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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중국은 우리와 가까이 할 수 없었던 빨갱이 국가였다. 같은 하늘 아래 함께할 수 없다던 북한 괴뢰와 더불어, 공산주의의 본산이라고 불리던 소련과 함 3대 악의 국가로 지칭되었으며, 나라 이름도 중국이 아닌 ‘중공(中共)’으로 불렸다. 당연히 중공 사람들은 근접해서는 안 되는 외계인들이었다. 국내에 중공 사람이 있지도 않았지만 외국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도 인사도 나누면 안 되는 사람들이 중공 사람들이었다. 그에 비하면 타이완은 6·25 전쟁 때 물자를 지원해 주었으며, 미국과 더불어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우리나라에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준 혈맹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순간에 우리나라와 두 나라의 관계가 뒤바뀌어 버렸다. 1992년에 타이완과의 단교와 함께 북한 괴뢰를 도와 이 나라를 둘로 갈라놓은 철천지원수 중국과 덜컥 수교를 한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반공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중국을 증오하던 우리 국민들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은혜를 입으면 잊지를 말고 보답을 해야 한다’는 도덕 교과서의 경구가 식언(食言)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미국과 더불어 어제의 적이었던 중국과 동지 관계를 맺는 기이한 역학 관계가 되어 버렸다. 세상이 반드시 책에서 배운 대로만 살 수 없다는 것을 느낀 것은 그때부터이다. 실리(實利)라는 이름으로 변절을 변명할 수 있다는 새로운 진리를 얻은 것도 그때이다. 세상에는 성인군자들만 사는 것이 아니어서 때로는 알맞게 남을 속이고 배신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 큰 이익을 위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인간으로서는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뇌리에 오랫동안 남은 슬픈 사건이었다.
도덕 교과서의 원칙이 가장 많이 깨진 곳이 정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동지가 적이 되는 경우를 허다하게 본다. 한때 친박으로 최고의 명장(名將)으로 인정받던 유승민이 대통령의 눈 밖으로 밀려나고, 오른팔이라고 불리던 김무성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야당도 마찬가지이다. 천정배를 비롯한 일부 야당인사들은 오랜 세월 동지로 풍파를 함께 한 사람들을 두고 다른 배를 탔다.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실리를 쫓아 갈라지고 새로 뭉치기 일쑤이다. 중앙의 큰 정치만 그런가? 지역의 작은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고성군수 재선거는 중앙 정치의 축소판을 보는 것처럼 지저분했다. 자신의 이익을 찾아 여기저기 떠도는 영혼 없는 사람들도 다수 보이는 한심한 선거였다. 지난 해 6월 선거에서는 이쪽 진영에 있다가 이번엔 저쪽 진영에 앉아 한때 모셨던 후보를 헐뜯는 사람들도 보았다.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헐뜯던 후보를 이번에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행태를 보며 어이가 없어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돈을 쫓아다니는 것인지, 아니면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에게 붙어 실리를 챙기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너무 속 들여다보이는 짓들이었다. 그리고 고성군의 발전이라는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하고 후보들에게 자신들의 작은 이익만을 요구하는 일부 단체의 모습도 보기 흉했다.
이번 고성군수 재선거는 군민들에게 축제가 아닌 계륵(鷄肋) 같은 선거였다.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전임 군수의 명예롭지 못한 퇴진으로 인한 선거였고, 하필이면 시기적으로 한창 바쁜 농번기에 실시되어 주민들의 눈총을 받았다. 그리고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정정당당’이라는 말이 증발된 선거였다. 선거 관련 고소 고발과 더불어 시중에 온갖 말들이 오가고, 마침내 특정 정당에 불리하게 글을 썼다며 필자의 칼럼까지 구설수에 오르내리는 일이 벌어졌다. 선거판에서는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백 번 이해를 하더라도 지면으로 만인에게 공개된 글까지 트집 잡는 것을 보면서 씁쓸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후보들도 자신에게 불리한 말이면 무조건 부정하고, 자신에게 이롭지 않다고 생각되면 헐뜯다 보니 얼마만큼이 진실이고 어떤 말이 거짓인지 주민들은 혼란스러웠다. 일부는 선거가 끝난 지금까지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것도 있다. 그리고 어수선한 선거판이 싫다며 애써 선거에 무관심했던 주민들은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주민이라면 갈등할 수밖에 없는 선거 구조였다. 좁은 지역에서 6명이나 되는 후보가 난립하다 보니 지연이나 학연 등에 걸리지 않는 후보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보들이나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서로 심한 말들이 오갔다. 친구들끼리 다투고, 같은 단체 안에서도 지지하는 후보가 다르다는 이유로 갈등이 생겼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신임 군수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갈라진 민심을 다시 하나로 모으는 일이다. 선거 기간 중에 후보들끼리 상했던 마음은 서로 수습하고 안아줘야 할 것이다. 후보 모두가 지역에서 중추 역할을 하는 어른들이 아닌가? 그리고 신임 군수는 상대 후보의 공약 중에 거둘 것이 있으면 겸허하게 받아 들여 주민들의 행복과 고성을 발전시키는데 활용해야 할 것이다.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 도왔던 주민들도 마찬가지이다. 철천지원수 사이도 화해를 하고 국교를 터는 세상이다. 한 하늘 아래 함께 할 수 없다던 북한과도 대화를 하는 세상이다. 우리 모두 잘 사는 고성을 만들자는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던가? 모두 털어버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자. 아무리 실리가 중요하더라도 인간적인 관계까지 깨뜨려서는 안 될 것이다. 도덕 교과서에 적힌 대로 살 수는 없겠지만 흉내는 내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당선된 분에게 축하의 말씀을, 분투를 하신 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