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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도(巫女圖)

이진만 철성중학교 수석교사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17년 0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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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 선생님이 쓴 ‘무녀도’라는 소설이 있다. 1936년에 문학지 ‘중앙’에 발표된 글로 이후 장편 소설로 개작한 ‘을화(乙火)’는 노벨문학상 후보에까지
를 정도로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신구 세력 간의 갈등이라는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내용은 뜻밖에도 아주 단순하다. 작가는 무당인 ‘모화’를 통해 기독교인이 되어 돌아온 아들 ‘욱이’와의 갈등을 중심으로 급변하는 사회에 저항하며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비극적인 인간상을 보여주고 있다. 김동리 선생님은 ‘무녀도’ 이외에도 ‘황토기’, ‘등신불’ 등 많은 작품으로 한국 문학계에 큰 업적을 남기신 분이다.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아직도 선생님의 글이 다수 실려 있을 만큼 널리 알려진 분으로 선생님이 우리 국민들에게 남긴 정신적인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할 것이다. 필자가 김동리 선생님을 처음 만난 것은 까까머리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선생님이 심사위원장을 맡으셨던 전국중고등학생 백일장에서 운 좋게 입상을 했던 덕분으로 선생님과 식사 자리를 함께 한 적이 있다. 대구 계성중학교에 다닌 인연을 이야기하며 격려 말씀을 해주시던 자상함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이후 대구에서 두어 번 선생님과 자리를 같이 했다. 주로 경주에서 있었던 신라문화제 심사위원으로 내려오실 때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특별히 친하게 지내셨던 박목월 선생님이나 서정주 선생님과 함께 오셔서 대구의 김춘수 선생님과 동석하셨다. 물론 걸음마를 겨우 하던 우리 같은 문학도(文學徒)들이야 선생님들의 먼 발꿈치에 앉아 내려주시는 술 한 잔 덕담 한 마디에 감격하던 시절이었지만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던 선생님들의 강력한 이미지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 후 낙향하여 고향 인근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필자에게 다시는 그런 고귀한 분들과 함께 자리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다만 다행스럽게도 가까운 사천 다솔사에 선생님의 흔적이 남아 있어 간혹 들러 문학과 인품의 향기를 느끼곤 했다. 그런데 어린 필자에게 많은 문학적 영감을 주셨던 김동리 선생님을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뀐 지금에 와서 뜻밖의 상황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것도 선생님 당신을 직접 만난 것이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대리인단으로 활동하며 막말 논란을 일으켰던 변호사들을 통해서였다.한 마디로 ‘모화’의 환생을 보았다고 할까? 무지하다고 할지 아니면 용감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도도한 역사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맞서고 겨루어보려 한 '모화'와 민주주의의 발전을 인정하지 못하고 아직도 군사 정권의 그림자를 좇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닮았다. 그들의 행패는 탄핵 심리 중에도 그랬지만 대통령의 범죄 사실이 인정되어 탄핵 인용이 난 이후에도 많은 구설수를 부르고 있다. 재판정에 태극기를 들고 나왔던 서석구 변호사는 아직도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군중들 앞에서 횡설수설하고 있고, 미국으로 돌아간 김평우 변호사는 ‘대한민국의 법치는 죽었다’며 촛불을 든 국민들을 대상으로 전쟁을 선포했다. 이들은 시중잡배의 말버릇으로 헌법재판관들을 조롱하고 촛불을 든 국민들을 능욕했다. 오죽했으면 탄핵 인용에 있어 이들이 가장 큰 공을 세웠다는 말까지 나온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통령의 변호인이 될 수 있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이 보인 모습은 한심했다. 정말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평소 행동과 어울리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분들에게서 비극의 주인공인 ‘모화’의 이미지가 겹쳐 떠오르는 것은 왜 그럴까? 자식을 사랑하면서도 칼로 찔러 죽여야 했던 슬픈 '모화'의 모습과 조국을 사랑하면서 도리어 조국에 칼질을 해대는 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닮았다. 특히 김평우 변호사의 행동은 많은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수세에 몰리는 대통령의 탄핵 심리에 슈퍼맨처럼 나타나 화려한 웅변술로 재판관들이 뒷머리를 쥐게 한 인물이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김평우 변호사의 억지스런 논리와 무례한 행동을 보며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경력은 화려했다. 하버드 로스쿨을 수료하고,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고,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역임했단다.그런데 가장 드라마틱한 것은 ‘모화’의 아바타로 나선 김평우 변호사가 김동리 선생님의 둘째 아들로 밝혀진 것이다. 김평우 변호사의 이력이 밝혀진 후에 많은 사람들이 뜻밖의 사실에 놀랐다기보다는 ‘그럴 수가 있나?’하는 표정들이었다. 대문호였던 소설가 김동리 선생님과 어울리지 않는 아드님의 모습이었다. 아버지의 인품에 먹칠을 한 품위 없는 김평우의 등장은 가문의 반전이라고 해야 할까? ‘김동리의 아들’이라는 말은 선생님이 평생 쌓은 업적을 한 순간에 무너뜨려 버렸다. 물론 자식의 잘못을 부모가 대신 욕들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김동리 선생님을 잘 알고 있던 국민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부모가 생시에 쌓은 덕은 후손에게로 간다고 했는데, 김동리 선생님은 도리어 자식 때문에 인품에 흠이 생겼으니 세상사는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선생님은 당신의 자식이 ‘모화’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것을 상상이나 하셨을까? 수레 앞의 사마귀처럼 역사의 흐름 앞에서 무모한 행위로 뭇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줄 꿈이나 꾸셨을까? 아드님이 하신 행위를 아신다면 지하에서 통곡을 하고 계실 것 같다.하긴 김평우와 같은 사람이 어디 하나뿐이랴? ‘경제 부흥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아버지의 이름을 더럽힌 박근혜 전 대통령도 그렇고, 일부이지만 태극기를 들고 관제 데모에 나타나는 국가유공자들의 후손들도 그렇다. 나라를 위해 순국하신 조상의 이름을 팔아 민주주의의 발전을 거부하고 있는 사람들이 참 많다. 후손이 선조의 이름을 더럽힐 수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언행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본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17년 0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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