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도 그럴 것이 인구 5만5천 명 남짓하고, 땅덩어리 중 5분의 1이 농경지인 이 작은 고장에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행정각료들이 줄줄이 배출됐다. 행정고시 합격자는 국내 최다요, 장관만 7명에다 관계에 진출한 서기관급 이상의 인물들만도 250명은 족히 된다니 다른 고장 사람들에게 고성은 ‘놀랄 노’자이기는 하겠다.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걸 좋아하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한낱 흥밋거리정도일 뿐이겠지만, 세상에는 풍수지리학적 명당이라는 것이 있다. 조상의 묘를 잘 쓰면 자손이 잘 산다는 것도, 배산임수의 땅에 집을 잘 들어앉히면 대대손손 번창한다는 것도 전부 이 풍수지리학에서 나왔다.
그런데 또 어떤 이들은 사주팔자도 풍수지리도 사실은 과학적 데이터로 볼 수 있다고도 말한다. 수백 년 수천 년을 지나면서 쌓이고 쌓인 통계를 근거로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고성이 숱한 인물들을 배출한 것은 말 그대로 산이 좋고 땅이 좋고 물이 좋아서일지도 모른다.
고성이 낳은 인물들을 꼽아보자. 서벌, 박목월 등 걸출한 문학인들은 물론이고 이 땅의 소외된 이들을 위해 투신한 빈민운동가이자 국회의원 제정구, 불교계 독립운동의 선봉장으로 만해 한용운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백초월 스님처럼 나라의 큰 스승과 같은 인물들이 고성 사람들이다.
어디 이뿐인가. 지구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의 16좌를 전부 등정한 엄홍길 대장도 해마다 고향 고성을 찾는 고성 사나이고, 김학렬 부총리를 비롯한 국회의장을 지낸 김형오 의장, 전국 각지에서 배출된 국회의원은 다 손에 꼽을 수도 없다. 한때는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박사마을도 고성 곳곳에 있어서 박사도 교수도 흔한 동네가 바로 고성이다.
고성의 인물 농사가 대풍이라는 것을 놓고 ‘산’에 주목하는 이들이 많다. 고성의 주산인 천왕산을 중심으로 자리잡은 크고 작은 산들은 그렇지 않은데 유독 거류산이 ‘도망가는 산’의 형태를 취하니, 고성사람들이 외지에서 더 크게 출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백두대간 태백산맥의 지리산에서 뻗은 산줄기 중에서 굵고 험한 산들은 모두 산청과 하동으로 빠지고, 야트막하고 순한 산줄기들만 고성으로 이어져 있어 악산이 없다는 것을 이유로 꼽기도 한다.
그러니까 고성의 진산, 주산으로 꼽히는 무량산과 천왕산, 연화산이 고성군 전체를 병풍처럼 아늑하게 싸안고 있는 지형적 요건으로 고성이 인물 배출의 요람이 됐다는 설이다.
어쨌거나 고성이 명당이라는 점 그리고 인물의 고장이라는 점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그런데 명당 중에서도 명당으로 꼽히는 곳이 몇 군데 있다. 구만면 화림리 화촌, 대가면 송계리 송계, 하일면 학림리 학동, 상리면 망림리 망림, 개천면 청광리 청광, 개천면 좌연리 신평, 마암면 장산리 장산. 이 일곱 마을은 자녀가 대성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투자를 아끼지 않는 부모들이라면 주목해볼 만한 동네다. 이 일곱 마을은 최고의 인물을 배출할 수 있는 ‘기운 상승’의 명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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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만면 화림리 화촌마을은 평화로운 지형처럼 사람들의 인품도 온화하다. |
ⓒ (주)고성신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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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만면 화림리 화촌
구만면 화림리 화촌 고성에서 독립만세운동이 가장 먼저 시작된 구만천이 있는 동네다. 순국지사인 최정원 선생의 창의비도 이 마을에 있다.
예전에는 내원(內院)이라고 불렀다. 미암산과 용암산이 마을을 품에 끌어안고 있는 듯한 안동네라는 말이다.
화촌은 말 그대로 꽃동네라 봄이 오면 온갖 꽃들이 마을을 수놓으며 아찔한 기운이 몰려온다.
