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積珍浦 海戰과 地名 比定 ②


유홍렬(고성읍서외리) 기자 / 입력 : 2006년 05월 15일
ⓒ 고성신문
4. 積珍浦와 南村鎭과의관계

남촌진은 거류면 화당 마을로 고성읍 에서 약 12㎞거리에 있으며 신용리 하원 마을과 인접해 있다. 그리고 문헌에 나타나는

積珍鄕은 縣 동쪽 20리에 있다고 되어있다.


 


옛날 지역간의 거리를 환산하면 약 5㎞가 10리라는 것이 거의 일치하는 것을 볼 때 신용리 상원마을은 고성읍에서 약10㎞거리에 있다. 즉 옛 20리다.


 


남촌은 고성현 동쪽 20리에 있는데 광해군 6년(1614) 도산면 도선에서 남촌을 설치하고 광해군 11년(1619)에 옮겨 積珍浦에서 수군을 모집하고 남촌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별장이 지킨다.


 


(南村:在縣東二十里光海六年甲寅初設鎭于懸南道善十一年己未移設召募鎭於縣東 積珍浦目稱南村.差別將守之) 남촌진에는 무관 9품 鎭撫 15명 知印 7명 使令 12명으로 櫓軍을 겸하였으며 전선 1척 병선 1척 伺侯船 2척을 두었다고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積珍鄕, 南村, 南村鎭別將 : 輿地圖書, 固城邑誌 등)


 


위의 내용을 보면 남촌진은 임진난 후 선조 37년(1604) 통제영이 설치되고 15년 후에 鎭이 설치 되었으며 적진포 해전이 있고 19년 후의 일이다. 이것은 이곳을 수군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중요성을 인식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적진포에서 수군을 모집하고 남촌이라 불렀다는 것은 남촌진의 위치가 적진포 지역에 있다는 말이며 적진포는 남촌진의 관할 지역임을 말한다. 정리하면 진을 설치한 곳은 南村鎭이라 부르고 수군을 모집한 적진포를 남촌이라 불렀다는 말이다.


 


그 후 남촌진(화당)은 수군이 주둔하게 되고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차츰 큰마을을 이루게 되었다고 추정된다. 그렇다면 적진포는 지금 어디를 말하는가?


 


본인은 인근 마을 신용리 상원, 하원마을인 옛 신리라고 확신하며, 적진포 해전의 檄戰地는 화당일 가능성도 추정해 볼 수 있으나 상원, 하원은 고성읍과 맞닿는 가까운 경계지역으로 왜군이 고성으로 가기에 접근성이 용이하며 대동여지도에 남촌과 적진포가 분명하게 따로 표시 되어 있다.


 


5. 積珍浦의 語源과 地名比定  


積珍浦를 한자로 풀어보면 쌓을 積, 보배(돌) 珍, 개 浦로 借訓 표기되어 古代에는 “쌀돌개”라 불리었을 것이다.


 


 “살”은 계통의 지명으로 首의 뜻을 가지는 “수리”의 고어로 보며 예를 들면 쌀재(嶺), 살뫼(山), 살수(江), 설날, 서라벌, 정수리(머리), 수릿날(단오날) 등이다. “돌”은 “돌,  달” 계통의 지명에 邑里(村)나 산의 뜻을 가지며 <珍梁圓> 등으로 표기되어지며 또한 “돌”은 물을 뜻한다.


 


“돌”이 珍으로 Tm여진 예를 들면 蔚珍, 馬珍 馬突(진안군 마령면), 無珍山(광주 무등산), 碧珍(성주), 買珍리(거제 옛 진성현 무돌이) 등이다. “개”는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으로 개(浦)는 바닷가 마을을 나타낸다. 정리하면 積珍浦는首村(里)의 뜻으로 풀이되며, 古代에 촌락의 장이 다스리던 큰 마을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거류면 신용리 상원, 하원의 옛 지명 “新里”의 어원을 캐어보자. 신의 음은 “새”다. 고대어에서 “”가 여러 가지 의미로 새(新) 사이(間) 솔(松) 수리(首), 소(牛), 高, 上 등으로도 사용된 점을 고려하면 새(新)를
)로 보아 新里는 새마을의 뜻이 아니라 首村里의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上圓,下圓의 圓 “邑里”(村)를 뜻하는 “돌”의 표기이다.


 



즉 (積珍= 新里=上圓) 등식 관계가 성립하며 (積=新=上)으로 대응하며 (珍=里=圓)으로 대응관계를 나타낸다. 그리고 茂溪村역시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


 


결론적으로 積珍浦와 신용리 상원, 하원은 같은 뿌리(어원)를 두고 있으며 적진포 해전 지역은 적덕도 당동도 아닌 분명하게 신용리 상원, 하원 부근을 말한다.


 


6. 맺으면서


향토사는 그 고장의 얼굴이요 관광자원이다. 향토사에 관심을 갖는 것은 향토에 그만큼 애정을 갖는 것이라 생각한다. 향토 지명사는 재조명 되어야 하며, 향토사는 우리 손으로 찾고 지켜서 널리 홍보 하여야 한다. 끝으로 이 충무공의 호국정신을 기리며 신용리 상원, 하원 바닷가에 적진포 해전 勝捷碑라도 건립되었으면 한다.        <끝>


유홍렬(고성읍서외리) 기자 / 입력 : 2006년 05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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