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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만 철성중학교 수석교사 |
ⓒ (주)고성신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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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에 갇힌 우리 아이들
아이를 둔 부모에게 최고의 가치는 ‘내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다. 내 아이가 잘 자라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 내 아이가 사회에 가치 있는 일을 하여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면서 살기를 원한다. 그래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 교육을 한다. 교육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모든 행위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며 수단이다. 교육은 두 가지의 개념을 함께 담고 있다. 하나는 사람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가능성을 찾아내고 개발하여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후천적으로 계획된 목표와 방향에 따라 필요한 인재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학교는 당연히 이 두 가지의 요구 사항을 합쳐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그러나 불행하게도 학교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의 교육과정은 교육부에서 내려온 것을 기준으로 만든 것으로 대동소이하다. 그리고 선천적인 가능성을 찾아 개발하는 것보다는 획일적으로 계획된 프로그램에 아이들을 끼어 맞추고 있다. 그러다보니 학교 교육에서 아이들의 개성과 다양성의 의미는 아주 미미하다. 정해진 규칙에 맞추어 붕어빵처럼 꼭 같은 아이들을 찍어낼 뿐 틀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교육과정에 따르지 못하는 아이들은 이단아가 되고 문제아가 되어 버린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교과서 밖의 세상은 아이들의 세상이 아니다. 이렇게 정해진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똑같은 책으로 똑같은 생각을 강요당하며 갇힌 교실에서 쳇바퀴 돌리기를 강요당하다보니 청소년들의 행복지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고 자살률이 높은 이유가 되기도 한다. 왜 공부를 해야 할까? 공부의 궁극적 목적은 무엇일까? 설마 불행해지려고 공부하는 것은 아닐 테지? 설마 자살을 하려고 공부하는 것은 아닐 테지?
# 내 아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구만면에 있는 ‘수로요 보천도예 창조학교’는 아침부터 손님맞이 준비로 분주했다. 운동장에는 전국학생창작도자기만들기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사삼오오 모여 어떤 도자기를 만들지를 구상하며 얘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잔디가 깔린 넓은 운동장 가장자리로 야외 도자기 전시장과 이전까지 실시된 행사에서 입상한 아이들의 창작도자기가 전시되어 있어 한 번 들러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불쑥불쑥 솟아난다. 도자전시장은 고성의 도자기답게 공룡을 주제로 한 것이 많은데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그러나 필자의 눈을 가장 끈 것은 ‘구만중학교 건립유적비’ 위에 걸터앉은 사람의 형상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유적비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폐교된 학교에 대한 아쉬움일까? 아니면 본질에서 벗어나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교육에 대한 회의감 때문일까? 말 못하는 조각물이라 그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형상의 눈빛이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행사가 시작되었다. 머뭇거리던 아이들의 손놀림 시간이 갈수록 빨라진다. 흙 반죽을 주무르더니 차츰 자신이 생각한 형상을 갖추어 간다. 어떤 것은 제대로 형상을 갖추었지만 어떤 것은 무엇을 만든 것인지 형태가 괴기하다. 그러다가 마무리 무렵에 들면서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작품 속에 담긴 아이의 생각과 바람이 너무나 기발하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저것이 정말 아이들의 생각이 맞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갑자기 그동안 잊고 있었던 세계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어른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작품들이었다. 아이들이 흙을 빚어 표현하고 있는 세상은 네버랜드(Neverland)였다. 공룡과 해적이 함께 사는 곳이었다. 피터팬은 스마트폰을 들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상상을 쓸 데 없는 궁상이라고 하겠지만 알고 보면 자신들도 어린 시절 그런 꿈을 꾸며 살았던 시기가 있었던 것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의 작품이다 보니 반듯한 것은 거의 없다. 대부분 비틀어지고 깨져 있다. 이런 걸 도자기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모양새가 우습다. 그러나 작품에는 아이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런 것이 예술이구나’하고 감탄이 나올 만큼 멋진 아이디어가 가득 들어 있다. ‘알 속의 나’, ‘스펙이라는 족쇄’, ‘우리 가족의 의사소통 수단’ 등 제목만 들어도 아이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시간에 쫓기다’라는 제목으로 시계 위에 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이 애처롭다. ‘시험은 괴로워’라는 작품은 책상 위에 엎드린 아이의 형상이었는데 아이의 표정까지 볼 수 없는 게 아쉬울 정도로 아이의 고민이 절절이 묻어 있었다. 