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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고성신문사 |
# 만화방초 가는 길
만화방초를 찾아가는 길은 초행자에게는 쉽지 않은 길이다. 은월리 월치에서 벽암사(碧巖寺)로 가는 산길로 들어서야 하는데 제대로 된 안내판이 없어 엉뚱한 곳으로 빠지기 일쑤이다. 길목에 세워둔 입구 표식은 잡초에 덮인 채 쓰러져 있어 길을 찾지 못하는 손님들에게는 무심한 존재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친절한 주인장은 안내판을 고칠 생각을 않는다. 하긴 아직은 관광농원으로 등록되지도 않았을 뿐더러 알음알음 소문을 듣고 아는 사람만 찾는 곳이고 보니 누구나 쉽게 찾으면 재미가 없기도 하겠다. 힘들게 찾아와야 만화방초의 멋을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입구를 들어서면 이 집의 마스코트라는 누렁이가 손님을 맞으러 쫓아 나온다. 또 한 번의 불친절이다. 주인을 닮아 사람을 잘 따른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강아지는 귀찮거나 무서운 존재이다. 한쪽에 묶어두면 좋으련만 개를 자식처럼 키우는 주인장에게는 어림없는 소리이다. 하긴 여기에서는 개가 주인이고 내가 손님이니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그러나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쫄랑쫄랑 뒤를 따라다니는 누렁이의 재롱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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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서류의 보고(寶庫)인 만화방초
메타세콰이어가 줄지어 서 있는 길을 따라 만화방초에 들어서면 잔디가 깔린 광장이 펼쳐진다. 햇볕과 비를 피할 수 있는 농막과 원두막이 있어 손님들이 차를 마시며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이 광장은 열린 공간으로 소풍 온 아이들이 뛰어놀기도 하고 간혹 작은 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잔디밭 가장자리에 큰 연못이 있는데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올챙이와 새끼 도롱뇽들이 바닥을 까맣게 덮고 있다. 새끼 도롱뇽은 인근 하천에서 검은 갈색의 무늬가 띄엄띄엄 있는 토종도롱뇽이 보이는 걸 보면 이놈들의 후손들인 게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올챙이는 모양만 봐서는 어떤 종류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다만 계곡산개구리의 경우 인근에서는 산청과 밀양에서만 발견되었고,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북방산개구리는 6월이면 이미 변태가 끝나기 때문에 남아 있는 올챙이는 연못 주변에 많이 보이는 무당개구리가 어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아마추어 환경운동가의 추측으로 섣불리 단언을 내리기에는 오판의 위험이 따른다.생태계에서 양서류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크다. 먹이사슬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특히 외부 환경 변화에 극히 민감하여 환경오염을 측정할 수 있는 바로미터(barometer)라고 불린다. 양서류는 최근 급격한 환경 변화로 빠르게 멸종되고 있어 일부 개구리와 도롱뇽은 보호종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 귀중한 생명체들이 만화방초의 연못과 인근 하천에 무리를 지어 서식하고 있는 것이다. 양서류가 산다는 것은 그만큼 환경이 오염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어떤 종류의 양서류가 얼마만큼 살고 있는지, 환경의 오염도는 어느 정도인지 체계적인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 만화방초는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주인이다
만화방초(萬花芳草)는 온갖 꽃들과 향기로운 풀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주인장의 절친이었으며 얼마 전에 작고하신 민속학의 대가 ‘김열규’ 교수가 붙인 이름이다. 만화방초를 만든 ‘정종조’ 님은 고성 출신의 사업가였다. 부산에서 회사를 경영하던 중 귀향을 꿈꾸며 이 농장을 준비해 왔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쉼터가 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약 17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에 들어갔으며, 몇 년 전에 사업을 모두 접고 고향으로 돌아와 만화방초의 완성에 남은 삶을 바치고 있다.그러나 주인장은 이곳에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못 했던 것 같다. 애초부터 관광지를 꿈 꾸었다면 지금의 이런 ‘불친절한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선 6만 평이나 되는 넓은 땅에 식수대나 화장실 등 농장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위한 배려는 거의 없다. 금전적 이익을 생각했다면 음료수 자판기 몇 대라도 설치했을 텐데 그런 욕심도 부리지 않았다. 작은 친절이라면 가까운 사람들의 권유로 의자와 해먹 몇 개를 가져다 둔 게 모두이다. 참 어처구니없는 사람이다. 욕심이 아예 없었거나 아니면 가까운 지인들을 초청하여 휴식을 즐기는 정도의 소박한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산을 오르는 길도 엉망이고, 꽃과 나무도 제대로 가꾸어져 있지 않고, 길 옆에는 잡초가 무성하네요. 깔끔하게 다듬어놓고 손님을 받는 것이 예의가 아닌가요?”만화방초를 찾은 일부 손님들이 투덜거린다. 옳은 말이고 고마운 조언이다. 