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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타세콰이어에 기대어
이은정
텅 빈 하늘을 꿰매려 바늘잎이 물든다
그 눈부신 위로에 퀭한 눈이 촉촉해진다
나무못이 자란 땅은 여간해서 빈틈이 없다
시적 진실
시적 진실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지는 것이 아니다. 시는 소위 말하는 과학적 진실 너머를, 그것도 한창 넘어서 말하는 매혹적인 장르이다. 언제부턴가 내 감각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아마 그것은 나이 든 탓이 아닌가 한다.
특히 눈이 더욱 그렇다. 젊은 때 보는 사물과 지금 보는 사물은 차이가 많이 난다. 젊었을 때 바라보던 세계와 지금 바라보는 세계가 다른 것은 가치관의 변화 때문이기 하겠지만, 시력의 감퇴와도 분명 연관이 있다.
나이 들어 가장 고통스러운 것 중 하나가 시력 저하로 돋보기를 쓰지 않으면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 뿐 아니라 비문증도 와서 눈앞에 떠다니는 부유물 때문에 맨 눈으로는 다닐 수가 없는 것도 그렇다.
본의 아니게 늘 선글라스를 끼고 다닌다. 다초점 안경으로 책을 읽으면 시야를 돌릴 때 그 느낌도 참 좋지 않다. 젊은 시절에는 맑고 밝은 눈이어서, 사물이 깨끗하고 정확하게 보였는데, 그때 그리울 따름이다.
그때 본 사물은 정말 그 본질이었을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나일 들수록 과학적 진실보다 시적 진실이 더욱 위대하다는 것을 체감하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이 디카시는 과학적 진실로는 볼 수 없는 걸 보고 말한다.
“텅 빈 하늘을 꿰매려 바늘잎이 물든다”라고 언술하지 않는가. 이런 건 과학적으로는 도무지 입증할 수 없는 시적 진실이 아닌가? 시인은 시적 진실을 말하는 자이다. 그리스의 위대한 시인 호메르스가 맹인이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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