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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 이야기. 고성의 바둑역사를 조명한 양산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바둑연구생들에게 환상의 도장으로서 프로 단을 준비 지망생이 펼쳐진 최강의 기력이 펼쳐진 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양산박은 어떻게 구성됐나
고성바둑역사의 산실인 양산박은 특별하게 정해진 규칙이 없는 곳이었다. 누구나 올 수 있고 아무 때나 떠날 수 있었다고 한다. 강호에 소문난 청년고수들이 제 발로 걸어왔고 아는 친구들을 불러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만들어진 것이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강자들이 운집했기에 실전훈련을 쌓기 좋았고 최신정보들이 가득해 이론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기도 좋았다.
#환상의 바둑도장
청년 박수현과 권재룡 박사의 대국. 구태욱씨에 따르면 팔각정 옥탑 방 내부는 모두 책장으로 둘러 쌓여 있었고 팔각정 위에는 목욕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동네 꼬마들이 많이 이용했다며 좀 특이한 점도 많았다고 말했다. 팔각정인만큼 방 내부의 팔각 벽 모두 책장이 둘러쳐져 있고 바둑서적이 가득 꽂혀 있었다. 권 박사는 틈틈이 바둑 선진국인 일본에서 다양한 바둑서적을 구입해 비치했고,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찌, 산케이신문을 정기구독 했다고 한다. 오로지 신문에 게재된 기보를 통해 일본바둑의 정보를 얻기 위한 방편 이었다. 월간 기도지와 바둑지 구독은 너무나 당연하고 바둑연구생들에게 정말 환상의 도장이었다. 1970년 그 당시 고성 동산의원 옥탑방은 프로지망생들의 도장이었다. 지금 한국기원 원생들도 홍익동 한국기원 건물 옥상에서 수련하고 있다.
#자칭 國手(국수)의 친구
권재룡 박사와 박수현씨가 팔각정 옥탑에서 국수의 대전이 펼쳤다. 박수현씨도 당시 프로 입단을 준비했던 지망생이니 아마 최강의 기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설이 있다. 지금도 박수현씨는 심심찮게 아마추어 바둑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으며 울산에서 바둑도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가끔 한국바둑의 대부 조남철 국수의 이름을 아주 쉽게 부르곤 했다. 당대 최고의 국수를 친구처럼 막 불렀기 때문에 청년들은 경외감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권 박사가 병원을 개업하지 않고 바둑 공부에 정진했다면 혹시 조남철 국수와 타이틀을 놓고 겨뤘을 지도 모른다고 가정하는 이도 있었다. 옥탑방의 연구생들은 풍성한 자료와 쟁쟁한 라이벌들 속에서 바둑에만 몰두했다. 권 박사는 병원에서 진료하다가 자주 옥탑방에 올라와 청년들의 승부욕을 자극하기 위해 자주 리그전을 개최하면서 상금도 5만원을 걸었다고 한다. 권 박사가 직접 봉투에 상금을 넣어 주었다고 한다. 입단을 목표로 공부하는 청년들이라 실력들이 짱짱해서 리그전이 벌어지면 그 누구도 일방적인 독주를 못했다고 한다.
#조남철 김인 조훈현 바둑사의 저변 확대 공신
조남철, 김인, 조훈현으로 이어지는 일본유학파 일인자들의 계보가 한국바둑사의 주류라면 이 곳 출신 프로기사들과 아마추어 강자들은 비주류에 속하겠지만 바둑사의 저변을 확대하고 질량을 풍부하게 키운 공신들이기도 했다. 당대 최고의 지존으로 우뚝 선 걸출한 인물은 없었을지라도 고통스런 승부사의 길을 선택해 가시밭길을 걷고 지금도 거의 모든 분들이 보급에 힘을 기울이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옥탑방에 청년들이 여러 명 합숙을 하며 각각 역할이 나뉘어져 있었다. 가장 먼저 고성에 입성한 박수현씨가 방장 역할을 맡았고 나중에 들어온 신참들이 맡는 직책이 바로 차트사다. 리그전 벽보를 그리고 성적을 표시하는 업무를 맡게 됐다. 이수명씨는 우연히 고성에 들렀는데 연구실 분위기가 너무 좋아 3개월 정도 머물렀다고 한다. 부산에서는 상당히 센 축에 속하는 기원1급이었는데 옥탑방에서는 감히 바둑 둔다는 말도 못 꺼냈다고 한다. 반 치수 정도 아래쪽이어서 늘 차트 담당이었다고 말했다.
#옥탑방에서 바둑을 배우고 난 뒤 막걸리 파티
시합이 끝나면 우르르 고성 읍내로 나가 막걸리 파티를 했다. 동태찌개 한 뚝배기 시켜놓고 몇 주전자씩 비우곤 했다. 혈기왕성한 청년들에게 70년대는 너무 암울했다. 또 바둑계는 더더욱 캄캄했다. 그들에게 고성의 막걸리는 그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는 영약이었을 것이다.
#고성읍 철뚝 지금의 남포항에서 마음을 풀고
병원 옥상에 스스로 유폐(幽閉)를 택하고 바둑 한 길만을 바라보고 싶었던 청춘들. 그들에게 수남리 철둑(남포항)은 그나마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마음의 출구였다. 고성 옥탑방을 거쳐간 모든 인물 중 박수현 사범은 부인과 함께 울산에서 바둑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에 입단하지 못 했으나 적어도 울산에서는 바둑의 대명사로 통하는 바둑인이다. #양산박의 전성기 시대 고성 양산박 청년들에게는 두려우면서도 꼭 극복해야 할 대상이 조훈현이었다. 그들은 권 박사의 배려에 힘입어 합숙하면서 차례로 프로 관문에 도전했다. 양산박 멤버의 기준으로 한 번이라도 그 옥탑 방에 들른 사람은 1978년 강만우, 이주용 입단, 1979년 양재호 입단, 1980년 임선근, 조대현 입단, 1981년 박상돈 입단, 1982년 정대상 입단, 1983년 문용직 입단, 1985년 차수권이 입단을 했다. 이때가 양산박의 전성시대라고 보여진다. 아무런 대가없이 한 사람의 후원자가 만들어 준 연구실을 통해 이처럼 많은 인재들이 프로기사로 탄생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