그런데 그게 만화방초의 매력임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물품도 주인의 성품을 닮는다고 했던가? 그러나 아무리 봐도 주인장은 그런 친절을 보일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최근 들어 주변 사람들의 성화에 못 이겨 진입로를 포장하고 안내판을 붙였지만 듬성듬성 잘라 만든 나무판에 비뚤비뚤한 손 글씨가 적힌 주인장의 어설픈 손 팻말은 미소를 자아낸다. 화려하고 깔끔한 간판과 컴퓨터 그래픽 글씨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조잡한 악세사리로 만화방초의 아름다움을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는 것이 주인장의 참뜻이라면 이제 주인장의 불친절이 문제될 수가 없다. 그냥 주인장의 뜻을 좇아 있는 그대로 즐기면 되는 것이 아니던가?사실 만화방초에는 주인이 따로 없다. 즐기는 사람이 주인이다. 만화방초는 그냥 누구든지 문 열고 들어와 꽃과 나무를 구경하는 곳이다. 관리비를 받는다며 입구에 종이상자 하나를 두었지만 손님이 자발적으로 넣는 것이라 얼마를 넣었는지 따지지도 않는다. 사실 손님들이 놓고가는 얼마 안 되는 푼돈으로는 관리비를 감당하기에 턱 없이 부족할 것 같건만 그래도 주인장의 표정은 싱글벙글 한다. 언제 누가 오든지 그저 사람만 오면 좋단다. 이득과 손실을 떠나 찾아온 손님들이 즐기다가 가면 그게 주인장의 행복이란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천성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 6월의 만화방초는 수국의 정원이다
만화방초의 6월은 수국이 한창이다. 피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흐드러졌다고 해야 할지 모를 만큼 벽방산 한 귀퉁이 가득 나비가 내려 앉아 있다. 그것도 한 가지 색깔이 아닌 분홍색에 보라색에 노란색에 연두색에 코발트색까지 다양한 색깔의 꽃들이 어울려 있다. 수국의 원산지는 중국으로 수구화(繡毬花)라고 부르는데 비단으로 수를 놓은 둥근 꽃이라는 뜻이다. ‘수국(水菊)이라는 ‘물을 좋아하는 작은 꽃들의 모임’이라는 의미를 가진 ‘하이드레인저(Hydrangea)’라는 학명에서 어원을 찾아볼 수 있다. 수국은 화려한 꽃이 아니라 소박하면서도 편안함을 주는 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국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다양한 꽃 색깔 때문일 것이다. 수국은 피어서 질 때까지 일곱 번 색깔이 변한다 하여 ‘칠변화’라고 할 정도로 변화무상하다. 처음에는 연푸른색이던 것이 보라색으로 변했다가 다시 분홍빛으로 피는 시간와 장소에 따라 색깔이 다르다. 그리고 같은 종(種)이라도 흙의 성질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며 같은 나무에서도 다른 색깔의 꽃이 핀다. 뿐만 아니라 작은 꽃들이 모여 하나의 꽃을 완성하고 있는 모습으로 멋진 자태를 자랑한다. 마치 작은 나비가 가득 앉아 있는 것처럼 예쁘면서 탐스럽다.만화방초에는 약 30종 600그루의 수국이 있다. 그래서 만화방초의 6월은 ‘수국의 정원’이라고 해도 될 만큼 수국이 만들어내는 갖가지 꽃빛깔로 물든다. 그런 수국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기 위해 지난해는 3천 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갔고 올해도 손님들이 줄을 잇고 있다. 꽃구경을 하고 내려오는 언덕 한쪽에는 보기 드문 검은색 수국이 피어 있다. 검은 수국은 행운을 가져다준다는데 찾아온 손님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 만화방초를 환경 상품으로 만들 수 없을까?
만화방초는 말 그대로 꽃과 나무의 천국이다. 4월의 벚꽃으로 시작하여 연중 꽃향기로 덮이는 곳이다. 봄이면 엘리지가 한창이고, 여름이면 꽃무릇이 산을 덮고, 가을에는 단풍이 정원을 물들인다. 그리고 연중 볼 수 있는 야생화는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준다. 이처럼 다양한 동식물이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는 만화방초는 이제 비밀의 정원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 아쉬움이 있다면 이런 숨은 보물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을 지자체에서는 너무 소홀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가끔 만화방초와 통영의 나폴리농원을 비교해서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나폴리농원을 운영하는 길덕한 씨는 환경운동가이면서 창의력이 뛰어난 사업가로 미륵산 중턱의 작은 농장을 활용한 환경 상품을 개발하여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거기에 비하면 만화방초는 나폴리농원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넓은 공간과 자연 학습장의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익은 거의 없다. 주인장이야 욕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수익성을 따져볼 만도 하다.환경은 상품이다. 우리 지역의 독특한 특산물이 없다는 말만 하지 말고 이들을 잘 개발하고 가꿀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보자. 얼마 전까지도 산을 허물고 건물을 짓던 사람들이 이제는 개발에 지쳐 자연을 찾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고성은 최고의 환경 상품을 가진 곳이다. 때 묻지 않은 산과 강과 바다와 함께 존재하는 곳이다. 특히 만화방초를 비롯하여 갈모봉과 간사지는 고성만이 가진 독특한 상품이다. 고성이 가진 청정 환경 상품을 잘 다듬어 청소년들에게는 자연학습장으로, 어른들에게는 쉼터로, 그리고 지역민들에게는 지역에서 생산한 특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판매장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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