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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꽃
백순금 시인
몸에 담긴 촉수를 더듬으며
뜨거운 맨발로 젓는 군무
오아시스에 피어나는 별꽃들
오아시스가 있는 사막
말이 필요 없을 때가 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경우가 그렇다. 혹은 말문이 막힐 때도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우도 그렇다. 군무가 별꽃처럼 피어난다거나 오아시스의 별꽃이라고 말해 봐도 그걸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뜨거운 맨발로 젓는 군무라고 해 두자. 뭐라고 말해야 할까, 하고 절망할 때 시는 찾아온다. 사랑이 찾아오듯 시도 도무지 의도하지 않은 극순간 마주치는 것이다. 디카시는 더욱 그렇다.
시는 신비다. 모든 고귀한 것은 신비롭지 않은가. 생의 길. 경이로운 장면도 가끔 만날 수 있으니 살아 볼만하다. 이때는 말문이 막힌다. 일상어로는 형언할 길이 없다. 그러니까 시로 쓰는 것이 아니겠는가.군무가 그려내는 저 형상은 무슨 신호일까, 신이 그린 문양일까. 저 아름다운 간격이 어찌 우연일 수 있겠는가.
무신론자라 할지라도 신에게 무릎이라도 꿇고 싶어질 듯하다. 희무스름하고 붉으스름하고 푸르스름한 삼색의 오묘한 조화도 결코 우연스럽지가 않다.
그렇다. 오아시스가 분명하다. 생의 오아시스다. 포기하고 싶을 때,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절망할 때 눈앞에 오아시스가 있다. 조금만 더 참고 견뎌보라고 말이다. 생은 사막이 분명하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을 때 오아시스가 신기루처럼 있는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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