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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이 곧 미래였던 시절을 기억하십니까

1950년 5월, 고성농고 토마토 농사 실습 현장
잠방이에 고무신이면 천하무적 농사꾼

최민화 기자 / 입력 : 2016년 05월 27일
1950년 5월 22일 고성농고 학생들의 토마토 순 치기 실습 후 기념 사진
ⓒ (주)고성신문사
농사도 컴퓨터로 짓는 시대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스프링클러가 알아서 웽웽 돌아가며 밭에 물을 뿌려주고, 온도도 알아서
춰준다.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한 달쯤 전인 1950년 5월 22일, 고성농업고등학교 학생들의 토마토 순 치기 및 북 돋기 실습을 마치고 찍은 흑백사진은, 시선도 제각기고 포즈도 제각기인데 심지어는 사진 찍느라 표정까지 뻣뻣하니, 얼핏 웃음이 난다.
그때는 경남항공고등학교가 아닌, 고성농업고등학교였다. 지금이야 고성을 항공산업의 메카로 만든다고 법석이지만 그때만 해도 고성은 논밭이 전부였으니, 식상하지만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시절이었다.
한국 최초의 컴퓨터가 1967년에 개발됐다고 하니 컴퓨터는 고사하고, 농사는 기술이 아닌 노력이던 시절이다. 아침 볕이 내리기 시작하면 논밭에 나가 풀을 뽑고 벌레를 잡았고, 해질 무렵까지 허리 한 번 펼 틈 없이 쉬지 않고 손을 놀려야만 농사다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17, 18살 남짓한 소년들은 봄이면 채소의 순을 따서 양분이 골고루 퍼지게 하고, 여름이면 상하는 과실은 없는지, 상하면 어째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접붙여야 더 좋은 농산물을 얻는지 등등을 배웠다. 
쌀 몇 섬 더 생산하는 것이 온 동네의 목표이자 모두의 꿈이었던 시절, 먹고 살기 위해서 농업에 대해 배우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또한 그걸 배우는 소년들은 요즘으로 치면 ‘선도농업인’이었고, 배운 사람들이었다.
요즘처럼 질 좋은 운동복이나 등산복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땀 흡수 잘 되고, 통풍 잘 되는 면 소재 옷들이 널린 세상도 아니었다. 일명 ‘난닝구’에, 잠방이는 둘둘 말아 올리고, 물이 들어가도 ‘까딱 없는’ 검정 고무신만 신으면 천하무적 농사꾼이었다. 좀 해지고 구멍 좀 뚫리면 어떤가. 멋에 목숨 걸 법도 한, 스무 살도 안 된 소년들이라도 그때는 멋보다 당장 먹고 사는 기술 습득이 최우선이었다.
사진 속의 스무살도 채 되지 않은 까까머리 소년들은 이제 80세를 훌쩍 넘긴 할아버지들일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 소풍이 끝나서 하늘로 돌아간, 영원한 소년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만큼 먹고 살만해졌다는 것이다.
최민화 기자 / 입력 : 2016년 0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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