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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자에게
김인애(시인)
왜 자꾸 나를 따라다니니?
이리 볕 좋은 날에.
성 어거스틴
인간의 실존의 문제를 잘 드러내는 작품 같다. 그 자에게 화자는 묻는다. 왜, 이렇게 볕이 좋은 날 나를 따라다니느냐고. 이 물음이 바로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갖게 되는 실존적 질문인 것이다.
강아지를 보면 누구나 그런 질문을 떠올릴 법하다. 아니 강아지가 그런 질문을 유발한다. 강아지는 아직 제대로 된 짐승의 이빨을 가지지 않았다. 마냥 순진무구한 표상이다. 그래도 강아지는 개임에 분명하다. 짐승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원죄의 문제가 환기된다.
실낙원에서는 저렇게 순진무구한 강아지에게 그림자가 존재한다. 깜깜한 밤에는 잘 보이지 않던 것이 햇볕 아래서는 너무나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그림자이다.
실낙원에서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누구나 달고 다니는 그림자는 원죄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해서 누구라도 실존적 질문을 하게 된다. 교부로 불리는 어거스틴의 <고백록>이 유명하다. 그는 당신께서 우리를 지으셨으므로 우리가 당신 안에서 쉴 때까지 우리의 영혼은 쉼을 누릴 수 없다고 고백했다.
위대한 성인에게도 그림자가 있다. 빛과 그림자, 이게 인간의 실존이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어거스틴 같은 경우 이 그림자를 깊이 인식함으로써 오히려 성인에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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