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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고성신문사 | 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가면 김수영(金洙暎) 문학관이 있다. 김수영은 강렬한 현실 의식과 저항 정신에 기초한 새로운 시정을 탐구한 작가로 ‘풀’이라는 시가 리 알려져 있다. 북한산 둘레길과 연산군의 묘가 있는 정도로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도봉구로서는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문학관이 보물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김수영이 도봉구와 특별한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김수영은 종로에서 태어났고 도봉구에서 살지도 않았다. 꼭 인연을 찾는다면 김수영의 어머니가 도봉구에서 떡장사를 했다는 것인데 그런 연고를 이유로 떡하니 문학관을 만들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사례는 도봉구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청마 유치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출생지와 성장지를 두고 거제와 통영이 연고를 주장하며 다툼을 하고 있다.
박목월도 경주 사람이지만 고성이 출생지라는 이유로 남산에 시비가 세워져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실제 인물이 아닌 전설과 설화 속의 인물도 연고를 찾아 현실의 인물로 둔갑시키고 기념관을 만들어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명의(名醫) 허준의 전설을 좇아 산청에서는 약초축제를 열고 있으며, 장성에 가면 홍길동의 생가를 복원하고 테마파크를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떨까? 행여나 우리 것임에도 불구하고 잃어버리거나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없을까?
지난 2월 9일이 제정구 선생의 18주기 기일이었다. 이에 앞서 1박2일 일정으로 서울과 경기도 일원에서 많은 분들이 묘소 참배를 위해 고성에 다녀갔다. 몇 년 지나면 부모 묘소도 제대로 찾지 않는 요즘 세상에 매년 잊지 않고 참배를 오는 분들을 보면서 생전에 선생님이 그들에게 남긴 정신적 유산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새삼 느낀다. 그리고 선생님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면서도 정작 선생님의 유업을 이어가지 못하는 고향 지킴이들이 부끄러울 때가 많다.
그래도 행사를 한다고 홍보를 하고 지역의 기관장들이 움직이다보니 주변에서 관심을 가지고 묻는 사람도 있다. 이번 행사에 몇 명이나 참석하느냐? 어떤 저명한 인사가 참석하느냐? 또 어떤 이는 묻는다. 제정구는 여당이었느냐, 야당이었느냐?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필자는 답답하다. 무엇을 알고 싶을까? 선생님이 여당이면 어떻고 야당이면 어떤가? 선생님의 정신이 중요하지 여야를 왜 따질까? 그리고 중앙의 대단한 정치가가 오면 이 행사의 격이 높아지고 그렇지 않으면 격이 낮아질까?
외지에서 찾아온 손님들의 연연한 추모 열기에 비해 정치적 해석을 앞세워 선생님을 경시하는 주민들이 안타까웠다. 그러면서 남의 것도 자기 것으로 만들고, 없던 것도 스토리텔링이라는 이름으로 둔갑시켜 지역의 고유 상품으로 만드는 세상을 보며 혹시나 했는데 결국 이번 추모 행사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시흥에서 제정구 선생 추모를 위해 기념관을 세우고 묘소를 옮겨가기 위해 조례를 만들고 있다는 폭탄 발언이 나온 것이다.이럴 때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하는 표현을 쓰는 것이리라. 그동안 제정구 선생 추모사업에 소홀했던 고성으로서는 야단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선생님의 묘를 시흥으로 이장(移葬)해 간다고 해도 지금 당장은 안타까워할 주민들은 별로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를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묘소를 시흥에 뺏겨서는 안 된다. 우선 고성 사람으로서 고성의 인물을 다른 지역에 넘긴다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리고 시흥이 묘소를 가져가려고 하는 이유도 잘 따져 봐야 한다. 선생님의 유품을 비롯하여 흔적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시흥으로 봐서는 제정구는 그 가치를 따지기 어려운 대단한 상품이다.
다시 말하자면 선생님은 본인이 원하였든 아니든 평범한 분으로 남을 분이 아니다.
선생님의 ‘가짐 없는 큰 자유’라는 철학은 아직은 이념과 정치색에 묻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지만 훗날 성인(聖人)으로 추대 받을 만큼 큰 인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 가치를 알기 때문에 시흥이 욕심을 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묘소를 뺏긴다면 훗날 땅을 치고 통곡하게 될 것이다.제정구 선생님은 고성의 큰 자산이다.
선생님은 대가면 척정리에서 태어나 대흥초등학교와 고성중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고향을 떠나 거센 풍랑의 근대사에 큰 흔적을 남겼다. 선생님은 정치인이기도 했고, 종교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선생님의 진면목은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했던 ‘빈민의 대부’에서 볼 수 있다.
선생님의 정신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가짐 없는 큰 자유’이다. 가지지 않겠다는 말은 자신이 가진 것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겠다는 말이다. 얼마나 숭고한 정신인가? 내 것을 버려 남에게 나누고 베푸는 정신, 그 정신은 곧 나라의 건국이념이자 교육이념이기도 한 ‘홍익인간의 정신’과 뿌리가 같다. 환웅과 단군은 신의 자손으로서의 부귀영화를 버리고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낮추었다.
그리고 선생님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청계천으로 찾아갔다. 이처럼 선생님은 스스로를 낮추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베풀었다.
그런 분이 고성 사람이라는 것은 우리의 큰 자부심이 아닐 수 없다. 그러기에 반드시 묘소를 지켜내야 하며 아울러 선생님의 철학이 고성 정신의 뿌리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고성은 시흥에 묘소 이전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보여야 한다. 그리고 빠른 시간 안에 행정과 의회를 비롯하여 기관 및 사회단체와 논의를 통해 추모 사업을 위한 실천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추모와 홍보 사업을 진행하고, 장기적으로는 묘소 정비 및 기념관 건립으로 고성이 제정구의 고향임을 널리 알리는 사업을 해야 한다.
교육 기관에서는 지역교과서 수록이나 지역 특색 사업으로 선생님의 고귀한 정신을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울러 제정구를 매개로 시흥과 물적·인적 교류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어쩌면 이번 사안이 시흥에 선점 당했던 제정구 추모사업을 되찾아올 수 있는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
행정과 의회에서도 대책을 세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고성포럼과 고성사랑회 등 사회단체들이 참여하여 시흥과의 청소년 교류나 선생님 유품 전시회 등 선생님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봄이 오고 있다. 시인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하고 노래를 불렀다. 어쩌면 우리도 내년쯤에는 빼앗긴 들에서 노래를 불러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오지 않도록 고향인 고성에서 제정구를 지키고 그 정신을 이어가는 사업이 활발하게 펼쳐져야 한다.
제정구를 알고 배우자. 제정구의 정신을 우리가 먼저 실천으로 옮기자. 지자체가 앞장서고 주민들이 함께 하여 온전한 우리의 들에서 봄을 맞도록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