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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기념일
박명수
20년 전,
오늘이었습니다
그대는 아름다웠습니다
내 앞의 그대는
늘 오월의 신부입니다
존재의 본질
결혼 20주년을 맞아 부부의 정을 새삼 다시 확인하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장정일의 시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켜고 끌 수 있다면’을 최근 우연히 다시 읽었다.
내가 단추를 눌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라디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전파가 되었다
내가 그의 단추를 눌러 준 것처럼
누가 와서 나의
굳어 버린 핏줄기와 황량한 가슴 속 버튼을 눌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전파가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
이 시는 김춘수의 <꽃>을 패러디한 시다. <꽃>이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를 깊이 있게 노래했다면, <라디와 같이 사랑을 켜고 끌 수 있다면> 은 오늘의 가벼운 세태를 풍자한 것이다. 라디오를 켜고 끄는 것과 같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것이 비단 오늘의 사랑만은 아닐 것이다.
디카시 ‘결혼기념일’의 화자는 20년 전 오월의 신부가 자신에게는 늘 오월의 아름다운 신부로 곁에 있다고 고백한다. ‘결혼기념일’은 라디오를 켜고 끄는 것 같이 존재가 한없이 가벼워지는 세태 속에서 존재의 본질을 다시 확인시켜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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