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학생이 주인이 되는 학교, 한국형 혁신학교
② 성취보다 성장을 먼저 생각하는 교육 디자인, 핀란드
③ 학생이 행복하기 위해 어른의 고정관념을 깬 덴마크
④ 자연 속에서 뒹굴며 배우는 실용주의 교육, 독일
⑤ 고성의 미래 경쟁력, 교육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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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한 지역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고 미래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다. 때문에 최근 들어 교육 혁신, 혁신학교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혁신학교는 교육 방식의 변화를 통해 학력보다는 능력 중심의 미래형 인재를 육성한다. 학교의 소규모화와 이로 인한 교육 공동화(空洞化)를 걱정해야 하는 고성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학생 개개인의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 혁신과 경쟁력 있는 혁신학교의 육성이다.
▣ 양산 화제초등학교
# 교과서가 없는 도떼기시장 같은 수업
읍내에서도 10여 분을 더 들어가야 하는 시골마을이다. 고성으로 치자면 대가면이나 거류면쯤 될까. 여느 시골학교가 그렇듯 밖에서 보니 조용하기 짝이 없다. 다른 학교들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복도 분위기까지 대체 무엇이 혁신이란 말인가, 싶을 때쯤 교실문이 열렸다. 책상은 이미 뒤로 붙어있고 아이들은 바닥에서 뒹굴고 눕고, 깔깔대고 소리를 지르는데 교사도 아이들을 제지하지 않는다. 도떼기 시장 같다. 그런데 수업 중이라고 한다. 화제초등학교는 그런 학교다.
1학년 수업이 한창 진행 중인 교실에는 교과서가 없다. 눈 앞에서 교실을 뒹구는 아이들의 얼굴이 교사가 직접 만든 책 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아이들은 학습주제를 놓고 역할극을 하거나 놀이수업을 진행한다. 교사가 큰 목표를 제시하면 세부 내용은 아이들이 스스로 의견을 내고,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며 토론해 결론을 도출하는 방식이다. 역할극이나 토론식 수업의 진행을 위해서는 일반적인 수업방식보다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된다.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했다.
그래서 화제초등학교는 블록타임을 적용했다. 보통 1교시가 40분, 쉬는 시간이 10분인 일반적 수업시간과 달리 80분을 연달아 수업한 후 중간에 30분의 블록타임이 생긴다. 오전 쉬는 시간이 한 번인 대신 30분인 것이다.블록타임이면 아이들은 자유롭게 운동장을 달리거나 자전거를 타고, 때로는 잠자리채를 들고 곤충채집을 나서기도 한다. 누구네 할아버지는 옥수수를 쪄다가 아이들에게 건네고 누구네 할머니는 과일을 따다가 교사들 간식으로 내놓는 시골 인심은 그대로다.
# 동문과 주민, 학부모의 힘으로 부활한 화제초
화제초등학교는 1937년 문을 연 평범한 초등학교였다. 대개의 농촌 소규모학교가 그렇듯 급격한 산업화를 겪으면서 학생수는 급격히 감소했고 급기야 2000년대 중반부터는 분교, 폐교 명단에 늘 이름이 올랐다. 농촌의 미약한 정주여건과 기반시설 부족이 불러온 결과였다.모교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동문들은 물론 주민들과 학부모가 나서 잔디밭을 조성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학생수는 다시 서서히 불어났다. 2015년에는 경남도교육청의 행복학교에 선정됐다.입소문이 퍼지면서 인근 부산에서 일부러 전학까지 오는 학교가 됐다. 지금은 가족 전체가 원동에 거주하거나 형제자매가 화제초등학교에 재학하는 경우가 아니면 일반 전학생은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
# 아이들을 존중하고 자율을 보장하는 교육
화제초등학교는 교과수업 외에도 학교의 대소사와 교내의 규칙을 학생들이 직접 결정한다. 3학년부터 6학년까지 50여 명의 학생들이 격주 월요일 한 교실에 모여 다모임을 갖는다. 다모임은 화제초등학교만의 의사결정기구다. 이를 통해 학생들의 의견이 모이면 5~6학년이 정리한 후 교사들과 다시 한 번 의논하게 된다. 교사들 역시 다모임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이렇게 만들어진 학교의 규칙이나 계획은 실생활에 적용하게 된다. 실제로 지난 5월 화제초등학교 학생들은 다모임을 통해 현장체험학습 계획을 세웠고 학생들의 의견에 따라 서울, 광주 5.18 현장을 다녀오기도 했다.박정화 교장은 “존중과 자율이 가장 큰 힘이고 그것이 바탕이 돼서 주체들이 협력하는 것이 화제초등학교의 운영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장은 “우리 학교 운영은 교육청이나 교장이 지시하는 하향식이 아니라 밑에서 위로 나아가는 상향식이다. 수업 방식은 교사가 중심이 돼 바꾼다. 무너진 공교육의 신뢰를 회복하고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가 혁신학교”라고 말했다.이러한 ‘혁신’이 가능했던 것은 민주적인 학교문화는 물론 아이와 교사를 존중하는 분위기, 나아가 사람을 존중하는 토대에서 수업과 학교경영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 창원 태봉고등학교
# 선입견을 버려라,
희한한 학교 태봉고학교를 들어서자마자 눈에 띄는 것이 총천연색의 머리다. 화장도 장신구도 자유로워 흠칫했다. 학생들의 발표가 이어지는 중인데도 어떤 아이들은 교실 문을 벌컥 열고 자유롭게 들락거린다. 창원시 진동면의 태봉고등학교는 2010년 개교한 공립 기숙형 대안학교다.대안학교에 흔히 갖는 선입견이 있다. 공교육에 실패한 아이들이 차선책으로 택하는 학교, 정규교육과정에 치중하기보다 아이들을 학교라는 울타리에 적응시키는 것이 우선인 곳. 그러나 그런 편견이나 선입견을 태봉고등학교는 거부한다.아이들은 자의적으로 태봉고등학교를 선택했고, 학교는 자유롭지만 엄격한 규칙이 존재하며, 학부모들은 아이를 태봉고에 보낸 것에 감사한다. 태봉고는 ‘희한한 학교’였다.