그런데 또 하나 짚어 볼 것은 많은 아이들이 모였지만 같거나 비슷한 작품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작품, 그리고 고스란히 자신의 생각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을 만드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었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찾아내고 키워주는 것이 교육이라면 이런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는 소통의 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우리 어른들은 내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을까? 무엇을 고민하고 어떻게 해소하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그런 어른들이라면 아이의 손을 잡고 보천도예창작학교로 가라. 아이와 함께 도자기를 만들어 보라. 아이의 창작물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행사장 밖에서 만난 학부모가 물었다. “왜 이런 행사가 있다는 것을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널리 알리지 않을까요? 왜 부모들은 이런 행사에 아이들을 데리고 오지 않을까요?” 교육 현장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운 마음에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행사를 주최한 이위준 교장은 교육에 관심이 많다. 수로요에 ‘학교’라는 명칭을 붙인 것도 그런 이유이다. 비록 도예(陶藝)가 생업이기는 하지만 경제적 이득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아이들에게 베풀며 봉사의 기회를 갖고 싶었다고 한다. 그것이 창작도자기 만들기 행사의 시작이었다. 이 교장은 창작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숨어 있는 능력과 생각을 끄집어내기 위해 주제를 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참신하고 기발한 아이디어와 개성 있는 표현에 중점을 두고 보다 자유로운 표현을 하도록 했다. 꿈, 희망, 소원, 약속, 추억 등 주제는 무엇이든지 좋았다. 아이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흙으로 빚어져 나왔다. 아이들과 작품을 통해 대화를 하며 이위준 교장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아이와 소통하고 싶거나 자신의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고 싶은 어른들은 아이들과 함께 창작도자기를 만들어 보라고 권했다.이위준 교장의 꿈은 이게 끝은 아니다. 이런 사업이 좀 더 많이 만들어지고 확대되어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매년 행사를 하고 있지만 아직도 아이들이나 학부모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고 했다. 교육당국에 협조 공문을 보내도 호응이 부족하다고 했다. 더 많은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는 교육 관계자들의 의식 변화뿐만 아니라 행사 운영의 개선도 필요하다. 행사를 교육청에서 주최하고 수로요가 주관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우수예술촌으로 지정하여 행사를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아이들의 행복이다
교육학자들은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PISA에서 1등을 다투고 있는 핀란드와 우리나라의 교육을 자주 비교한다. 비슷한 성적 결과를 내고 있음에도 핀란드와 우리나라는 교육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핀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긴 학습 시간을 가진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다. 핀란드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통합교육’ 시스템이다. 하나의 수업을 위해 다양한 과목의 교사들이 나서서 체험적이고 융합적인 학습을 한다. 모든 교육은 아이를 중심에 두고 자아를 발견하고 아이만이 가진 독특한 창의성을 살리도록 가르친다. 당연히 낙오자는 없다. 물론 핀란드 교육 역시 나름의 장점과 단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획일적 교육으로 아이들을 죽이고 있는 우리나라 교육이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많다.교실에서 웃음이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 아이들은 책도 펴지 않고 앉아 딴 짓을 하고 있고 절반 이상이 엎드려 있다. 우수한 학생도 많지만 낙오자도 많은 우리나라의 교육, 질문 없이 침묵이 익숙한 교실, 틀에 맞추는 교육으로 학생들의 창의성을 죽이는 나라. 안타깝지만 이게 우리나라 교실의 풍경이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자아 인식과 창의성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우리는 교육에 대한 인식은 바뀌지 않고 있다. 기계적 학습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학교, 한 걸음이라도 앞서야 생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며 학원으로 아이들을 내몰고 있는 학부모, 학력을 우선으로 따지는 사회에서는 창의력을 키우는 올바른 교육이 되지 않는다. 갇힌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자라지 않는다. 단편적인 지식 전달 위주의 교육으로는 아이의 무한한 미래가 열리지 않는다. 자신만의 생각, 자신만의 목소리, 자신만의 감수성과 창의력으로 사고력과 논리력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할 때다. 아이들의 행복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 필요할 때다. 이제 교실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의 창의성이 살아난다. 아이들을 교실 밖으로 이끌어내자. 아이들에게 날개를 달아 주자. 아이들의 꿈이 그대로 현실이 될 수 있게 도와주자. 그게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이들의 행복임을 잊지 말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