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숨 막히는 폭염의 연속이다.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사람들은 에어컨 켜진 집안에서 시간 보내기,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해수욕 즐기기, 이국적인 풍경을 즐기는 해외여행 등등 제각기 다양한 피서법으로 더위를 쫓는다.
그럼 시원한 사람을 만들어주는 에어컨도, 끈적한 습기를 없애주는 제습기도 없던 옛날 옛적 조상들은 어떻게 이 삼복더위를 이겨냈을까? 답은 ‘숲’이다.
옛 선비들은 오뉴월 염천을 견디려 괴나리 봇짐을 들쳐 메고 금강산으로, 설악산으로 풍류 가득한 여름 여행을 떠났다. 여의치 않거나 그마저도 귀찮은 이들은 동네 숲 사이를 흐르는 계곡의 졸졸대는 소리를 벗 삼아 장기를 두고, 시조 한 수 읊으며 시간을 보냈다.올해 여름은 시작부터 폭염이다. 그렇다면 옛 선조들처럼 올 여름, 눈은 물론이고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는 녹음에서 이 더위를 이겨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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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모봉의 키 큰 편백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편백나무가 내뿜는 피톤치드와 시원한 녹음, 바람소리와 새소리가 일상의 고단함을 훌훌 털고 지친 마음을 쉬게 한다. |
ⓒ (주)고성신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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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가 어루만지는 일상의 고단함, 갈모봉 산림욕장
고성읍에서 상리면 방향으로 약 10분. 왼쪽으로 게딱지마냥 작달막하고 고만고만한 집들 뒤로 얕은 산이 눈에 들어온다. 공룡 한 마리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길목을 지나 구불구불한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면 편백의 향긋함이 눈으로도 전해지는 기분이다.
갈모봉 산림욕장은 침엽수 가운데 피톤치드의 배출량이 압도적이라는 편백나무들이 줄지어 서서 산행객을 맞는다. 해발 368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늘씬한 편백나무 사이 오솔길을 천천히 자분자분 걷다 보면 완주까지는 2~3시간 걸린다.
조붓한 오솔길에는 편백나무조각들이 깔려있어 가벼운 차림으로, 운동화만 챙겨 신으면 누구나 오를 수 있다.
나무는 각종 박테리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특유의 향기와 살균력이 있는 피톤치드에는 살균과 진정작용이 있다 하더니, 갈모봉을 오르는 이들 중에는 심신이 고단하고 지친 이들, 크게 앓고 나서 건강을 챙기려는 이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산 아래에서부터 시작되는 편백나무 숲은 한바탕 비가 쏟아진 후에는 그 향이 더욱 짙어진다. 산 초입의 1주차장부터 차근차근 4주차장까지 오른 후, 계곡을 지나는 탐방 데크와 조금씩 높아지는 산에 맞춰 계단을 오르다보면 심호흡이 시작된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편백이 내뿜는 향기와 싱그러움이 가슴 깊숙이 스며든다.
키 큰 편백나무 이파리들 사이로 여름 볕이 조금씩 내리기도 하지만, 선베드에 누워 나뭇잎에 부서지는 여름볕을 보고 있자면 천국이 따로 없다.
산책로를 따라 숲길을 걷다 보면 길이 갈린다. 이정표 앞 수도에서 잠시 땀을 식힌 후 다시 출발한다. 어느 길로 가건 편백이 뿜는 향취에 취하기는 매한가지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과 여우바위봉으로 가는 길로 또다시 나뉜다. 여우바위봉으로 향하는 바위전망대에서 만나는 삼산면 바다가 장관이다. 또다른 길을 택해 정상에 올라서면 이번에는 고성읍 전경이 또 하나의 진풍경이다. 일상에 지친 가슴 속까지 시원해지니, 이만한 피서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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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그대로의 원시림에 명상을 더한 오두산 치유숲은 나를 돌아보는 새로운 힐링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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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림의 미학, 나를 찾는 여행, 오두산 치유숲
산의 형세가 까마귀의 머리를 닮았다. 그래서 이름도 오두산이다. 아무리 높은 곳이라 해봐야 해발고도 430m 남짓이다. 그러니까 직선이라고 생각하면 초등학생이 질주한다 해도 끽해야 1분 30초면 끝나는 거리다.
그러나 오두산은 명색이 치유숲이다. 느림의 미학이 살아 숨쉬는 숲이다.
오두산이 사람들을 맞이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사람의 발길을 허락한 지 2년도 채 안 된 오두산 치유숲은 원시림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곳곳에 다양한 조형물들을 배치해 오묘하고 때로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켜켜이 쌓인 시루떡 같은 너덜돌길은 원시림과 어우러져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길목마다 자리한 돌탑은 스쳐 지나지 못하고 꼭 조약돌 하나씩을 찾아 올리게 만든다. 쉬엄쉬엄 걷다 보면 왕복 2시간은 족히 걸리는 숲길이, 솟은 땀을 절로 식혀준다.
회색 도시, 빌딩숲에 살면서 구두와 하이힐에 갇혀있던 발을 벗고, 서늘한 너덜돌길과 포근하고 보드라운 흙길, 낙엽들을 바스락거리며 밟다 보면 돈 들여 마사지 받은 것보다 더 시원하다.
치유숲길 입구에서 출발해 중간중간 시선을 사로잡는 예술작품들과 속닥거리듯 길을 오르다 보면 오두산 치유숲 전체가 커다란 우주인 것만 같다.
자아성찰은 물론 나아가서는 인간의 존재가치까지, 일로만 꽉 차있던 머리를 비우고 ‘나’를 되찾게 하는 숲이다. 오두산은 생각하게 하는 숲이다. 기계로 떠다 나른 것이 아니라 사람이 하나하나 들어 나른 바위들은 천 년은 그 자리를 지켰을 법한 나무들 사이사이를 빼곡하게 메우며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들어낸다.
입구에서 출발해 마침 장마로 불어난 개울의 지즐대는 목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나무들이 뿜어내는 진한 향기와 함께 생각에 잠긴다. 사색의 길이다. 오두산에 지천인 너덜돌들로 쌓아올린 소망탑들을 지나면 비상폭포와 입바위까지 소리길이 펼쳐진다. 소리길은 이름답게, 쉴 새 없이 새 둥지를 만드는 딱따구리 소리와 이름 모를 새소리, 바람이 스치는 나뭇잎의 서걱거림이 가득하다. 폭염이라는 산 아래 세상을 잊게 하는 무릉도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