# 태봉이 가진 교육의 힘
‘자유’태봉고를 찾은 날은 LTI(Learning Through Internship·인턴십 교육방식) PT Day였다. 지난 한 학기동안 아이들이 동아리를 만들어 직접 계획을 세우고 다양한 체험활동을 진행했던 내용 그리고 자신의 활동을 스스로 분석하고 개선점을 찾는 일종의 보고회다.2학년 서경석 학생의 LTI PT가 진행됐다. 피아노를 치는 경석이는 음악에 관심이 많다. 그동안 틈틈이 작곡해온 뉴에이지 풍의 피아노곡을 이날 처음 친구들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경석이는 “이번 학기에는 하루 3시간씩 피아노를 연습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조금 부족했다”고 분석하고 “이번에 처음 작곡을 해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해 앞으로는 작곡도 열심히 공부하고 곡을 쓰는 연습도 더 많이 할 것”이라는 나름의 분석도 내놨다.아들의 발표를 들으며 내내 미소를 짓던 경석이의 어머니는 “태봉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 감사했다”면서 “항상 저 많은 생각들을 다 어쩌려나 노파심이 많았지만 태봉으로 진학한 후에는 아이에게 맡겨두고 있는데 오늘 와서 보니 아이가 알아서 할 힘이 생긴 것 같고, 스스로 삶을 정리해갈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며 얼핏 눈물을 보인다.이게 바로 태봉고등학교가 가진 교육의 힘이다.
태봉고등학교 교장실은 ‘교육사랑방’이자 온돌로 된 다실이다. 아이들은 언제든 교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차를 마시며 고민을 털어놓거나 벌렁 누워 쉬다 가기도 한다. 박영훈 교장의 호칭은 ‘교장선생님’이 아니라 ‘영훈쌤’이다. 학교의 모든 규칙은 매주 수요일 전교생과 교사가 참석하는 공동체회의를 통해 결정한다. 회의의 의장은 총학생회장이고, 학생들은 교사와 동등한 투표권을 갖는다.
학교 본관 뒤에는 간단한 가구 제작이나 수리가 가능한 목공 작업장도 있고, 그 옆에는 커피향이 은근히 풍기는 카페도 있다. 아이들이 직접 만든 액세서리와 생활용품들도 함께 판매하는 카페는 태봉아이들의 사랑방이다. 태봉 아이들은 카페에서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를 하고 때로는 회의를 하기도 한다.
# 학교를 넘어선 학교, 교육의 신뢰 회복
수백 명의 아이들이 모여 함께 먹고 자는 학교인데 어찌 문제가 없겠는가. 일례로 흡연문제를 보자. 흡연한 아이들에게 교사보다 친구들이 먼저 일정 시간에 다른 학생과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흡연하라고 주문하고 규칙을 만든다.
어른이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것에는 반발해도 친구들과 함께 한 약속은 지키는 것이 그 또래의 아이들 아닌가.박영훈 교장은 “프로그램보다 사람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박 교장은 “제도나 프로그램보다 어떤 마음을 갖고 다가서느냐, 아이들을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존중하는가에 성공여부가 달려있다”며 “아이들 대할 때 평등하게 대하는 마음,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명문학교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곧 민주주의 교육이 매우 살아있는 학교”라고 강조한다.
태봉고의 입학 경쟁률은 매년 2:1을 넘는다. 교육의 본질에 충실한 민주적 교육이 해답이었다. 태봉고는 개교 초반부터 소통과 공존, 민주주의를 추구했다. 대안학교지만 일반 학교를 거부하거나, 거부 당하거나 혹은 실패한 아이들 다시 말해 학교 부적응 학생을 중심으로 선발하지 않았다. 지역 상황에 맞게 다양한 아이들을 선발했다. 물론 일반 학교에 대한 상처가 있는 아이들이 대다수이기는 했다. 그러나 태봉에서 생활하는 동안 아이들과 학부모의 교육에 대한 신뢰는 서서히 회복됐다.태봉 아이들은 졸업한 후에도 학교를 찾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태봉의 교사로부터 조언을 얻는다. 선생 혹은 교사가 아니라 스승인 것이다. 그리고 교육의 본질을 찾은 것이다.태봉고등학교의 교육비전은 ‘학교를 넘어선 학교, 사랑과 배움의 공동체를 만들자’다. 태봉의 교육은 이미 학교를 넘어서있다. 이것이 바로 교육의 혁신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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