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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고성신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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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게 꽃나무 가지에 연분홍 물이 오르고 있었다. 3월 말, 고성에서 보기 힘든 함박눈이 펑펑 내리며 깜짝 꽃샘추위가 찾아와 성급한 봄맞이에 후했는데 돌아서니 봄이 성큼 와있다.# 꽃비 내리는 무릉도원, 갈천리 벚꽃길고성읍 덕선리를 지나 대가저수지에 올라서면 달 없는 밤에도 환히 빛날 법한 벚꽃이 상춘객을 반긴다. 멀리 백운산은 아스라이 연분홍 띠를 두르고 있다. 대가면사무소 뒤, 주민들이 흔히 포강둑이라 부르는 복지관 뒤에서 시작되는 벚꽃터널은 백운산 천비룡사 입구를 지나 큰재까지 이어진다.
구불대는 산길을 따라 이어지는 벚꽃그늘은 볕을 온통 가린다. 시계를 보지 않으면 해가 지는 줄도 모를 것 같다. 바람이라도 살랑 불라치면 벚꽃잎이 반짝이며 흩날리는 광경이, 무릉도원이 이런 건가 싶다. 평소에는 절대 걷지 않을 십리 산길이지만 꽃비를 맞으며 걷다보면 금방이다.
# 연분홍빛 그늘 드리운 동화같은 대흥초아이들 웃음소리가 벚꽃그늘을 뚫고 흐른다. 유치원생들의 체육시간, 호루라기 소리가 섞여든다.
봄날의 학교는 온통 연분홍빛으로 눈이 부신다. 주민들은 오가며 분홍빛 그늘에 머물곤 한다.1950년대 태어난 졸업생들이 똑단발, 까까머리로 대흥국민학교에 다닐 적에도 봄날이면 벚꽃이 흐드러졌다니 수령이 60~70년은 족히 넘었겠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저 꽃그늘에 앉아만 있어도 신선놀음처럼 시간은 금세 흐른다.잔디밭에도 갓 새순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내를 뷰파인더에 담는 남편 입가에 꽃잎 같은 미소가 스민다. 분홍빛의, 벚꽃잎처럼 고운 치마를 입은 아내 얼굴에도 꼭 닮은 미소가 번진다. 대흥초등학교의 동화같은 오후 한때다.
#화려한 귀족의 꽃 튤립 가득한 플라워가든황금시대였던 중세 네덜란드에서 튤립은 귀족의 꽃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 귀족들은 튤립 구근 재기 경쟁이 붙었다. 좋은 튤립 한 송이는 돼지 8마리나 양 12마리 혹은 옷감 108㎏의 가격과 맞먹었다. 귀족의 꽃이 고성에 만발했다. 고성읍 농업기술센터 앞 플라워가든에는 7만 송이의 튤립이 만개했다. 노랗고 붉은 튤립이 봄볕을 받아 반짝인다. 색색의 꽃잎이 화려하기 짝이 없다. 얄팍한 튤립꽃잎이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400년 전 네덜란드의 귀족들이 왜 튤립에 그렇게 열을 올렸는지 알 것도 같다.
# 봄볕 사이로 바닷길을 걷는 솔섬하일면 솔섬.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봄꽃이 유독 흐드러진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먼저 봄소식을 알려오더니 노란 유채꽃 사이로 꿀벌들이 왱왱 바삐 날갯짓을 해댄다. 마음이 설레다 못해 아무리 메마른 감성의 소유자라도 울컥하게 만든다. 산과 바다를 품은 섬에는 흙냄새, 꽃향기가 어우러진다.바닷물이 빠지면 장여로 건너갈 수 있다. 사박사박 바닷길을 걸어 작은 꽃섬에 도착한다. 솔가지가 뿜어내는 은은한 향에 진달래의 분홍빛이 어른거린다. 갖가지 사연을 품고 있을 섬들이 장여와 어울리면 그림이 따로 없다. 봄날은 봄날이구나.농부들은 정직한 땀방울을 이마에 매달고 거름을 흩어 땅을 살 찌운다. 벌써부터 밤이면 개구리 소리가 들려온다. 살을 에던 바람은 한결 보드랍다. 가지 사이를 스치는 바람에 꽃잎은 꽃비가 된다. 이렇게 고성의 봄이 무르익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