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시고 개미있는 소가야 사투리 14회의 ‘엄마가 들려주시던 내 고향 속담(1)’에 이어서 재미있는 우리 고장의 방언 속담을 소개한다.
# 목 맨(매인) 돼지가 누운 돼지 나무랜다.(☞목 매인 돼지가 누운 돼지 나무란다.)
필자가 경남을 두루 다니면서 위 속담이 널리 쓰이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남한의 대표사전인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위 속담과 아주 비슷하게 ‘달아매인 돼지가 누운 돼지 나무란다’란 속담이 나오긴 하나 북한의 속담이라고만 소개되어 있다.
그런데 인터넷 검색창에 ‘달아매인 돼지’나 ‘달아매인 돼지가 누운 돼지’ 등의 검색어를 넣으면 ‘달아매인 돼지가 누운 돼지 나무란다’란 속담이 여러 군데에 나온다. 물론 인터넷에 나오는 글은 북한 사람들이 쓴 인터넷 글이 아니고 남한 사람들이 쓴 글들이다.
위 형태의 속담을 북한 속담으로 소개한 것은 국립국어원 학자들을 비롯한 국어학자들이 남한에도 널리 쓰이고 있음을 모르고 있다는 방증일 수도 있을 것이다.
부산 쪽에서는 이와 비슷한 속담으로 ‘똥 묻은 개가 제 묻은 개 나무랜다’란 속담을 쓰고 있다. 이 속담을 표준어에 가깝게 고치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로 고칠 수가 있다. 인터넷 글에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의 속담이 용례와 함께 인터넷 글로 많이 나와 있다. 그런데 부산에서 많이 쓰이는 ‘똥 묻은 개가 제 묻은 개 나무랜다’란 속담에서 ‘제’는 ‘재’로 잘못 생각하기 쉬울 것이나 이는 ‘재’(불에 타고 남는 가루 모양의 물질)가 아니라 ‘겨’(벼, 보리, 조 따위의 곡식을 찧어 벗겨 낸 껍질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경상도와 인접한 전라도 등지에서 왕겨의 방언으로 ‘왕제’가 쓰이고 있고 겨의 방언으로 ‘제’가 쓰이고 있음을 보면 부산의 ‘똥 묻은 개가 제 묻은 개 나무랜다’란 속담은 표준어권 지역에서 널리 쓰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에서 변한 말이 확실하다.
어쨌든 위의 두 속담(목 매인 돼지.../똥 묻은 개...)은 자기가 더 어렵거나 못한 처지에 있으면서 남의 일에 간섭하거나 남을 흉보는 경우에 아주 적절하게 쓰이는 속담인데 우리가 흔히 쓰는 ‘숯이 검정 나무란다’란 속담과 같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 쌂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가는 소리
우리 고성에서 널리 쓰이는 이 속담은 전국적으로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 소리’와 ‘삶은 무에 이도 안 들 소리’의 형태로 널리 쓰이고 있으며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전에도 그대로 나와 있다. 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여드레 삶은 호박에 도래송곳 안 들어갈 말이다’란 속담이 나오는데 이 역시도 우리 고성의 속담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우리 고성에서는 ‘쌂은 호박에 이도 들어가는 소리’의 형태로 널리 쓰이지만 함양에서는 위 속담보다도 더 과장되고 재미있는 속담을 쓰는데 그 내용은 ‘애동호박 삼년을 쌂아도 잇금도 안 들어가는 소리’이다. 또 그 이외에 밀양 등지에서는 삶은 호박에 잇금도 안 들어가는 소리의 형태로 쓰고 있다.
위 속담들에 동원된 ‘쌂은 호박’과 ‘잇금’(이로 무엇을 물었을 때 생기는 자국)을 곰곰이 생각해 보자. 호박을 삶으면 무르기 때문에 이것을 먹게 되면 너무도 당연하게 이빨(이빨은 동물의 이를 일컫는다는 것은 오류임)에 의해서 잇금이 생기기 마련이다. 즉 호박을 먹게 되면 잇금이 당연히 들어간다는 얘기인데 잇금이 안 든다고 했으니 이는 전혀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한다는 뜻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의 한 편의 글(공지영의 ‘아주 작은 깃털 하나’)을 보면 ‘쌂은 호박에 이도 안 드는 소리한다’ 라는 우리 고장 속담을 쉽게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몇 해 전 강원도 산골에 조그만 집을 짓고 이삿짐을 나르게 되었다.
이사하던 날 당장 라면을 끓일 가재도구도 풀지 못해서 이웃 주민에게 자장면을 배달시킬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산골이니 당연히 중국집은 없고 아마 자기가 아는 사람한테 부탁하면 콩국수 정도는 배달시킬 수 있을 거라고 했다.
한 시간쯤 뒤 콩국수가 도착했다.
배고파서였을까. 콩국수 맛이 이만저만 좋은 게 아니었다.
내가 주인에게 앞으로도 배달을 해 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주인은 무뚝뚝한 강원도 사투리로 대답했다.
“여기 오는 데 오토바이로 20분이래요. 기름값도 안 남아요.”
콩국수 한 그릇이 삼천 원이니 그럴 만도 했다.
“아저씨, 그럼 배달비를 한 그릇당 천 원씩 더 드릴게요.”
주인은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간다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다.
“우리 한식집이래요. 이건 친구가 사정이 하도 딱하다고 해서리 가져온 거래요.”
# 한 분 주모 정 없다
우리 고장의 넉넉한 인심을 담고 있는 속담이 바로 위의 속담이다.
이 말은 이웃집이나 친척 간에 음식을 나누어 먹을 때나 음식을 나누어 줄 때 약방의 감초인 듯 쓰였던 참 좋은 말이다.
우리 엄마가 옆집에 사는 친한 아지매에게 맛있는 김치를 통에다 담아준 일이 있다. 옆집 아지매가 그만하면 됐다고 거절의 말투로 말을 하면 엄마는 “한분 주모 정없다꼬 안 하더나, 자 좀 더 담아주께”라고 하셨다.
우리 고장 고성의 넉넉한 인심이 담긴 이 속담처럼 항상 포근한 인심이 넘쳐나는 아름다운 고성, 풍요로운 고성으로 발전해 가길 기원한다.
속담은 우리 서민의 이야기의 꽃이며 음식으로 친다면 양념이요 고명과도 같은 것이다. 앞으로 사라져 가는 우리 고장 속담을 발굴하여 다시 되살려 쓰는 노력이 무엇보다 절박하고도 절실하다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