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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난 지 50년이 넘은 지금에 와서는 당시 고성에서도 여러 차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음을 기억하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나 젊은 세대는 이 같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마암면 두호리에서 평생을 살아 온 이대영(66)씨가 처참했던 전쟁의 기억을 꺼내 보였다.
“북한군이 1주일 넘게 있으면서 소, 돼지를 끌고 갔어요. 결국 밤새 전투가 벌어져서 수많은 군인이 목숨을 잃었죠.”
두호마을에서 전투가 벌어진 건 1950년 부산을 제외한 전국이 북한군에 점령당한 후 국제연합군의 개입으로 점차 남한군이 국토를 회복해 나가던 때였다.
당시 10세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이씨는 인천상륙작전이 감행되던 즈음으로 그 시기를 기억했다.
두호리는 마산 방면에서 오는 차량이 고성읍으로 진입하기 전 마지막으로 산을 지나게 되는 길목이다.
두호 주민들이 마을 안산이라 부르는 곳에 고성을 점령하고 있던 북한군이 방어선을 쳤다. 맞은편 덕주산에는 연합군이 전투태세를 갖췄다. 연합군이 들이닥친 건 낮이었지만 대치 상황이 이어지다 밤이 돼서야 전투가 벌어졌다고.
“끝나고 와보니까 시신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더군요. 초가집도 서너채나 불타 없어지고.”
다행히 주민들은 전투가 벌어질 때 모두 산이나 해안, 미리 준비한 방공호 등지로 피신해 민간인의 인명 피해는 없었다.
“미군들 먹다 버리고 간 빈 깡통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게 기억나네요.”
이 전투에서 패한 북한군은 고성읍을 지나 상리면 쪽으로 도주했고, 결국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이씨는 지난 봄 농로포장 공사현장에서 발견했다는 탄피 하나를 꺼내 보였다.
일반 소총이나 권총이 아닌 전차를 요격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는 기관총의 탄피로 수많은 군인이 목숨을 잃었을 당시 상황을 가늠케 했다.
전쟁 직후에는 여기저기 흔하게 발견되던 탄피는 고물상들이 모두 수거해 가고 이제는 보기 어렵게 됐다.
“전쟁을 겪어 보지 않은 젊은이들에게 그 처참한 기억을 전해주고 싶어 보관하고 있어요.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선 그 아픔을 되새겨보는 노력이 필요할 거 같아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