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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
정운 시인
불타던 해 서산으로 서둘러 넘어가고
흥겨운 아이들의 웃음소리 잦아들면
외로운 유람선마저 집으로 가고 싶다
장엄한 얼굴
아침의 태양보다는 석양이 더 생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한다. 산이건 바다건 어디에서나 석양은 장엄하고 찬란하다. 청춘이 싱그럽고 찬란한 것 같아도 정작, 노년이야말로 생의 원숙경으로서 청춘이 감히 엿볼 수 없는 숭엄함과 위대함을 함의한다.
김열규 교수는 <노년의 즐거움>에서 위인들의 초상화나 사진이 노년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심장하게 풀어내었다.
김 교수는 “노인 한 분이 숨을 거두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고 설파한 ‘20세기 검은 아프리카의 지성’으로 불리는 소설가 아마두 함파테 바가 1962년 유네스코 연설에서 말을 인용하면서 노년이 결코 쇄락기가 아님을 웅변했다.
김 교수 자신도 60에 고향 고성에 귀향하여 수많은 명저를 남기며 노년기를 가장 화려하게 수놓았다. 김열규 교수의 별세는 정말, 도서관 몇 개가 불타버린 듯했다. 지상에서의 삶이 영원할 수 없을진대, 장엄한 노년기, 생의 원숙기에 도달하고 난 이후 서산으로 서둘러 넘어가는 불타는 해같이 세상을 떠나도 무슨 아쉬움이 있겠는가.
아이들 웃음소리 잦아들고 외로운 유람선마저 귀가하는 밤이 다가와도 한 점의 아쉬움도 둘 것 없다. 생은 세상에 기억할 만한 초상화 한 점 남겨 놓고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밤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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