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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고성신문사 |
| 고성문화원이 발간한 고성독립운동사를 둘러싸고 잡음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3월 발간된 고성독립운동사는 2014년 군비 2천만 원 등을 지원받아 하 호 전 고성향토사연구소장, 시인이자 작가인 정해룡 씨가 공동저자로, 2년여에 걸쳐 자료를 수집하고 집필해 고성문화원이 발간했다. 이 책은 3·1운동의 배경과 전개, 고성지역의 3·1운동 전개, 고성의 독립저항운동, 3·1만세운동과 독립운동 개인 약전 등 총 4편으로 구성됐다.
그런데 최근 이 책에 대해 일부 향토사학자가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추경화 전 진주문화원 향토사연구실장은 지난 22일, 고성독립운동사 책자와 관련해 고성군에 “고성독립운동사는 친일운동사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이미 배포된 고성독립운동사를 환수하고 폐기해줄 것을 골자로 한 민원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 책의 공동저자인 정해룡 씨 등 고성문화원 측에서도 추 씨의 의견에 대해 반박에 나서면서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 고성군미곡통제조합, 농회
추경화 씨는 고성독립운동사의 ‘고성지역 농민운동’ 편에 포함된 고성군 농회와 고성군 미곡통제조합에 대해 “고성군미곡통제조합은 항일단체가 아니라 쌀, 보리, 콩 등을 공출하던 친일단체”라면서 “전쟁 당시 일본의 비행기 제작 등을 위해 놋그릇과 쇠붙이를 공출하고, 위안부 공출과 근로보국대 징용에도 앞장선 것은 물론 위안부와 근로보국대에 2명 이상을 공출하는 경우 마을 잔치를 벌이기도 하는 등의 친일활동을 한 관변단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해룡 씨는 “고성군미곡통제조합과 농회 등의 활동에 대한 소개는 그야말로 이러한 단체가 있었다는 소개일 뿐”이라면서 “이들 단체에 대한 소개는 일제강점기 당시 고성에 이러한 흐름이 있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일 뿐이지, 독립운동이나 친일활동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 씨는 “미곡통제조합이 곡식의 공출 등의 일도 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기술하지 못하는 것이냐”고 반문하며 “조합은 당시 쌀을 유통시키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문제가 있는 것이 이 책의 어느 페이지, 어느 인물에 대한 내용인지 확실하게 밝혀야 하는데 추경화 씨 측에서는 이러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친일인사 기록
추경화 씨는 “1933년 당시 농회의 회장이었던 군수 출신 송찬도는 총독부 내무과장이었으며 참여관으로 충실해 천황 훈장을 받았고 부회장이었던 박남극은 고성면장과 읍장을 지냈으며 강압적 곡식공출에 선도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또한 “1938년 회장 노태식은 고성군수와 함양군수, 하동군수를 지내기도 했으며 조선공로자명감에 기록된 친일파로, 이와 관련해 전 하동군수는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면서 “부회장 이갑용은 조선총독부 소속 중추원 참의였고, 고성농촌지도위원, 고성소작위원, 고성산업조합장, 고성주조조합장 등을 거쳤으며 일제에 고액 국방헌금을 내기도 한 인물로 천황훈장을 받은 친일파이고 1943년 농회 회장이었던 김학성도 고성군 재무주임과 고성군수를 지낸 친일 인사”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해룡 씨는 “편집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몰상식한 일”이라며 “예를 들어 신간회에 참여했으나 후에 친일행적이 있다고 해서 명단에서 이름을 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또한 정 씨는 “서기, 주사 이런 사람들에 대해 실리지 않았고, 실렸다고 해도 당시 상황상 그들은 생계형 공무원이었으며 농회 회장, 부회장, 조합장, 부조합장 등은 생계형 친일인데 이들을 친일파로 볼 수 없다”면서 “명단이 빠졌다고 하지만 이 책을 만드는 시점에 자료가 부족해 못 실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추경화 씨는 “농회 회장은 군수였고, 그들은 미곡을 수탈하고 위안부 및 징병 등에 앞장섰는데 이들이 과연 생계형 친일이라고 볼 수 있냐”면서 “특히 미곡통제조합은 주로 공출에 앞장선 사람들이고 당시 동아일보 기사에는 미곡 수탈로 인해 1년에 수만 명이 굶어죽었다는 내용이 있을 정도였다”고 주장했다.
또한 추 씨는 “이 책에서 농회 및 미곡통제조합 조직에 대한 자료출처는 경상남도직원록으로 밝히고 있지만 이 자료의 정식 명칭은 조선총독부 경상남도 직원록이며, 이 문서에는 조선총독부 소속 모든 공무원의 명단과 관변단체, 일본 천황에게서 훈장이나 표창을 받은 사람 명단 등이 수록돼있다”고 덧붙였다.
# 국채보상운동
추경화 씨는 “국채보상운동에 고성군민 2천500여 명이 동참해 의연금을 모았으나 단 한 줄의 언급도 없고 지도자급 50여 명의 명단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추 씨는 “국채보상운동은 일제에 진 빚을 국민들이 나서 모금을 통해 갚고 국권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이었고, 많은 군민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내용에 대한 소개는 전혀 없다”고 말했다.
