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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히지 말자

이진만 철성중학교 수석교사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17년 0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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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초등학교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문제를 두고 언어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뜨겁다. 2019학년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에 300자
이내의 한자를 표기한다는 것인데 대상은 국어를 제외한 전 과목 교과서에 해당한다.
한글 전용과 국한문 혼용에 대한 의견은 오래 전부터 대립하여 왔다. 국한문 혼용을 부르짖는 사람들의 가장 큰 항변은 우리말의 대부분이 한자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한자를 알아야만 개념에 대한 이해가 쉽다는 논리이다. 예를 들면 항성(恒星)이라고 했을 때 ‘항상(恒) 한 자리에 머무르는 별(星)’로 낱말이 쉽게 이해가 된다는 논리이다. 맞는 말이다. 
실제 한자를 많이 아는 사람이 학습능력이 뛰어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면 한글 전용을 말하는 사람들의 입장은 어떨까? 그들은 혼용론자와는 반대의 논리를 펼치고 있다. 언어의 발달 과정에서 한자말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오랜 시기를 거치면서 해석의 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이미 우리 의식 속에 녹아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학교(學校)를 말할 때 ‘학문을 배우는(學) 집(校)’이라는 한자의 뜻을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늘이 그냥 하늘이듯이 학교는 그냥 학교일뿐이라는 논리이다. 역시 맞는 말이다.양 쪽의 말이 모두 옳으니 배움의 대상자인 학생들로서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필요한 것 같으면서도 필요하지 않은 한자 교육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 될까? 사실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초등학생들의 한문 교육에 대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한자를 사용하지 않음으로 불편한 사람은 어른들이지 아이들은 아니다. 
이미 47년간의 한글 전용 정책으로 아이들은 한자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한글에 익숙해 있다. 그러기에 아이들에게 한자는 우리 글자가 아닌 외계인이 쓰는 문자이다. 한자를 적으라고 하면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 있는 수준이다. 
가르치다보면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얻는 것이 너무 적은 비효율적 과목이다. 물론 모르는 것보다는 아는 것이 더 좋지만 작은 이익을 위해 허비되는 시간이 너무 많다. 그 시간에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현재 교단의 교사들 역시 대부분 한글전용 세대로서 아이들을 가르칠 만큼 한문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다. 그러다보니 한자 교육의 전격적 도입으로 생겨날 사교육 문제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얼마 전 언론에 화제가 됐던 문자 메시지가 있다. ‘금일 14시 면접’이라는 문자를 본 응시자가 ‘금요일을 말하는 것이냐?’고 물었다는 것인데 금(今)일과 금(金)요일의 ‘금’자를 구분하지 못해 일어난 해프닝이다. 응시자도 그렇지만 ‘오늘’이라는 쉬운 말을 두고 ‘금일’로 쓴 것도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자를 섞어 사용하자는 사람들이 주로 내놓는 사례 중의 하나이다.
역시 언론에 나온 통계로 서울의 모 초등학교에서 ‘大韓民國’ 글자를 제대로 읽은 학생은 100명 가운데 48명으로 절반이 채 안 되었으며 ‘讀書’를 읽은 학생은 23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기자는 무엇을 알고 싶어 했을까? 
교육과정에는 중학교부터 한문을 선택 과목으로 배우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초등학교에서도 창의체험활동 시간을 이용하여 한자 교육을 할 수도 있다. 몇 시간을 한자 수업에 할애할지는 학교장의 재량이지만 한자 수업을 한다고 해도 연간 평균 6∼8시간에 그친다. 그런 아이들의 절반 정도가 ‘大韓民國’을 읽는다면 이는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의 영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겨우 몇 시간 학습으로 초등학생들이 한자를 안다면 도리어 이상한 일이다. 이는 읽기이고 쓰기에 들어가면 더 심각하다. 심지어 대한민국을 한자로 쓰지 못하는 대학생들도 다수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라 이름 하나도 제대로 못 쓰는 사람들이 대학에 다닐 수 있다는 것이 의아스러울 정도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세계적인 학구열을 가진 우리 아이들이 그 쉬운 글자를 모른다는 것은 한자가 얼마나 어려운 글자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다.
그렇다. 그렇게 안타까워 할 것도 없다. 대한민국을 한자로 쓰지 못한다고 우리나라 이름이라는 것을 모르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의미 전달이 목적이며 의미는 말의 맥락 속에서 전달된다. 그러기에 반드시 그 뜻을 풀어서 되새길 필요가 없다. 우리가 ‘하늘’을 가리킬 때 ‘바다 위나 땅 위로 해와 달, 무수한 별들이 널려 있는 무한대의 공간’이라는 뜻을 새기며 말하는가? 우리나라 국민들 중에 ‘큰 한민족의 국민들이 사는 나라’라는 대한민국의 뜻을 새기며 나라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한글전용이 습관화된 우리 아이들에게는 낱말의 뜻풀이를 한자에서 찾는 것은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이제 얼굴을 씻고는 세수(洗手)를 했다고 해도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는다. 세수라는 말에서 ‘손 씻는 일’이라는 뜻풀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세상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 생각과 다른 일들이 생기면 꾸짖기도 하고 직접 나서 바로 잡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전에 내가 생각하는 일이 정말 옳은 것인지 아니면 꼭 지켜나가야 할 규범인지 먼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세상일이란 붙박이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고 시류에 따라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때는 만고진리처럼 여겼던 사실도 시대에 따라 다르게 평가받는 것을 수없이 본다. 그러기에 내가 가진 지식이나 이념이 반드시 옳다고 고집할 것은 아닌 것 같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때로는 그게 아무리 옳다고 해도 원하는 대로만 살 수 없는 게 세상살이이다.
사람 좋은 황희 정승이 그랬다고 한다. 이 사람 말도 옳고 저 사람 말도 옳다고 했다가 부인에게 꾸중을 들었다고 했다. 지금 상황이 그렇다. 한글 전용론자들의 말도 옳고 국한문 혼용론자들의 말도 옳다. 이럴 때는 어떤 것을 선택하면 옳은 방법이 될까? 아직 판단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꼭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한자 병기의 교과서를 사용할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어떨까?
예전에는 한자를 모르면 문화생활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요즘의 아이들은 한자를 모르고도 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한자는 사용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없어질 글자이다. 억지로 잡는다고 남아 있을 글자도 아니다. 
왜 어른들의 옷을 아이들에게 억지로 입히려고 하는가? 조금 아쉽기는 하겠지만 논쟁은 그만 두자. 안타까워 할 것은 없다. 한자는 정말 후손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은 글자이다. 그냥 우리 어른들이 아는 만큼만 사용하다가 우리들 세대에서 끝을 내자. 내 입맛에 맞는다고 아이들에게 억지로 먹도록 강요하는 것은 어른들의 횡포일 뿐이다.
고성신문 기자 / gosnews@hanmail.net입력 : 2017년 0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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