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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만 철성중학교 수석교사 |
ⓒ (주)고성신문사 | # 고성천에서 마동호까지
이제는 거의 떠나고 없지만 겨울이면 매년 잊지 않고 고성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다. 추운 북쪽지방에서 간사지를 찾아오는 철새들이다. 하긴 철새들만 오랴? 철새와 함께 간사지의 무성한 갈대숲을 보기 위해 탐방객들도 함께 온다. 간사지는 갯가 옆에 조성된 무성한 갈대밭이 특이한 풍광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식물이 살아 생태적으로도 가치가 높다.
간사지는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개펄’이라는 뜻이다. 간사지는 보통명사로 고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펄이 있는 곳은 어디에고 간사지가 있다. 고성의 간사지도 썰물 때 마암면과 거류면 일대에 넓은 개펄이 형성되면서 생긴 이름이다. 간사지라는 낱말도 원래는 간석지(干潟地)가 옳다. 사람들이 ‘개펄 석(潟)’과 ‘쏟을 사(瀉)’와 혼동하여 ‘사’로 잘못 읽는 바람에 간사지가 된 것이다. 일설에는 ‘개펄(潟)’을 ‘모래(沙)’로 착각하여 ‘간사지(干沙地)’가 되었다는 말도 있다. 유래야 어떻든 고성의 ‘간사지’는 다른 지역의 간사지와는 달리 오랫동안 지명으로 사용되어 이제 고유명사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제 간사지에서 개펄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마동호 방조제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간사지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물론 지명으로는 남아 있겠지만 서외 오거리 옆의 죽도(竹刀)가 섬이 아니듯이 이제 ‘간사지’도 간사지가 아니면서 ‘간사지’라는 이름을 가진 기이한 지역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비록 갯벌의 기능은 없어졌는지 몰라도 간사지 고유의 풍광인 갈대숲은 그대로 있어 아직은 철새와 더불어 많은 탐방객들이 찾아온다.고성의 간사지는 지형이 특이하여 아시아의 지중해라고 부른다. 바다이면서도 해역 대부분이 육지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지중해와 흡사하다. 말 그대로 땅 가운데 있는 바다와 같은 공간이다. 간사지는 풍광도 그렇지만 역사적으로도 꽤 알려진 곳이다. 조선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쟁으로 손꼽히는 당항포 해전이 있었던 곳으로, 왜병의 목(頭)이 무수히 바다에 떠밀려 마을 앞바다로 왔다고 하여 ‘머리개’로 불리던 두호(頭湖) 마을과 함께 ‘속싯개’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남아있는 지명에서 비록 역사는 아니지만 일본 첩자를 속인 월이 설화의 신빙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갈대숲을 지나 소소강(沼所江)이라고 불리던 고성천 둑길을 거닐면서 고성의 역사를 함께 알아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 간사지로 가는 고성천 둘레길
간사지 탐방은 고성 아오지에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다. 고성 아오지는 죽계리 상하수도사업소 옆에 있는 곳으로 4개의 하천이 모이는 곳이다. 농업 지역을 거쳐 온 용산천과 고성천, 그리고 상업과 공업 지역을 지나온 율대천과 송학천이 각각 다른 색깔을 가지고 모여 간사지로 흘러가면서 하나의 물줄기로 합쳐진다. 특히 비가 많이 올 때면 빛깔이 다른 하천물이 미처 섞이지 못하고 길게 띠 모양을 만들면서 흘러가는 것이 장관이다. 강변으로 퇴적물이 쌓여 폭이 좁아졌지만 이전에는 큰 배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깊고 넓은 강이었을 것이다. 월평리 앞 바다로 가기 위해 소소강을 따라온 왜군들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허둥대다가 이순신 장군에게 죽음을 당한 곳으로 추정된다. 하긴 아오지에서 월평리 앞 바다까지는 지척지간이다. 월이 설화에서 지도에 줄을 그어 물길이 이어진 것처럼 조작했다고 했는데 그런 이야기가 만들어질 충분한 근거가 있다. 거리가 워낙 짧아 지금도 운하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이갑영 군수 때는 실제 타당성 조사까지 했는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성사에 이르지는 못했다.고성천 둘레길은 산책을 하기에 좋다. 어느 둘레길 못지않게 평탄한 데다 아름다운 주변 경치를 가지고 있다. 곳곳에 핀 노란 유채꽃이 방문객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또한 길 가운데는 우레탄을 깔아놓았는데 산책에 아주 좋다. 그러나 도로를 만든 후에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곳곳이 패여 있다. 우레탄 도로를 만든 것은 자전거타기를 즐기는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우레탄은 탄력이 있어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로 된 길보다 자전거를 타기에 불편할뿐더러 중금속을 포함하고 있어 환경적으로도 좋지 못하다. 이후 도로를 정비할 때 고려해야 할 것이다.