추경화 씨는 “1907년 시작된 최초의 독립운동인 국채보상운동은 남녀노소, 신분고하, 종교를 분문하고 전국 27만 명, 경남에서만 3만5천 명이 참여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일제에 진 빚을 갚고자 한 항일운동으로 자랑스러운 유산이지만 이 책에는 이러한 내용이 없으니 참으로 부실하고 잘못된 독립운동사”라고 지적했다.
정해룡 씨는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자료가 없어 고성독립운동사에는 싣지 않기로 했던 것”이라며 “개정판을 내게 되면 빠진 부분에 대해 추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정부포상자
추경화 씨는 “항일운동 업적을 인정받아 훈장, 포장, 대통령 표창을 받은 김관제, 김해수, 문기식, 문상범, 서응엽, 우태선, 이금복, 이정수, 이호용, 정갑권 선생 등의 공적은 3줄 즉 원고지 반 장 이하로 배당돼있는데 정부포상을 받지 못한 배 모 지사와 김 모 교수 등은 얼굴사진과 생가 사진, 묘소사진, 불명한 자료 등을 길고 상세하게 소개하는 것이 정당하냐”며 형평성이 없고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추 씨가 언급한 배 모 지사는 독립군으로 활동하는 것은 물론 정세권 선생과 함께 조선물산장려운동을 펼치는 등 고성군내 독립운동의 선도자 역할을 하고 해방 후에는 육영사업에 투신한 배만두 선생, 김 모 교수는 대구사범학교에서 문예부를 가장한 항일단체를 조직해 활동했으며 해방 후에는 진주교대학장을 지내는 등 지역 교육자로 활약했던 김용태 선생이다.
이에 대해 고성독립운동사 공동저자이자 하기호 전 고성향토사연구소장은 “정부 포상을 위해 보훈처에서 진행하는 조사를 안내도 해봤는데, 독립운동 중의 행적과 후의 행적이 어떤지를 중시했다”고 설명했다.
하 소장은 “배만두 선생, 김용태 선생은 독립운동 이후의 행적이 뚜렷하게 확인되지 않아 포상자에 들어가지 않았다”면서 “그렇다고 해서 두 분의 독립운동 행적 자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이들은 지역의 선각자임은 자명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정해룡 씨는 “고성 출신 독립투사로서 정부포상을 받은 분들에 대해 조사했고, 남아있는 묘소나 생가 등을 찍기로 했는데 유족들 선이 안 닿는 분은 자료가 없으니 실을 수 없어 분량 적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추경화 씨는 “본인은 고성 출신 항일투사로 옥고를 치르기도 한 김영수, 박명기 등 15명을 발굴, 정부에 신청해 2007~8년경 12명을 한꺼번에 훈장 표창을 받게 했고 이 때문에 2009년 3월 고성군수에게서 감사패를 받았다”면서 “항일투사와 관련된 개인 보유 자료들은 본인만 수집한 비밀스러운 자료로 2014년 이전에도 있었으며, 개인적으로 보유한 자료이기는 하지만 고성문화원 측에서 요청한다면 제공하겠다는 의사도 밝혔지만 어떤 요청도 없으니 따로 제공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문화원 인근에 그 분들의 묘소도 있고 후손이 있는 분도 있는데 항일투사들에 대한 자료를 찾지 못했다는 것은 핑계”라고 덧붙였다.
# 고성독립운동사 놓고 벌어진 논쟁
추경화 씨는 “본인은 경남 도내 독립운동사를 30여년 간 연구해왔으며 산청, 하동 등의 독립운동사 책자를 발간하기도 했다”면서 “고성의 독립운동과 관련한 자료 연구도 진행해왔기 때문에 이를 고성문화원과 협조해 공동저자 형식으로 고성군독립운동사를 발간하는 것도 좋겠다는 의견을 밝힌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2일 고성군청과 고성문화원에 민원을 보내 “고성독립운동사는 친일운동사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고성독립운동사는 고성군의 망신이니 이를 환수하고 폐기해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정해룡 씨는 “추경화 씨는 타 지역의 문화원 향토사연구실 소속의 연구가로 활동하는 인물로, 고성군독립운동사가 본격적으로 제작되기 전 그가 고성의 독립운동 관련 서적을 만들고 싶다고 문화원에 연락해왔으나 타 지역 인사가 우리 지역의 역사에 대한 서적을 출간하는 것은 안 된다는 의견을 전달했는데 이에 대한 앙심을 품은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씨는 “추 씨는 고성문화원에 방문한 적도 없으며, 며칠 전 우리 문화원으로 연락을 해왔기에 당신이 친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는 답신을 보낸 것이 전부”라면서 “부족한 부분은 보강할 것임을 문화원장도 밝히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 폄하하는 것은 명백한 명예훼손이며 이에 대해 향후 고소고발을 염두에 두고 상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갑론을박에 대해 고성군 문화체육과 장찬호 과장은 “고성군은 예산 지원 외에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해 세세하게 관여하지 않았으며 실제 기록에 대해 원고를 정리할 당시 현재 자료가 확보된 사람들을 위주로 싣기로 했다”며 “지금 상태로는 개정판을 낼 때 수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차후 개정판 작업 시 참고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