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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농 재배로 고소득을 창출하는 오곡실농원

강소농에서 고성농업의 미래를 찾다-②
황영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17년 07월 03일
ⓒ (주)고성신문사
우동완 대표 농산물 가공 직거래 판매로 억대 수익 올려
기능성쌀 녹미 흑미부터 찹쌀 현미 향미 보리 밀 등 재배
아들 창호 씨도 농사에 전념, 대를 이어가는 유기농 농사

고성군의 농업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쌀농사이다.하지만 쌀값하락과 농업경영비 증가 등으로 인해 농민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영현면 침점리 오곡실농원에서는 화학비료나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땅에서 퇴비나 유기질 비료만을 사용해 유기농 쌀을 생산해 판매하면서 관행농업보다 높은 농가소득을 창출하고 있다.특히 오곡실농원에서는 재배한 벼는 대부분 생활협동조합과 새고성농협으로 판매되고 일부는 직접 가공해 직거래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면서 판로 걱정도 없다.지난 23일 어려운 농업현실에서 자신만의 노하우로 억대 소득을 창출하고 있는 오곡실농원 우동완(55) 대표를 만나 그의 농사이야기를 들어봤다.

# 시설채소재배로 소농에서 대농으로
영현면 침점 리가 고향인 오곡실농원 우동완(55) 대표는 어릴 때부터 침점리를 벗어난 적이 없다.소농이었던 아버지의 몸이 편찮으시면서 농사를 시작하게 될 무렵 그에게 주어진 건 단 논 1천200㎡에 불과했다.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적은 농지에서 벼를 재배하고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가기에는 소득이 적었던 그는 1천800㎡농지를 임대해 영현면에서는 처음으로 시설채소를 재배하기 시작했다.당시 하우스에서 호박을 재배해 한 박스에 8~9천 원의 비싼 가격에 판매하면서 연간 400~500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당시 공무원 월급이 4~5만 원 정도였으니 농촌에서는 엄청 많은 돈을 벌은 셈이다.그는 번 돈을 집의 생계를 이어가는 데 사용하고 나머지 돈으로는 형의 학비와 여동생의 결혼비용까지 해결하면서 한 집안의 가장역할을 해왔다.가족들이 모두 정착한 후에는 돈을 조금씩 모아 1988년 처음으로 약 6천㎡의 농지를 매입했고 이후 계속해서 농지를 확장해나갔다.이후 계속해서 벌어들인 돈은 농지를 매입했고 3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약 6만6천㎡의 농지를 소유하게 됐다.또한 자신이 소유한 농경지뿐만 아니라 임대로 9만9천㎡까지 농사를 지으면서 영현면에서는 가장 넓은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 척수염 시련, 유기농 벼농사로 전환
시설채소재배로 한창 많은 돈을 벌어들이던 시기에 우동완 대표에게는 시련이 찾아왔다.2007년 갑작스레 다리의 감각이 떨어져 찾은 병원에서는 척수염이라는 진단을 내렸고 그는 불편한 몸으로 인해 하우스에서 일을 할 수가 없어 시설채소재배는 그만 둬야만 했다.하지만 평생을 농사에만 전념해왔던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농사뿐이라 불편한 몸으로도 가능했던 벼농사에 전념키로 했다.당시 그는 척수염을 앓게 된 것이 농사를 지으면서 사용한 농약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벼농사도 친환경농업으로 전환했다.친환경농업에서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천연자재와 천연약재로 방제를 하기 때문에 몸에는 전혀 해롭지 않다는 판단에서다.친환경농업을 시작한 이후 2011년에는 유기농 인증까지 받으면서 그는 관행농업에서 생산한 쌀 가격보다 비싼 가격에 쌀을 판매할 수 있었다.현재는 기능성 쌀인 흑미와 녹미, 찹쌀과 현미, 향미, 보리쌀, 밀가루 등 다양한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우동완 대표는 “몸이 불편해지면서 그동안 수 없이 맞아왔던 농약이 떠올랐고,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농업으로 농사를 시작했다”면서 “평소에도 유기농에 관심이 많아 1985년도에 서울에서 유기농 교육을 받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유기농 인증도 받았다. 지금은 관행농업에 보다 비싼 가격으로 쌀을 판매하면서도 생산량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 가공시설 신축으로 판로 걱정 없애
농원 내에 가공시설을 조성하고 생산한 벼와 보리, 밀 등을 가공해 직거래로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면서 판로걱정을 없애고 더 비싼 가격으로 농산물을 판매해오고 있다.우동완 대표가 생산한 유기농 쌀의 대부분 생활협동조합과 새고성농협으로 판매를 하고 일부는 가공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고 있다.쌀의 품종에 따라 판매가격은 다르지만 관행농업으로 생산한 벼보다 두 배나 비싼 가격을 받는다고 한다.비싼 가격을 받으면서도 한해 농사를 지은 것은 전량판매를 하고 있는 것은 우 대표가 생산한 쌀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아 안심할 수 있고 미질도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다.가공시설에서는 현재 쌀 뿐만 아니라 보리와 밀도 가공해 소포장된 농산물들은 입소문을 타면서 주문이 쇄도해 전국 각지로 판매되고 있다.우동완 대표는 “고객들이 처음에는 실제로 친환경농업으로 쌀을 재배하는지 의문을 많이 가졌다”며 “하지만 실제로 고객들을 농원에 초대해 직접 쌀을 재배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믿고 농산물을 구입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는 “지금도 연간 50만 원 이상 구입하는 고객에 한해 농원에 마련해놓은 찜질방에서 1박2일 동안 지낼 수 있도록 장소와 먹거리를 제공하면서 연간 40~50명이 농원을 찾아가고 있다”며 “처음에는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해볼까 생각했지만 일도 바쁘고 돈도 되지 않을 것 같아 포기했다”고 웃었다.

