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고성신문 | |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말은 ‘열자(列子) 탕문(湯問)’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어리석은 사람(愚公)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마을 앞의 산을 옮긴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로, 우공은 자신이 못하면 후손들이 대를 이어 행하면 반드시 산을 옮길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행동으로 실천하였다.
남들은 어리석다고 여기지만 굳센 의지로 밀고 나가면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으며, 하고자 하는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할 때 자주 인용되는 고사 성어이다. 그러나 몇 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보면 우공의 생각이 허황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우공이 쓰던 지게와 삼태기 대신에 중장비를 이용하면 산을 옮기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닌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대신 시대가 바뀌면서 우공의 모습도 바뀌고 옮기고 고쳐야 할 대상도 바뀌었다.
우리나라도 시대와 장소를 떠나 우리 곁에 항상 우공은 존재했다. 대표적인 우공을 예로 들자면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일 것이다.
한반도보다 44배나 큰 대륙국가 중국을 무너뜨리고 세계 정복을 꿈꾸는 일본은 우리 국민들에게 거대한 산이었다. 선각자라고 불리는 이광수나 최남선을 비롯한 조선의 지식층까지도 일본이 승리할 것으로 보았고 그러기에 제국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공이산의 집념으로 끝내 해방을 이끌어 냈다.
불멸의 영웅이라고 불리는 이순신도 시대를 달리한 우공이라고 할 수 있다. 겨우 12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 해군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만으로도 우공에 버금가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지만 그의 우직함이 결국 전쟁의 승패를 바꾸어 놓았다.
요즘은 어떨까?
요즘도 우공들이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보통 사람들이 보았을 때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끝내 해내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근·현대사에서 우리는 손으로 꼽으라면 꼽기 어려울 만큼 많은 우공을 만날 수 있다.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나선 4월 혁명이나 민주화를 요구하여 6·29선언을 이끌어낸 시민 혁명의 현장에는 이름 없는 수많은 우공들이 있었다. 그들의 어리석음이 나라를 민주 국가로 만들었고,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이들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크고 작은 활동들을 하고 있다.
이렇듯 흙을 옮겨 산을 허무는 우공들로 인해 사회가 조금씩 변해가고 있지만 아직도 이들의 활동을 두려워하고 거절하는 곳도 많다. 그 중 몇을 꼽으라면 정치권과 남북 관계와 교육 현장이라고 하겠다.
해방 후 70년, 고희(古稀)의 나이에 접어든 정치권의 모습은 볼수록 가관이다. 최근에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성완종의 뇌물 리스트나 이완구 국무총리 낙마에서 보듯 정치권은 갈수록 썩은 내가 진동을 한다.
게다가 이번에도 과도한 변호사 수임료와 불법 증여에 병역 면제를 받은 인사가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되는 것을 보면서, 군대 다녀오고 부정부패 이력이 없으면 고위직 후보에 오를 수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정치는 국민들의 신망을 잃었다.
심지어 정치권을 바꾸어 보겠다고 뛰어든 우공들마저도 함께 냄새를 피우고 있는 지경이 되었으니 무슨 말을 더 하랴.
남북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한때는 양국 관료들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통일을 논의하고 일반인들도 금강산과 개성을 오가며 통일의 불을 지피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남북 관계는 꽁꽁 얼어붙었다. 누구 탓할 것도 없다. 물론 폐쇄주의로 가고 있는 북한의 책임이 더 크지만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 역시 환상일 뿐 현실감이 조금도 없다.
교육 현장은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울 만큼 비참하다. 학교 폭력이 난무하고 연일 자살하는 아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에 우리 정부는 세계교육포럼에서 한국 교육이 우수하다고 자랑하다가 도리어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다.
공교육은 점점 무너지고 아이들의 심성은 황폐해져 간다. 청소년 범죄는 갈수록 잔인해진다. 특히 집중을 못하고 산만한 틱장애와,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충동조절장애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
학원 수업으로 인한 학생들의 생리 변화로 인해 학교 수업 시간은 수면 시간으로 바뀌고, 학부모와 학생들이 교사를 폭행하는 일도 예사로운 일이 아닌 세상이 되었다. 이렇듯 교실 붕괴가 시작된 지 오래 되었건만 교육 당국은 제대로 된 정책 하나 내놓지 못하고 있다.
우공의 이론대로라면 세상은 예전보다 더 살기 좋아야 하고, 남북은 지금쯤 함께 손잡고 통일의 노래를 부르고 있어야 하고, 학생들은 입시 지옥에서 벗어나 사람 되는 교육을 받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면 갈수록 살기 힘든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흙을 담아내면 낼수록 산은 더 높아지는 것 같다. 심지어 세상살이에서 사람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도 있지 않나 하고 좌절할 때도 있다.
그러나 좌절했다고 세상이 끝난 것은 아니다. 기특하게도 이름없는 우공들은 어려움을 딛고 다시 일어설 줄 아는 질긴 생명력을 가졌다. 여기에서 포기할 수는 없다.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비록 우리가 하는 일이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도 언젠가는 지금보다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버려서는 안 된다. 오늘도 서외오거리에서는 홍준표 지사의 ‘유상급식’에 반대하는 피켓 시위가 있었다.
홍준표 지사의 독불장군 같은 성격이나 그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지역 정치권의 정서를 보았을 때 ‘무상급식의 원상회복’은 몽상(夢想)에 가까운 구호로 보인다. 그럼에도 학부모들은 뜻을 굽히지 않고 학생들의 교육과 복지를 막는 거대한 산을 옮기려 하고 있다.
교활하고 부도덕한 권력에 맞서 기껏 피켓 하나로 학교 앞이나 거리에서 자신의 뜻을 펴고 있는 학부모들을 보면 참 어리석다는 생각과 함께 한편으로는 멋진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자식에게 차별 없는 급식을 먹이겠다는 일념 하나로, 오늘도 달걀로 바위를 치고 있는 고성의 우공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