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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발로 가볍게
박해경 시인
벌과 나비는
맨발로 가볍게
이 꽃 저 꽃 옮겨 다녀요
꽃이 다칠까 봐
신발 신지 않고서.
꽃의 신성성
신발을 신은 나비나 벌을 상상하기는 힘들다. 꽃에 앉은 나비나 벌이 신발을 신고 앉았다고 생각하면, 그건 끔찍한 일이 된다.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그 장소가 거룩하다는 의미이다. 때 묻은 신발을 신고 거룩한 사원에 들어갈 수는 없다. 이슬람 사원이나 힌두교 사원에서는 절대로 신발을 신고 들어가지 못한다. 꽃은 거룩한 사원이다.
벌이나 나비는 꽃에서 생명의 양식을 얻는다. 꽃이 없으면 벌이나 나비는 생존할 수가 없다. 인간은 대지에 신발을 신고 다닌다.
따지고 보면 땅도 인간에게는 거룩한 사원이다. 땅이 없으면 인간 역시 생존을 할 수가 없다. 땅의 소산으로 인류는 면면이 목숨을 이어오고 문화를 꽃 피워 왔다. 벌이나 나비처럼 인간도 땅을 신성하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 대지에 감사하는 마음을 얼마나 가지며 살고 있는가.
성경에는 모세가 호렙산 불꽃 가운데서 거룩한 곳이니 신발을 벗으라고 말씀을 들었다. 그 일 이후 모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다.
이 디카시에 모세의 일화까지 운운하는 것은 지나친 바이지만, 꽃에 대입된 맨발의 상징성은 신선하다. 작은 꽃 하나에서도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신의 신성성을 환기할 수 있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