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2025-08-03 19:38:33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문화체육

독립운동가 묘소 주민 부주의 화재 피해

구만면 저동마을 허재기 선생 묘 보릿단 태우다 불씨 번져
/박준현기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15년 06월 19일
ⓒ 고성신문

구만면 저연리 저동마을에 소재한 독립운동가인 허재기 선생의 묘가 인근 주민들의 부주의로 불에 타

공분을 사고 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손녀 허성유씨에 따르면 저동마을의 본가에 지난 16일 내려와 보니 허재기 선생의 묘와 주변 330㎡ 면적이 모두 불에 타 있었다고 했다.


허씨는 주민들이 지난 5월경 보리를 수확하고 보릿단을 태우면서 불씨를 확인하지 않고 귀가해 그 불씨가 번지면서 화재가 났다는 것.


현재 묘의 봉분에는 가족들이 중요한 일이라 민간풍속인 양밥으로 볏집으로 덮어 놓았으나 새까맣게 타 있는 상태다. 주위에는 향나무 등 9그루가 불에 타 흔적조차 없다.


허성유씨는 “저동마을에서 태어나 이 곳에서 독립운동을 한 할아버지의 묘를 훼손한 것은 돌아가신 분을 한 번 더 죽이는 일”이라며 “가꾸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당연한데 오히려 훼손을 하고도 나 몰라라 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분개했다.


독립운동 자료 수집을 위해 저동마을을 찾은 고성문화원 정해룡 작가도 “고성군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의 묘소를 불태워 버린 것은 그자체로 심각한 문제”라며 “모든 군민들이 비분강개할 일이다”고 했다.


구만면사무소 관계자는 “현장을 둘러 보았고 이후 화재 당사자가 가족들에게 사과를 했다. 불타버린 나무들을 정리하고 식수를 새로 하기로 협의했다”고 말했다.


허재기 선생은 3.1만세운동 주도와 독립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1919년 3월 20일의 회화면(會華面) 배둔리(背屯里)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했다. 1920년 11월 19일에는 상해 임시정부(上海臨時政府)의 밀사인 곽정곤(郭正坤)과 함께 마암면 장산리(章山里)의 허종택(許宗澤)을 찾아가 군자금을 모금하는 등 계속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됐다.


이로 인해 같은 해 5월 13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박준현기자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15년 06월 19일
- Copyrights ⓒ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만평
상호: 고성신문 / 주소: [52943]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123-12 JB빌딩 3층 / 사업자등록증 : 612-81-34689 / 발행인 : 백찬문 / 편집인 : 황수경
mail: gosnews@hanmail.net / Tel: 055-674-8377 / Fax : 055-674-8376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 다01163 / 등록일 : 1997. 11. 10
Copyright ⓒ 고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함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