고성천 아오지 부근은 물고기가 많다고 알려져 있다. 하천이 합쳐지면서 먹잇감이 풍부해진 것이 이유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오지에서부터 두호배수지까지는 낚시꾼들이 몰린다. 주말이 아니어도 열댓 명의 태공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아오지에서 조금 내려가면 ‘세월교(歲月橋)’라는 이름을 가진 물에 잠길 듯한 잠수교가 하나 있다. 이전에 그 자리에 제법 큰 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홍수에 떠내려간 후에 지금의 다리를 새로 놓았다. ‘세월교’라는 이름을 일부러 그렇게 지었는지 우연인지는 모르지만 낚시꾼의 모습에서 세월을 낚고 있는 강태공의 모습이 떠오른다. 세월교 아래쪽에 있는 ‘진소’는 동네 아이들이 여름에는 수영을,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즐기던 곳이다. 물이 깊어 위험하다며 가지말라고 어른들이 말리던 곳인데 지금은 아이들 대신 태공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성천에서 간사지에 이르는 길은 정말 멋진 곳이다. 유채꽃과 갈대가 무성한 강변을 따라 연인끼리 거닐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아이들과 도시락 하나 들고 나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생태학습을 하기에는 정말 안성맞춤이다. 낚싯대 하나 던져두고 여유를 즐길 수도 있다. 게다가 운동 코스로도 제격이다. 아오지에서 출발하여 마동호 방조제를 지나 동해면으로 돌아오면 약 45㎞의 거리가 나온다. 달리기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기에 적당한 거리이다.두호배수지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갈대숲을 만난다. 배수지에서부터 간사지교까지는 갈대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수심이 낮고 모래섬이 형성되어 있어 물고기뿐만 아니라 조류의 서식지로도 아주 적합하다. 갈대 사이 곳곳에 다양한 수생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그리고 길 옆으로 보이는 지형도 특이하다. 산과 언덕은 구들돌을 쌓아놓은 것처럼 층을 이루고 있다. 마치 상족암 해변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잘 살펴보면 공룡화석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이다.간사지는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환경 운동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을 가지고 있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온다. 또 당항포 해전이 있어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찾고, 공룡 발자국 유적이 근처에 있어 고고학을 공부하는 학자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말 그대로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오는 자연과 생활, 생태와 역사가 결합된 곳이다.
# 막힌 물길을 열어야 한다
그러나 간사지는 한편으로는 생태계 파괴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방조제 준공으로 예전보다 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곳, 그 이면에 환경 파괴의 비극이 숨어 있다. 예로부터 간사지 인근은 풍부한 수량으로 물이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한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는 농업용수를 핑계 삼아 마암면과 동해면을 잇는 834m 길이의 방조제를 조성하여 간사지를 포함한 99만 평을 담수호로 만들었다. 덕택에 생태계의 보고인 갯벌은 사실상 멸종 상태나 마찬가지가 되어 버렸다. 갯벌은 다양한 생물들이 살아가는 보금자리로 주민들에게는 삶의 터전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기주의로 인해 마구잡이로 개발되면서 수천수만 년을 이어온 생태계의 조화가 허물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갯벌에서 조개를 캐던 주민들을 쉽게 볼 수 있던 곳이었다. 간사지교 주변의 갯벌은 갱조개가 유난히 많아 썰물이면 인근 주민들이 조개를 캐기 위해 모이는 장관이 펼쳐지곤 했다.
