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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정에 관한 내력 - ②


하기호(고성향토사연구소) 기자 / 입력 : 2006년 06월 29일

무기정(舞妓亭)에는 주막집이 있었다는 또 다른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 때 무기정(舞妓亭) 기생(妓生) “월”(또는 월이)이에 관한 전설이다.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난 후 조선을 침략할 목적으로 은밀히 조선에 밀사(密使)를 보내어 지형을 탐지했는데 밀사가 고성에까지 발을 딛게 되어 날이 저물어 무기정의 어느 주막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일본 밀사는 술이 취해 잠든 사이에 기생 “월”이가 밀사의 비단 보자기를 끄집어내어서 열어보니 전략지도(戰略地圖)같은 것이었다.


 


 “월”이는 생각 끝에 밀사의 그림 그리던 붓을 갖고 전략지도(戰略地圖)에 고성읍 수남리와 마암면 두호리 소소강(召所江) 사이를 바다와 같이 그려 넣고 동해면(東海面)과 거류면(巨流面)과 통영을 섬으로 만들어 놓은 다음 잠자리에 들었다.


 


이튿날 밀사는 떠났고, 1592(임진년)에 왜적이 쳐들어 와서 난을 일으키고(임진왜란) 그 해 6 5일 왜 수군이 당항포(唐項浦)에 대선 26척의 배를 끌고 침략해 왔을 때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왜놈들을 섬멸하였는데 이것이 제1차 당항포대첩(唐項浦大捷)으로 기생“월”이의 수정한 전략지도(戰略地圖)가 대승첩(大勝捷)을 거두는데 이바지하였다는 전설이다. 


 


그 당시 왜의 수군은 그 지도가 표시된 대로 바다의 서남쪽으로 바다가 연결되어 퇴로가 있었다고 생각하였으나 결국 속고 말았다. 그리하여 지금도 소소강(召所江) 앞바다를 속았다고 “속시개”라고 부르고 있다. 이 기생 “월”이의 사건이 있었던 당시의 무대는 바로 무기정(舞妓亭)이다.


 


고성읍(固城邑)은 조선시대에는 동읍내면(東邑內面)과 서읍내면(西東邑內面)으로 나누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철성면(鐵城面)으로 병합되면서 서읍내면의 무학정(舞鶴亭)과 약재방(藥材坊)이 동읍내면의 송도(松島)와 합쳐져서 송도(松島)의 송()자와 무학((舞鶴)의 학()자를 따서 송학동(松鶴洞)이라 하였다.


 


지금부터 200여 년 전에는 송학동(松鶴洞) 일대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었다고 전하여 오고 있다.


 


이 곳에는 학()의 무리들이 날아와서 서식하던 곳이었다고 하며 학()이 날아와서 춤추던 산 또는 곳이라 하여 무학산(舞鶴山) 또는 무학정(舞鶴亭)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1893, 1894년 고성부사(固城府使)로 있었던 오횡묵(吳宖) 부사(府使)의 행정일지였던 『고성총쇄록(固城叢)』이라는 책에 의하면 「무학정(舞鶴亭)」이라고 나와 있다.( 無量山平地落脉左有舞鶴亭)


 


고지도(古地圖)를 조사하였더니 1765년『여지도서(輿地圖書)』에 있는 고성의 지도에는 고성(固城) 북쪽에 『舞妓亭』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1804년의 고지도인 「해동지도(海東地圖)」의 「고성현지도(固城縣地圖)」에는 지도안에 집이 그려져 있고 「舞妓亭」이라 표기되어 있다.


 


1861년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고성 북쪽에 「舞妓山」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19세기 말 「고성부지도(固城府地圖)」에는 구읍기(舊邑基) 북쪽에「舞鶴山」이 있고 그 앞에 「舞鶴亭」으로 표기되어 있다.


 


고지도(古地圖)에는 「舞妓亭」, 「舞妓山」, 「舞鶴山」, 「舞鶴亭」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특기할 만한 것은 1804년의 해동지도(海東地圖)에 집(家屋) 이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무기정(舞妓亭)이라는 정자(亭子)를 표기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기정(舞妓亭)은 무기산(舞妓山)에 있는 정자(亭子) 이름이었으나 차츰 지명이름으로도 부르게 되었던 것 같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무학과 송도가 합쳐져서 송학동(松鶴洞)이 되었다가 1969년 행정구역 개편 시 다시 송학과 무학으로 분동되어 편의상 무학동이라 불러 왔으나 법정 리동명은 아니었다. 지금은 이 곳 마을 이름을 고성읍 송학리(松鶴里) 무학(舞鶴)마을로 부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지명과 관련된 오래된 우물이 두 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송학동 284번지에 “무기정(無妓井)”이라는 새미가 수백 년 동안 마을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이 있었으나 6~7년 전에 그 우물 위에 건축물을 지어버렸다.


 


다른 하나는 송·무학동을 지나는 큰길에서 전신전화국 뒤편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을 약 20m정도 가면 골목길 가운데 시멘트로 둘러싼 우물터가 하나 있는데 이 우물의 이름은 “약재방(藥材坊) 새미”라고 불렀고 돌로써 네모지게 쌓았고 수원과 수질이 좋아서 이곳 주민들의 식수로 많이 이용하고 있었으나 15년 전쯤에 시설물을 철거하고 그 흔적만 남아있다.


 


이 두 개의 우물들은 모두 이곳 무기정(無妓井)과 관계를 가진 우물들이다.                        <>

하기호(고성향토사연구소) 기자 / 입력 : 2006년 0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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