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학동 고분군(松鶴洞 古墳群)은 사적 제 119호(1960년 3월 2일)로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1999년부터 4개년 간에 걸쳐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시굴(試掘) 및 발굴(發掘) 조사를 실시한 바 있는데 이 고분은 소가야(小伽耶) 또는 고자국(古自國)의 지배자 집단의 고분(古墳) 또는 왕능급(王陵級)에 해당하는 분묘(墳墓)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고분(古墳)이 있는 해발 35m의 이 작은 산(山)을 고성사람들은 “무기산(舞妓山)”이라고 불러왔으며, “독뫼산”이라고도 불러왔다.
그 고분군(古墳群) 주변의 마을 이름을 오랜 옛날부터 “무기정(舞妓亭)”이라고 불러 왔으며 그 발음이 “무구정”이라고도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무기정(舞妓亭)은 정자(亭子)를 뜻하는 것인데 마을 이름으로도 부르게 된 셈이다.
그러나 이 무기정(舞妓亭)에 관한 유래는 고성의 중요한 역사적 전설로 전하여 오고 있다.
문헌(文獻)의 근거에 의하면 고려(高麗) 성종(成宗) 14년(995년)에 고성군(固城郡)이 주(州)로 승격되었는데 그때 고성의 수령을 고주자사(固州刺史)라 하였다.
고주자사에 관한 이야기는 조선 중종 25년(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산천조(山川條)에 무기산(舞妓山)은 현(縣) 북쪽 2리 지점에 있다.
속설에 “예전에 고주자사가 기생을 데리고 여기서 노래하고 춤추었던 까닭으로 이름하였다.” (舞妓山 在縣北二里 俗傳昔 固州刺史 携妓歌舞 於此 故因名)라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 현종(顯宗)때 편찬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산천조(山川條)와 조선 영조41년(1765)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 산천조(山川條) 등에도 위와 같은 내용의 전설이 실려 있다.
1999년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송학동 고분군(松鶴洞 古墳群)을 시굴조사(試掘調査)할 당시에 고려시대의 기와편이 발견되었는데 조사반의 견해는 아마 그 당시 있었던 집으로 사료(史料)에 나오는 무기정(舞妓亭)과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송학동고분군 주변마을은 주막집으로도 유명하다.
고분군 서쪽으로는 대가면으로 해서 진주로 가는 도로변에 집들이 있었는데 조선시대부터 그리고 해방 후와 지금부터 30여년 전만하여도 그 곳에는 주막집(술집)들이 여러 집 있었다.
그 곳 주막집이 들어있는 마을을 “돌은대 모팅이”(돌아가는 길 모퉁이의 사투리)이라고 불러 왔으나, 지금은 고분군 정비 사업으로 그곳에 있었던 집들은 모두 철거되고 말았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