그러나 갯벌이 없어지면서 예전에 흔하게 보던 꼬막과 갱조개를 보기 힘들어지고 자연스럽게 조개잡이로 생계를 잇던 주민들도 사라졌다. 그리고 밀물이 되면 간사지 다리 위로 ‘꼬시래기’를 잡기 위해 낚시꾼들이 모여 들던 모습도 이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이렇게 인간의 욕심은 동식물의 보금자리를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살아가야 할 터전까지 허물어버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다.뿐만 아니다. 바다와의 소통이 막히면서 하천을 통해 내려온 생활하수와 쓰레기들의 문제도 심각하다. 물길이 막히면서 생활하수와 쓰레기들이 바다로 흘러가지 못하고 마동호 안에 갇혀 그대로 썩어간다. 특히 시민 의식 결여로 쓰레기 무단투기는 심각하다. 두호배수지부터 간사지교까지는 트레킹을 즐기거나 탐방객 이외에는 사람의 통행이 드물다. 그러다보니 지역 주민인지 외지 사람들인지는 모르지만 일부 사람들이 대형 쓰레기를 차에 싣고 와 길 옆 으슥한 곳에 던져두고 간다. 냉장고, 텔레비전, 가구 등 대형 쓰레기들이 대부분이다. 인적이 드문 곳이라 행정의 손길이 닿지 않는 모양이다. 갈대숲의 생활 쓰레기야 집게로 주울 수 있겠지만 행정에서 처리하지 않는 한 대형 쓰레기는 방법이 없다. 몇 푼 안 되는 폐기물 수거 비용을 아끼지 위해 무단투기를 하는 시민의식이 안타깝다.간사지는 고성의 숨은 보물이다. 간사지는 어디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큼 뛰어난 생태계 학습장이다. 환경교육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실천을 가르칠 수 있는 교육의 현장이다. 아름다운 풍광과 분위기로 관광객을 불러들일 수 있고, 둘레길 트레킹을 통해 심신을 치유하고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멋진 곳이다. 이런 보물을 그냥 방치하고 있음은 고성으로 봐서 불행한 일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는 간사지의 가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한다. 행정에서는 간사지의 환경 보전과 개발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먼저 간사지에 오염원 유입이 최소화되도록 해야 하고, 마동호 수문을 조절하여 갇힌 물이 썩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갈대숲을 비롯한 주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 관리를 하든지 아니면 환경 단체에 위탁을 해도 좋을 것이다. 아울러 산책로 점검 및 보완 등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개발이 있어야 한다. 주민들이나 외지에서 온 방문객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주변의 자연 경관을 즐기면서 환경의 중요함도 깨닫는 곳으로 만들자. 월이의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고성의 역사를 찾아가는 길로 만들어 보자. 누구나 한 번쯤 와보고 싶어 하는 멋진 고성만의 명소로 만들어 보자.작은 파괴가 큰 불행을 부른다. 삼천리금수강산이라고 부르던 우리나라에서 공기나 물을 돈으로 사서 먹을 것이라고 상상이나 해보았던가? 그런데 우리는 지금 돈을 주고 물을 사 먹고 있다. 공기는 어떤가? 아직 우리나라는 심하지 않지만 중국은 공기까지도 사서 마실 정도로 오염되어 버렸다. 우리나라도 이제 미세먼지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일상화되어 가고 있는 세상이다. 앞으로 30년 후쯤에는 방독 마스크를 쓰고 다니지 않는다는 보장을 누가 할 것인가?‘배반 당하는 자는 상처를 받지만 배반자는 더 비참한 상태에 놓인다’고 셰익스피어가 말했다. 자연은 인간에게 무한한 은혜를 베풀어 주고 있다. 고마움을 모르고 자연을 배반하면 반드시 그 이상의 대가를 받게 될 것이다. 물길이 막힌 간사지는 우리에게 더 이상의 환경 파괴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주고 있다. 자연이 주는 신호를 무시하면 더 큰 재앙이 있을 것이다. 환경 보호의 시작을 간사지에서 시작해 보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