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 큰 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식이 지난10월19일 오전 11시 문수암 광장에서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이 법전 대종사와 총무원장을 위시한 대종사 전국 사찰의 승려 200여 명과 신도 1천 여 명의 침묵기도 속에서 거행하였다.
다비식 중 남쪽하늘에 해를 둥글게 둘러싼 무지개가 갑자기 나타나 다비식의 엄숙함과 신기함을 더해 대종사 정천 큰스님의 법명에 어울리는 기적이 현시되어 다비식은 절정을 더하였다.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추도사에서 “정천 스님께서 항상 잠들기 전이나 일어나기 전에 머리를 쓰다듬어 보라. 삭발한 머리를 쓰다듬다 보면 자연스럽게 왜 출가했는지 출가의 뜻을 떠올리게 되고 초발심을 되새길 수 있다고 하여 출가수행의 바람직한 모습을 강조해 왔습니다”고 하셨고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법등스님의 조사에서 “大梅山에 매실이 익었습니까?
스님이 늘 강조하셨던 마음이 곧 부처인 즉심즉불의 세계가 如如하십니까?” 로 시작한 세연의 다함을 안타까이 여기는 절구이었습니다.
정천 스님의 속성은 영천이씨요 부산 동래 복천동 사람으로 17세에 출가하여 21세에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청담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수지를 받았으며 고성군 상리면 문수암에서 청담(종점) 성철(종점) 안락스님을 모시고 법전(현종정) 현오 혜명 혜정 혜연 등 과 함께 수행하였으며1955년(26세) 한국불교정화운동에 참여하시고 33세에 청량산 문수암 주지와 44세 쌍계사 주지 75세 해인 총림에서 대종사 법계 품서를 받고 2006년(77세) 10월 15일 세연이 다하여 열반하시었다.
정천 큰스님은 이 청담스님의 제자 중에 제자로 항상 청담 스님을 존경하고 법맥을 유지 계승하신 분으로 선승으로서 많은 중생제도에 일생을 바치었습니다.
정천 큰스님의 보현사 창건시만 해도 감히 보통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가파른 언덕을 경제적 여건도 되지 않으면서 시작할 때 많은 사람들의 걱정거리였지만 스님의 말씀따라 구원의 기도를 하면 어디선가 돈 소식이 들려와 보현사 창건과 황토방 승방과 납골당을 만들었고 특히 약사전을 창건하시어 하늘 아래 제1좋아 선남선녀들의 洗心하는곳으로 3사 순례지로 전국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천 큰스님께 배울 점 과 찬사는
첫째, 많은 스님들 중에는 아집과 我生이 심하여 부처님을 판 보시로 말년에 자기 절을 따로 장만하기 위해 다른 주머니를 차 신도들의 눈살을 찌푸리는 경우가 있지만 스님께서는 오직 佛事에 일념하여 한 우물을 판 일생은 많은 스님들의 본보기가 되며 우리들의 존경심을 일으키고 있다.
둘째, 우리고성의 명승지로 관광지인 문수암 3사를 이룩한 것은 우리고성의 누구도 이룩하지 못한 고성의 자랑이요 영원히 자손만대 고성의 재산이며 문화재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셋째, 스님께서는 약사전 창건을 시작할 때 3개월뿐 살 수 없다는 의사의 사형선고를 받고서도 내색하지 않고 돈 없음과 병고를 이겨 3년을 더 살고 기어코 완성하였다.
이 정천 큰스님이시여 이제는 아무 걱정 없이 다비의 불길을 따라 하늘에 뜻 둥근 무지개와 친구 삼아 영생 하시기를 빕니다. 불교 최후의 목적인 生의 流轉이나 천당이나 극락 등에 환생할 것이 아니라 환생자체를 하지 않는 苦의 종말을 기하고 有와 無를 초월하시기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