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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린 벗, 우리는 5남매입니다

첫째 정영례 씨 부부 고성 정착 후 동생들 불러
반경 1㎞ 내에 모여사는 5남매, 얼굴 붉힌 적 없어

최민화 기자 / 입력 : 2016년 04월 23일
정영례 씨 부부(제일 오른쪽 첫번째 두번째 줄)를 시작으로 5남매는 고성에 새로운 둥지를 틀고 20여년을 변함없이 동고동락하고 있다.
ⓒ (주)고성신문사
배둔 5남매 집안에는 언제나 웃음이 마를 날이 없다. 사진 오른쪽부터 나이순
ⓒ (주)고성신문사

밤새 비바람이 지나간 다음날이었다. 오랜만에 먼지도 없는 쨍한 날씨라 초여름 더위까지 느껴졌는데, 마을 입구에서부터 물줄기 소리가 시원하다. 그런데 폭포소리보다 더 큰 웃음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전라남도 고흥 출신이에요. 여덟 남매 중에 다섯이 한 마을 1㎞ 반경 안에 모여 삽니다. 20년이 됐지만 얼굴 붉힌 적 한 번도 없어요. 화낼 일이 있어도 참지요. 그러고 돌아서면 또 금방 풀려요. 형제니까요.”
전라도 사투리가 진하고, 왁자한 웃음이 즐거운 이 집 남매 부부들을 순서대로 읊어보자면 큰누나 정영례 씨와 가족들 사이에 군진형님으로 통하는 남편 제정윤 씨, 둘째 정경수 씨와 순천 출신 아내 윤미숙 씨, 셋째 정성림 씨와 순천 출신 남편 윤인근 씨, 넷째 정경심 씨와 제천 출신 남편 김병수 씨, 막내 정경자 씨와 장흥 출신 성경석 씨. 숨 짧으면 남매들 이름 읊다가 숨찰 판이다.
30년 전 처음으로 고성에 둥지를 틀고 동생들을 불러 모은 큰누나 정영례 씨의 남편 제정윤 씨는 5남매, 5동서 탈탈 털어 유일한 고성 출신이다. 
“우리 형님만큼 대단한 사람이 없소. 팔이 불편 안 허요. 그런데도 한 팔로 농사 지어 기반 잡고 동생들 다 불러 모아 이만큼 살게 했잖어요. 장애가 있으면 어떠요. 장애가 뭐 숭이요? 숨길 일이요? 우리한테는 저런 형님, 세상에 없소. 친형도 그리는 못 허요.”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다. 제정윤 씨는 젊은 시절 공장에서 일하다가 기계에 팔이 끼어 오른팔을 잃고 장애2급 판정을 받았다. 몇 년 후에 고성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날부터 땅을 일구고, 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정직한 땀방울이 결실을 맺으면서 아내의 동생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단다. 그때가 막 IMF가 터지면서 동생들의 사업이 줄줄이 도산했던 시기다.
“다 어려울 때니까 그냥 내려 오라 했지예. 모여서 살다 보면 어떻게든 방법이 안 생기겠나, 했지, 뭐. 빤쓰 한 장 가지고 내려온 동생들 그래도 집도 사고 차도 사서 잘 살고 있으니 내가 사람 만들어 놨다 아이요.”남이라면 싸울 법한 말인데도 이 남매들은 시종일관 깔깔깔 웃음과 함께 여기저기서 동의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럴 때면 처제와 형부 사이가 남매인 것 같고 동서간이 친형제 같다. 그렇게 20년을 살았다니, 닮을 만도 하다.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부부싸움도 하고, 형제간에 서운한 점도 가끔 생깁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약속했어요. 마음 상하지 말고 살자, 의 상하지 말고 살자고.”
한 배에서 난 자식들도 아롱이다롱이라는데 어찌 마음 상하는 일이 없을까. 한참 힘든 시기에 한둘씩 모이다 보니 고비도 숱하게 겪었다. 말 그대로 지지고 볶고 살았지만 멀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사는 것은 타고난 성향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 덕분일 것이다.
“조카와 손자까지 다 모이면 50명쯤 됩니다. 워낙 사람이 많으니 어디 식당을 가기도 힘들고, 그러니 그냥 집에서 모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일주일에 두 번은 모이게 됩니다. 형제들이 모이니 된장국 한 뚝배기만 있어도 밥맛이 꿀맛이에요.”
지난 일요일, 이들을 본지에 소개한 회화면발전위원회 백충실 회장의 안내로 찾은 군진마을에는 배둔 5남매 부부가 또다시 모였다. 이번에는 7개월 전 아기를 낳은 큰 조카와 막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1학년이 된 조카도 합류했다. 조카 셋이 섞여있으니 얼핏 보면 누구 딸인지도 모를 정도로 살갑다.
이날 최고의 화제는 KBS전국노래자랑이었다. 5남매와 남편, 아내까지 열 명 몽땅 참가할까, 아직 신청을 안 했는데 현장에서 받아주려나, 한 가지 이야기를 놓고도 한 마디씩 거드니 열 마디, 백 마디가 되고, 그게 또 신이 난다. 누가 노래를 잘 한다, 누구는 노래를 못한다, 노래방 가면 누구는 마이크를 안 놓는다 성토대회가 열렸다. 
그러다 큰누나 정영례 씨가 상추 바구니를 들고 나가다 말고 ‘야~야~야 내 나이가 어때서~’로 운을 띄운다. 그러니 저 멀리서 고기를 굽던 누군가가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하고 받는다. 흥이 넘치는 가족이다.
보다 보니 누구누구가 남매고 누구와 누가 형부 처제인지도 헷갈릴 지경이다. 그냥 가족으로 살지, 촌수 구분해가며 살지 않아 당사자들도 이제 잘 모르겠단다.
“동서든 자매든 남매든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가족으로 산 지가 벌써 반평생이 넘었고, 한 동네에서 올망졸망 산 지가 20년입니다. 형제는 하늘이 내린 벗이라고 하잖아요.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 거예요. 즐겁고, 신나고, 우애 있게. 그게 가족이니까요.”
최민화 기자 / 입력 : 2016년 04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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