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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고성신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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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춘천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춘천은 춘천댐을 비롯하여 소양감댐과 의암댐으로 인해 인공호수가 많아 ‘호반의 도시’로 칭해지며 휴양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강과 더불어 넓은 들판이 있어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아 먹거리도 많을뿐더러 볼거리도 많다. 그러나 북한과 가까워 6·25 전쟁의 상흔이 많이 남아 있으며, 그 이전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지로 고려 건국과 관련된 설화를 많이 가진 곳이다.
‘떡 본 김에 굿한다’는 말도 있지않던가? 행사가 있어 춘천에 간 길에 전부터 가고자 벼르던 곳을 들렀다. ‘에티오피아 참전기념관’이다. 춘천에는 많은 볼거리가 있지만 꼭 집어 기념관을 찾은 이유는 얼마 전 모텔레비전 프로에서 유시민 작가가“에티오피아는 6·25 전쟁 때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파병을 해서 우리를 도운 나라로 우리나라를 도왔던수많은 외국군인들 중에서도 우리가 특히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다”라고 한 말 때문이었다.
무심하게 화면을 보다가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가슴 속에서 송곳으로 찌르듯 통증이 치솟아 올라왔다. 뼈만 앙상하게남은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매체에서보고는 불쌍한 마음에 필자 역시 몇년 전부터 그들에게 적은 성금을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그런데 유시민 작가의 말을 듣는순간 필자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의 성금은 불쌍함에 대한 자비가 아니라 당연히갚아야 할 은혜에 대한 보답임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 춘천에는 에티오피아 참전기념관이 있다
아프리카 대륙 한 쪽에 붙어 있는 외진 나라 에티오피아의 한국 전쟁 참전기념관은 춘천에 있다. 그런데 에티오피아는 춘천과는 직접적인 연고가 없는 나라이다. 꼭 인연을 따지자면 에티오피아 부대인 강뉴(Kangnew) 부대가 인근 지역에서전투를 자주 했다는 것이다.
강뉴 부대는 총 6천37명으로 미 제7사단에배속되어 춘천 근교인 화천과 철원양구 가평에서 총 253회의 전투를벌였다. 그리고 657명의 인명 피해가 있었다. 전투참가자의 10%가 넘는 희생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나라는 전쟁이 끝난 이후 국가재건에 바빠 우리를 도와주었던 그들을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 심지어어느 나라가 우리를 도와주었는지조차도 잊고 살았다. 그래도 우리 국민성이 그렇던가? 누군가는 그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챙기고 있었다.
춘천이 그런 도시였다. 춘천은 자신의지역에서 전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참전기념탑과 기념관을 세웠다.그리고 에티오피아와 자매결연을 하고 지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해왔다.국가가 잊고 있던 보은(報恩)을 일개지방자치단체가 해온 것이다.
기념관은 에티오피아의 전통 가옥을 본뜬 2층 건물이었다.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먼 나라의 기념관에 얼마나 손님이 찾을까 싶었는데 뜻밖에도 많은 관객으로 북적거렸다. 필자처럼 언론을 보고 찾아온 손님들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언론의 힘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많지는않았지만 전시실에는 당시 전투 상황 및 참전용사들의 사진과 용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풍물 전시실과교류 전시실에서는 낯선 땅 에티오피아의 풍물과 춘천시와의 교류 활동에 대한 자료들을 볼 수 있었다. 뼈만 남은 아이들만 살고 있는 가난한나라인 줄 알았던 에티오피아의 다른 면모를 처음으로 보았다.
6·25 전쟁 참전국은 21개국이다.그 중 직접 전투에 참가한 나라는 16개국이며 의료지원을 한 국가가 5개국이다. 그들은 수만리 떨어진 낯선땅 한국에 와서 목숨을 바치며 우리를 지켜주었다. 고마운 나라들이다.그래서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 중에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찾아 참전용사들에게 감사의 예의를 갖추었다.
그러나 큰 나라에만예의를 갖출 것이 아니라 기회가 된다면 우리 대통령이 에티오피아도방문하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손을 내밀면 좋겠다. 잘사는나라보다는 어려운 나라를 먼저 찾고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함께 가면좋겠다.사실 우리 국민들 대부분이 에티오피아를 잘 모른다. 에티오피아가아프리카 어디쯤에 붙어 있는지, 그들이 굶어죽든 말든 거의 관심이 없다. 참전국이라고 하지만 경제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않아 거의 왕래가없는 나라였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들의 은인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하늘에서 얼음(눈)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를 지켜준 사람들이다. 어떻게 그들을 잊을 수 있는가? 에티오피아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이다. 한때 우리나라보다 더 잘 사는 나라였지만 정쟁과 아프리카에 찾아온기아로 에티오피아는 세계 최빈국가가 되어버렸다.
이제 도움을 주는 나라에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나라로입장이 바뀐 것이다. 못사는 나라라고 무시할 것인가? 못살고 불쌍한 나라가 아닌 은혜를 갚아야 할 나라로에티오피아를 바라보아야 한다. 아울러 에티오피아뿐만 아니라 경제적어려움을 겪고 있는 필리핀이나 콜롬비아 역시 우선적으로 우리가 보은을 해야 하는 나라들이다.“우리가 어려웠을 때 도와준 나라들에게 신세를 갚는 게 도리가 아닐까 싶다”라는 유시민 작가의 말은 우리들에게 새삼 그들의 고마움을 생각하게 한다.
