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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대성국민학교 어린이들은 연필 대신에 괭이를 들고 흙 날리는 농로를 꽃길로 만드는 일에 나서곤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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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까머리, 똑 떨어지는 단발 아이들의 손에 연필 대신 연장이 들려있다. 그것도 괭이, 곡괭이 같은 것들이 말이다.
요즘 아이 은 게임에서 아이템 캘 때나 구경한다는 농기구들이 40~50년 전 아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상이었다. 하교한 후에는 노상 논밭에 나가 부모님을 거들며, 농사일이 예사였으니 그럴 법도 하다.
요새는 보기도 힘든 농기구들을 1970년 대성국민학교 아이들은 아니, 농촌의 아이들이라면 누구든 쉽게 다룰 수 있었다. 그래서 읍내 꽃길 조성에도 아이들이 동원되곤 했다.
그때는 농사나 시가지 미화작업에 국민학생, 중학생이 나서는 일이 흔했다. 그리고 익숙했다.긴 장마와 쏟아지는 여름볕에 억세질대로 억세진 잡초를 괭이로 파내고, 그 자리에 가을을 알릴 코스모스 씨앗을 뿌렸다. 땀이 비 오듯이 쏟아져도 피할 곳 하나 없었던 땡볕이었고, 튼튼한 운동화는 사치였으며, 무채색의 잠방이와 검은 고무신이 흔하던 시절이었다.
씨앗을 뿌려놓으면 이내 새싹이 돋고, 여름내 쑥쑥 자란 가늘가늘한 코스모스는 아침저녁으로 바람만 좀 선선해지면 금세 꽃망울을 터뜨리곤 했다.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섭리였다.
요즘 아이들은 꽃씨를 심는 것도, 식물을 기르는 것도 모두 체험이고, 학습이 돼버렸다. 1970년에는 길섶에 핀 코스모스가 그렇게 향기로울 수가 없었는데 2017년의 코스모스는 색깔은 화려해졌을지 몰라도 향기는 맡을 수가 없다.
쉴 틈 없이 지나는 차들이 뿜는 매연에 찌들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식물이 체험이 됐고, 온종일 학교와 학원을 오가다 밤이 늦어서야 겨우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에게 어둠 속의 꽃은 더 이상 눈에 띄지 않는다. 죄 학원버스, 부모님의 자가용을 타고 옮겨 다니니 흙을 밟을 시간도 없다.
학력은 좋아졌을지 모른다. 영어 단어, 수학공식도 70년대 아이들보다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꽃길을 만드느라 괭이질하던 그 시절의 아이들보다 자연을 잘 알지는 못한다.
어느 쪽의 아이들이 더 행복할까. 괭이질하느라 지쳐도 흙을 밟고 살던 아이들일까 아니면 그 아이들이 낳은, 차 안에서 꽃을 지나치는 아이들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