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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구기념사업회 원혜영 이사장과 제정구선생고성기념사업회 이진만 회장이 제정구 선생 추모식에서 초헌을 맡았다. |
ⓒ (주)고성신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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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대표로 장녀 제아름 씨가 제정구 선생에게 헌주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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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평호 군수와 황보길 의장이 제정구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며 고인을 기렸다. |
ⓒ (주)고성신문사 |
| “도시빈민을 내버려두고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허구이며 위선이다.”
가짐 없는 큰 자유를 실천했던 빈민의 대부이자 민주주의의 거목이었던 제정구 선생 서거 18주기 추모식이 지난 4일 대가면 척정리 척곡마을 묘소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식에는 선생의 아내 신명자 여사를 비롯한 유가족, 선생의 보좌진으로 정치계에 입문한 조정식 의원, 생전 선생의 비서였던 김윤식 시흥시장, 박종훈 경남도교육감, 고인과 함께 빈민운동에 투신했던 이들과 시흥시민들이 참석해 고인을 기리며 추모했다.
사단법인 제정구기념사업회 원혜영 이사장, 제정구선생고성기념사업회 이진만 회장이 초헌, 시흥의 사회복지법인 복음자리 관계자를 비롯한 참배객들이 아헌, 장녀 제아름 씨와 유가족이 종헌을 맡아 제례를 진행했다.
추모식에서 제정구선생고성기념사업회 이진만 회장은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선생님의 정치적 행적을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베풂의 삶을 산 선생님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따르기 위해서”라며 “선생의 뜻을 배우고 실천하는 작은 제정구가 이 사회에 넘쳐날 때 비로소 우리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제정구기념사업회 원혜영 이사장은 “지난해는 국민적 각성의 해였다”면서 “국민이 주인인 나라,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가 과제인 상황에서 늘 보여주고 실천했던 제정구 선생의 뜻을 기리며 나눔으로써 풍성해지는 대한민국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윤식 시흥시장은 “가난한 이들, 힘든 상황을 접할 때면 늘 제정구 선생님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면서 “해야할 일이 정말 많은 세상에 살면서 항상 제 선생님의 큰 가르침이 힘이 된다”고 말했다.
이날 시흥과 서울에서 온 참배객들은 묘소 참배 후 고성오광대 전수교육관으로 이동해 공연을 관람하고 다음날 문수암과 하일면 학동마을 등을 둘러봤다.
1944년 대가면 척정리에서 태어난 제정구 선생은 대흥초등학교와 고성중, 진주고를 거쳐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유신시절 학생운동으로 15년형을 선고받았다. 1970년대 초반 청계천이 ‘사람이 갈 수 있는 가장 밑바닥’이라 불리던 시기, 청계천 판자촌 활빈교회에서 기거하며 야학을 시작, 서울 양평동 뚝방마을로 이주해 빈민들과 함께 생활했다.
이후 77년 마을의 강제철거로 정일우(존 데일리, 2014년 6월 2일 선종) 신부, 빈민들과 함께 경기도 시흥에 정착해 복음자리마을과 한독마을, 목화마을을 건설하고 85년에는 천주교도시빈민사목협의회를 창립, 도시민빈연구소를 세우는 등 평생을 도시빈민운동에 바쳤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86년 정일우 신부와 함께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고, 88년 정치계에 투신한 후 민주주의를 위한 행보를 보였다. 1999년 2월 9일 폐암으로 별세한 후 같은 달 국민훈장모란장을 추서받았다. /최민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