# 대를 이어가는 유기농 농사
해가 거듭될수록 농사면적이 늘어나면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우동완 대표와 반평생을 함께 농사를 지어온 그의 아내 양현숙(50) 씨에게 4년 전부터 든든한 지원군이 생겼다.우 대표는 농업으로 흥한 부자이기도 하지만 아들 부자이기도 하다. 슬하에는 장남인 창호 씨를 비롯한 수호, 준호 등 아들만 셋이다.이중 한국농수산대학에서 식량작물학과를 졸업한 장남 창호(26) 씨가 그 지원군이다.창호 씨는 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아버지의 농사를 도와왔으며, 지금은 아버지가 하는 거의 모든 일을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이제는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다 보니 일을 할 때에도 간혹 의견충돌이 발생하기도 한다.창호 씨는 모내기를 할 때 기계로 모를 심을 수 있는 곳에만 심으면 일을 수월하게 할 수도 있고 벼가 생육하는데 더 좋다고 생각하지만 아버지는 나머지 부분도 손으로 직접 모내기를 하기 때문이다.항상 아버지의 뜻대로 농사를 짓기는 하지만 창호 씨가 보기엔 너무 힘들게 농사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한다.한참 친구들과 모여 놀기를 좋아할 나이에 농촌에서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기 때문에 가끔은 농땡이를 피울 법도 하지만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농사일에 전념하고 있다.창호 씨는 “농번기가 되면 바쁘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조금은 여유로워진다”며 “농사를 지으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고성군 4H에 나가 또래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트레스를 해소를 한다”고 말했다.아버지가 일궈놓은 땅을 물려받아 농업을 이어갔으면 좋겠지만 물려주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다는 창호 씨.그는 “부모님이 땅을 물려주시면 감사하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전혀 불만은 없다”며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소규모의 땅을 구입해 대농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창호 씨에겐 농부 외에 또 다른 꿈도 있다. 4년제 대학교와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동시에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것이 목표다. 지금은 그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 더 좋은 쌀을 생산하는데 노력할 것
우동완 대표는 쌀 재배가 끝나면 곧바로 보리를 심는다. 올해 벌어들인 수익만 7천만 원에 달한다.흔히 2모작을 하게 되면 땅심이 없어진다고 하지만 우 대표는 볏짚이나 보리대를 판매하지 않고 그대로 논에 넣어 땅심을 살리고 있다.우 대표는 “예를 들어 볏짚이나 보리대를 판매해 10만 원의 수익을 얻는다고 치면 그것을 땅에 다시 되돌려 주면 3년 내에 그 돈보다 훨씬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장담했다.유기농 농사를 지으면서도 관행농업과 비슷한 수확량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우 대표는 앞으로 유기농 농사를 계속 이어가면서 더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해 고객들에게 제공할 생각이다.좋은 제품을 생산해야만 소비자들이 신뢰를 하고 계속해서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또한 농사를 시작하면서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수기로 기록하고 있는 영농일지는 그에게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자료이다.영농일지를 바탕으로 해마다 미흡한 부분을 보완하고 더 좋은 쌀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우 대표에게도 아들 창호 씨처럼 하나의 꿈이 있다. 그는 30여 년간 농사를 지으면서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쌀농사에 대해 다른 사람들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쌀 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금부터 농사에 사용해온 농기계를 하나씩 모으고 있다고.끝으로 우동완 대표는 “힘든 농사일이지만 반평생을 항상 옆에서 묵묵히 일을 함께하고 있는 아내에게 고맙다”며 “예전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온 가족들이 모두 건강하고 지금처럼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또한 “쌀 값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업인에게 희망이 될 수 있도록 하루 빨리 쌀값이 올랐으면 좋겠다”며 “농업인들이 안정적으로 농사를 짓고 일한만큼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시기가 왔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황영호·황수경 기자
황영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17년 07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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