두 산이 감싼 마을의 앞으로는 넓은 평야가 펼쳐져 굳이 풍수학적으로 따지지 않더라도 마을사람들의 성품 자체가 온화하고 바지런하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애민애국을 부르짖으며 의병을 일으킨 최균, 최강 형제가 난 곳이니 동네 사람들의 성품을 알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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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면 송계리 송계마을은 예부터 주경야독하는 선비가 많은 학문의 고장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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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가면 송계리 송계
고성 학생 독립운동의 시발점이었던 송계의숙이 있던 대가면 송계리 송계는 지리적으로 고성군의 정중앙에 자리했다. 송계마을은 혼둔산과 소풀산의 줄기가 시루봉까지 타고 내려와 마을을 싸안은 모양이라 평온하면서도 마을주민간 단합 하나는 일등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송계리에는 예부터 유독 소나무가 많았다. 송림 앞으로는 시냇물이 흘러 마을 이름도 송계가 됐다.송계마을은 지세가 어찌나 좋았던지 마을 여기저기에 고분이 흩어져있고 금속칼이며 토기들이 곳곳에서 출토되는 것을 볼 때 아주 오래 전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예로부터 주경야독으로 입신한 선비들이 많은 학문의 동네인 까닭에 송계의숙이 들어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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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일면 학림리 학동마을은 좌이산과 필봉이 좌청룡 우백호의 형상을 이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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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일면 학림리 학동
학동마을은 익히 알려진대로 전주최씨 집성촌이다. 아직 학동으로 들어오기 전, 전주최씨 선조 한 명이 꿈을 꿨다. 그는 꿈에서 하늘에서 학이 훨훨 내려와 알을 품었단다.꿈이 심상치 않다 여긴 그는 날이 밝자마자 꿈에 본 그 곳을 찾아가봤더니 그야말로 산수가 수려하고, 그 지세 또한 필연적으로 천년대계할 명지라는 생각에 학동이라 이름지었다고 전한다.돌담길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하일면 학림리 학동마을은 하늘에서 보면 어미학이 알을 품고 있는 모양새인 데다 굵은 산줄기가 출중한 기운을 내뿜는 수태산의 장맥이 학동에서 끝맺음을 하고 있어 자손들이 출세하는 지형이다.게다가 마을 앞의 좌이산이 붓모양의 필봉을 바라보고 있으니 좌청룡 우백호의 지세에 마을 옆을 흐르는 학림천이 기세를 더해 천년대계의 명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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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면 청광리 청광마을은 산세가 쭉 뻗은 덕에 올곧은 선비들이 많이 배출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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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천면 청광리 청광
개천면 청광리는 원래 청동과 청남이 한 마을이었다가 나눠진 지 이제 겨우 30년 남짓 됐다.
마을 지세를 보아하면, 청동의 보장산과 청남의 필봉산이 마주보며 마치 밀어를 속삭이는 듯한 형세다. 그래서인지 희망이 퐁퐁 샘솟는 명지로 꼽힌다.
뒷산의 모습이 얼핏 보면 달마의 형상이라 과연 명당은 명당인지, 옛날부터 청광리에는 서재와 사찰 등이 많았다.
마을 뒷산은 남향으로 나즈막하고 평온하게 뻗어내려 높지 않은 산세로, 음달과 양달이 적절하게 들어 빛의 조화가 기가 막히다.산세가 쭉 뻗은 보장산은 그 기세가 웅장하고 당당하면서 기백 넘치고 올곧은 성품의 선비들이 많이 배출됐다. 붓끝을 닮은 필봉산 아래에서는 그 모양새 덕분인지 명석한 두뇌는 물론 뛰어난 예술성을 가진 인물들이 많이 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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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면 좌연리 신평마을은 천하를 호령할 인물의 탄생이 기대되는 마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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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천면 좌연리 신평
매는 인내심이 뛰어나고 지략이 뛰어난 새다. 목표물은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고려시대부터 매 사냥은 귀족들의 고급스러운 취미였다.
또한 맹금류 중에서도 하늘의 제왕으로 꼽힌다. 작은 일로는 다투지 않는 의로운 새이기도 하다.날렵한 매의 형상을 닮은 매봉산이 바로 뒤에 자리잡아 당당한 인재들을 배출한다는 개천면 좌연리 신평은 천하를 호령할 인물이 탄생할 명당이라고들 한다. 매의 웅장하고 당당한 기품, 날카로운 안목을 가지고 이 땅을 위해 큰 힘을 더할 굵직한 인재의 탄생이 기다려지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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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암면 장산리 장산마을은 예로부터 선비들의 학식과 풍류가 넘치던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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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암면 장산리 장산
지난 여름,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배경으로 등장해 관광명소로 거듭난 장산숲이 있는 마을, 마암면 장산리 장산마을은 뒷산이 마치 노루가 마을을 감싼 듯한 지세다.
600년 전 조선 태조 당시였다. 마을에 바다가 비치면 좋지 않다는 풍수지리적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호은 허기 선생은 1천m쯤 되는 숲을 만들었다. 이후 숲 가운데에 연못을 파고 정자를 지어 시 한 수와 함께 뱃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풍류를 즐긴 숲과 연못이 남아있어 낙지(樂地)로도 불린다. 그 덕분일까. 장산마을에는 고려 개국공신은 물론 정재학계 할 것 없이 수많은 인물들이 배출돼 손에 다 꼽을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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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리면 망림리 망림마을은 병풍처럼 둘러싼 산 가운데 팔송정이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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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리면 망림리 망림
마을 앞을 빙 둘러쳐 아늑하게 마을을 품는 산세는 물론 너른 들과 문수암 아래 우거진 팔송정은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런 아름다움을 보면서 항상 희망을 갖고 살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바랄 망(望)에 수풀 림(林)을 더해 망림으로 이름 붙었다.
백운산의 기운이 후학을 기르는 근본으로 소문난 상리면 망림리 망림은 뒤로는 백운산, 앞으로는 문수산에 마을 가운데 팔송정을 끼고 있어 그 풍광만으로도 누구든 힐끔 봐도 명당임을 알 수 있다.
특히나 백운산은 마을을 쓰다듬는 모습이라 위로는 어른을 공경하고 아래로는 사랑과 조화가 빼어난, 다툼 없고 두뇌 명석한 이들이 많이 배출되는 고장이다.
새벽의 미명을 누구보다 먼저 알리는 성실함은 물론 붉은 볏이 벼슬을 상징한다고 해서 조선시대 과거를 앞둔 선비라면 누구든 그림 하나쯤은 품고 있었다는 붉은 닭의 해다. 가장 먼저 아침을 깨우며 희망을 전하는 붉은 닭의 기운과 고성군내 일곱 명당의 기운이 더한다면 올해는 대한민국을 뒤흔들 대단한 인물의 탄생을 점쳐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