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트를 말아놓은 머리에는 형형색색의 보자기를 둘러쓰고, 떡집 앞에 하염없이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빨간 고무대야에 햅쌀을 담아놓고 떡 순서를 기다리는 것은 필수코스였다. 명절 전날 밤까지도 떡을 못하면 동네 오토바이, 경운기를 동원해서라도 떡은 꼭 해야 했다. 10년 전만 해도 그랬다.
추석을 앞둔 시장에서 새벽부터 제일 바쁜 곳은 떡집들이다. 떡집의 하루는 새벽 서너 시부터 시작된다. 백설기, 절편과 가래떡을 시작으로 약밥, 감자떡, 호박떡 등등 다양한 주문들로 떡시루가 쉴 틈이 없다.
“예전에는 저 앞에까지 줄을 서있었어요. 대목장이면 말도 못하게 바빴지요. 숨쉴 시간도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다들 어렵기도 하고, 떡을 즐기지 않아서인지 전 같지가 않네요.”
한가위를 일주일도 채 남기지 않은 새벽, 고성시장 수화떡집 시루에서는 한창 김이 오르고 있다. 곱게 빻은 쌀을 증기로 쪄내 기름 바른 손으로 주물거리다 보면 참기름 냄새 솔솔 나는 절편이 나오고, 그 덩어리를 기계에 넣어 길게 뽑아내면 가래떡이 나온다.
한쪽에서는 달콤한 냄새에 윤기가 좔좔 흐르는 약밥이 만들어지고, 김이 폴폴 오르는 약밥에는 주인장 서성화 씨와 실장 홍승길 씨가 일일이 대추와 아몬드를 한 알씩 심는다. 떡 한 판이 나오기 무섭게 서성화 씨는 배달을 나선다. 명절 특수란다.
쌀 한 톨도 귀하게 여기던 시절에는 달달하면서도 기름 냄새 고소한 떡이 덩달아 귀한 대접을 받았다. 명절이나 제사에서, 일 년 가야 몇 번 맛보지 못하는 귀한 음식이 떡이었다. 그러니 밤을 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떡집 앞에 줄을 서고, 새벽에라도 떡이 다 됐다는 전화 한 통이면 떡을 찾으러 달려가기가 예사였다.
하지만 요즘은 주문떡보다 팩에 담아놓은 떡을 사가는 이들이 더 많다. 명절에도 차례상에 몇 점 올릴 뿐이니 전처럼 몇 되씩 쌀을 담아 빻고 찌고 하는 수고가 사라졌다. 덩달아 떡집 시루들도 아침나절 떡을 쪄낸 후에는 종일 쉬는 날이 많다. 명절 전에 반짝 바쁜 정도다.
낱낱이 흩어지는 쌀알을 빻고 찌고 찧으면 끈끈하게 엉겨붙는 것처럼 떡은 가족간 화합을 상징하기도 하고, 긴 가래떡은 무병장수를 기원했고, 하얀 떡들은 삶이 그 순수한 흰 빛처럼 맑고 곱기를 기원했다.
경기가 얼어붙고 사람이 줄어들면서 명절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다고들 한다. 추석 때때옷을 장만하려는 사람들도, 새 신발을 사려는 사람들도 전만큼 북적이지 않는다. 하지만 추석은 추석이다. 곧 흩어져있던 가족들이 고향으로 모여들 것이고, 조용하던 고성은 시끌벅적해질 것이다. 말 그대로, 더도 덜도 말고 풍성한 한가위만 같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