기념관 관람을 통해 참전용사들의 희생 정신과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주변가게에 들러 에티오피아 원산지에서가져온 커피를 마시며 그들의 고마움을 다시 한 번 새겼다.
# 춘천은 은혜를 잊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이다
이어 찾아간 곳은 장절공 신숭겸묘역이다. 춘천은 고려 건국 과정에서 특별한역할을 했다. 궁예가 세운 태봉국의도읍지였던 철원이 인근에 있으며,신라 말 혼란한 틈을 타서 새로운 국가를 꿈꾸는 영웅들이 몰려든 곳이춘천을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이었다. 그러다 보니 청평사 고려선원을비롯하여 고려와 관련된 유적지가많다. 그러나 그 중 백미는 고려 건국의 공신인 신숭겸 장군의 묘역이라고 할 것이다. 장군의 묘는 강원 춘천시 서면 방동리에 있으며 강원도 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숭겸 장군은 고려 태조 왕건의 의제(義弟)로 고려 건국 초기에 팔공산 전투에서 후백제군에게 포위 당한 왕건을 구하고자 왕의 옷을 입고 싸우다가 전사한 사람이다. 변복을 하고 급히 왕산(王山)으로 몸을 피한 태조는이후 신숭겸을 찾았으나 후백제군이머리를 베어가는 바람에 그의 시신을 온전히 수습할 수 없었다. 이에 태조는 그의 머리를 금으로 만들어 함께 매장하였다. 그리고 도굴의 위험을 우려하여 세 개의 봉분을 조성하였다.입구에 들어서니 평산 신씨의 후손들이 관리하는 건물이 묘소 옆에 늘어서 있다. 비록 왕릉은 아니지만 문중의 묘소라기에는 큰 규모였다. 신숭겸은 평산 신씨의 시조이다. 신숭겸이 태조 왕건을 따라 사냥을 나갔을 때 마침 머리 위로 세 마리의 기러기가 날고 있었다. 신숭겸은 태조가 말하는 대로 세 번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를 쏘아 맞췄다. 이에 태조가크게 칭찬하며 평산(平山)이라는 본관을 주고 기러기가 떨어진 근방의밭 3백 결을 하사하였다. 그러나 신숭겸은 춘천에 묻히면서 이후 후손들이 묘소 근처에 추모관을 짓고 관리하는 성지가 되었다.
해설사의 도움을 받아 유적비를 둘러보고 묘소를 찾았다. 야트막한 언덕 위에 세 개의 묘가 나란히 있었다. 전설처럼 어느 것이 진짜 묘인지는알 수가 없다. 다만 아직 도굴의 흔적이 없어 금으로 된 머리가 지금도 그대로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고 한다.
간혹 금을 탐낸 도적들이 도굴을 시도한 적이 있지만 그때마다 비바람과 함께 번개 천둥이 쳐서 도적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갔다고 한다. 묘소에 참배를 하고 춘천 쪽을 돌아보니 앞이 트이고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오는 게 풍수지리를 모르는 필자가봐도 명지(名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신숭겸은 전남 곡성 사람이었으며, 대구에서 죽임을 당하였기에 춘천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관향인 평산 역시 황해도에 있는 지명이다. 이렇게 춘천과 아무런 연고도 없는 그가 왜 춘천에 와서 묻혔을까? 이는 고려 태조 왕건의 보은(報恩)에서 나온 것이다. 신숭겸이 묻힌 곳은 우리나라 8대 명당자리 중의 하나로 일찍이 풍수지리의 대가였던 도선국사가 왕건의 무덤 터로 일찍부터 점찍어 둔 곳이었다. 다시 말하면 왕릉이 앉을 곳이었다. 그런 명당자리를 왕건은 기꺼이 신숭겸에게 내어준 것이다. 풍수지리의 과학적 근거를 잘 모르지만 묘소가 위치한 마을 이름이 ‘박사 마을’로 작은 마을에 유난히 학자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평산 신씨 집안 역시조선 후반기에 세를 떨친 명문으로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이 모든것이 자신의 후손에게 갈 부귀영화를 신숭겸에게 양보한 왕건의 음덕이 아닐까? 신숭겸의 호인 장절공(壯節公)은 임금이 내린 시호이다. ‘절의가 굳세다’, ‘마음이 곧고 의리가 있다’라는 뜻이다. 신숭겸의 의리를 높이 평가한 왕건 역시 의리가 있는 왕이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야박함이 넘치는 요즘 세상에 새겨볼 만한 일이다.신숭겸 묘역에 얽힌 일화나, 은혜를 잊지 않고 고마움을 기리기 위해세운 에티오피아 참전기념관은 우리모두가 함께 생각해볼 만한 것이다.
머리로 종을 쳐 뱀에게 죽을 청년을구해준 ‘은혜 갚은 꿩’의 설화가 있는 상원사도 인근에 있어 춘천은 ‘보은의 도시’라고 불러도 될 만큼 착한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하지 않을수 없다. 은혜를 모르면 인간이 아니라고 한다. 은혜를 받으면 숨겨서는안 된다. 반드시 드러내야 한다. 춘천은 참 멀었다. 무더위와 함께 휴가철로 인한 차량 적체로 오가는 데만 두배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고생을 한 만큼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어떻게 살아야 사람다운 삶인가를알게 해 준 기행이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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