 이들을 망라하여 군민의 문화적 요구에 따른 전시와 강연과 공연 등을 실질적 체험의 기회로 개설해 나갈 수 없을까. 특히 문화예술계 출향인사들의 재능기부를 적극 활용하면 예산상의 어려움도 크게 감소할 것이다. 그리하여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이나 고향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 함께 흔연하고 즐거울 수 있는 ‘문화 고성’의 내일을 기대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