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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다림
시인 정사월
먼 길 돌아여기 이 길 끝에
이렇듯 환한 웃음으로 서 있을 수 있음은
긴 장마, 뜨거운 햇살을
온 몸으로 버텨낸 시간의 보답일거야
기다림의 변증법
왜 그럴까? 갑자기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이라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명구가 생각난다.
이 디카시나 <모란이 피기까지는>은 다같이 ‘기다림’을 주제로 한다. 김영랑의 화자는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고 있고, 이 디카시 역시 접시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과정이 드러난다. 김영랑의 모란은 찬란한 슬픔의 봄을 표상한다.
봄은 희망이지만 또한 슬픔의 역설이다. 꽃은 피나 곧바로 또 진다. 희망은 이루어지나 금방 또 슬픔으로 바뀐다. 긴 장마, 뜨거운 햇살을 견디고 온 몸으로 버텨 접시꽃을 피웠으나 접시꽃 또한 금방 져버릴 것이다. 언제나 기다림은 희망과 함께 슬픔을 전제로 한다.
이 디카시에서는 ‘환한 웃음’이 클로즈업되어 있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슬픔이 투영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설령 그렇더라도 내년에 또 환히 필 접시꽃을 생각하면, 슬픔은 또 기쁨을 전제로 한다. 생은 기다림의 변증법이기도 하고, 기쁨과 슬픔의 변증법이며 역설이기도 하다.
접시꽃의 환한 얼굴 이면에 감추어진 슬픔을 이 디카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사진영상에서는 이미 어떤 꽃잎은 벌써 지쳐 축 쳐지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언밸런스도 디카시의 매혹적인 텍스트성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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