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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밀 붕괴할 것이냐 부활할 것이냐” 붕괴에서 부할까지 우리밀의 역사는?

우리밀 살리기 발원지 고성군 마암면 두호마을 밀생산 줄어 미국 무상원조로 경쟁력 상실
고성신문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12년 10월 22일
ⓒ 고성신문

※ 이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았습니다.


 


글 싣는 순서
1. 사라진 우리밀 붕괴에서 부활까지
2. 우리밀 살리기 발원지 고성밀의 현주소
3. 제2의 녹색혁명 우리밀 살리기이다
4. 우리밀 생명환경농업과 연계육성해야



미국원조 PL480 우리먹거리 식민정책 시도 수입밀 정부가 기업 배불리는 자산으로 이용
정부 수매 중단  제2의 녹색혁명 우리밀 정책 허울뿐 고성군 올해 2천500톤 수매
우리밀 식량주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소비자 인식 낮아 품질 표준화 안돼 어려움
농민은 생산 정부는 수매 소비자는 구매 3주체가 안정돼야 밀 확대 이뤄져


 


밀은 우리민족의 중요한 먹거리였으며 서민음식으로 이용돼 있다.
지금도 우리나라 국민은 하루 한 끼를 밀가루 음식으로 먹는다. 그 중 99%는 수입산이다. 밀의 연간 소비량은 전체 곡물소비량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지만, 밀 자급률은 1%에 불과하다.
밀을 처음부터 수입에 의존했던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부터 국수, 밀가루 등 서민음식으로 이용됐던 밀은 한국전쟁 이후 현대사 질곡에 따라 자취를 감추게 됐다. 미국의 밀가루 무상원조(PL480)로 가격경쟁에서 밀리고, 기업의 자본 축적 수단으로 이용되고, 국가는 이들을 돕는 대가를 받아 배를 불렸다. 그러는 동안 밀은 사라지고 농민은 저곡가 정책에 시름하면서 농촌을 떠났다.


 


# 밀 산업 붕괴의 신호탄 미국 밀가루 무상 원조 ‘PL480’



한국전쟁 이후 한국이 기근에 시달릴 동안 미국은 연이은 풍작으로 농산물이 남아돌았다. 당시 미국은 자국 농민의 생산비를 보장하기 위해 밀을 수매했는데, 재고가 창고에 쌓여 태평양에 버리는 지경이었다. 그러자 미국은 ‘PL480’을 법제화했다. 잉여농산물을 해결하고 미국산 수출을 위한 국외시장 개척을 위해서였다. 이 법에 따라 한국은 1956년부터 무상원조를 받았다. 기아 상황을 극복하는데 도움은 됐지만 밀 생산기반은 점차 잃게 만들었다.
미국의 밀가루 무상원조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미국산 밀에 입맛에 길들이게 만들었으며 우리밀 산업을 붕괴시키는 결정적인 신호탄이 되고 말았다.



밀은 60년대부터 값싸게 수입되기 시작해 수입량이 1956년 20여만톤에서 1968년에는 100여만톤을 상회, 5배가 증가한다. 이런 가운데 1963년 시멘트와 밀가루, 설탕을 생산하는 기업이 가격조작과 세금포탈로 폭리를 취하고 정부가 이를 거액의 뒷돈을 받고 묵인해준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밀가루 정부 고시가격이 1부대당 370원선이었는데 시중시세는 1,200원까지 올랐다. 기업이 챙긴 금액만 100억원에 달한데다 1962년 흉작으로 식량난이 심각할 때 일어나 전 국민의 분노를 가져왔다.
이 사실은 1964년 1월 야당 원내교섭단체인 삼민회 박순천 의원의 폭로로 세상에 드러났고 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선 민주당 유창렬 의원과 삼성재벌 간의 싸움으로 번졌다. 당시 삼성은 밀의 수입업자와 가공업자로 선정돼 이같은 방식으로 자산을 쌓았다.



미국의 밀가루 원조는 우리 생각과 달리 ‘선의’가 아니었다. 미국내 밀 과잉생산으로 발생한 농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과 더불어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지역에 식생활문화를 서구화시킴으로써 장기적으로 미국 농산물 수출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결국 미국의 원조 밀가루는 국내 밀 산업을 붕괴 시켰고 수입 밀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 수입의존도 심화시킨 ‘분식장려운동’



정부는 밀 수입에 이어서 소비를 장려하고 국민의 입맛도 바꿨다. 1969년 분식장려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정부는 ‘국수 먹으면 키도 크고 머리도 좋아진다’, ‘쌀보다 영양이 많다’는 식으로 홍보에 열을 올렸다. 관공서 구내식당은 쌀밥을 짓지 못하게 했고 학교에서는 도시락 검사를 하면서 강력하게 이뤄졌다.
그렇다고 밀가루 음식 소비 촉진이 국내 밀 생산량 증가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효과는 고스란히 대기업과 미국 곡물기업에 돌아갔다. 1963년 ‘삼양라면’이 출시 돼 분식장려운동에 힘입어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수입 밀가루 소비가 촉진된 셈이다. 당시 저임금 정책유지를 위한 물가안정을 이유로 펼쳐진 저곡가 정책과 맞물리면서 농민은 도시로 떠났고, 도시 저임금 노동자는 라면을 주식 삼아 먹는 현상도 벌어졌다.
 
#  무너져버린 우리 밀, ‘밀 수매제도 폐지’


결정적으로 우리 밀이 사리지게 된 사건은 밀 수매제도 폐지이다. 정부는 1984는 밀 수매를 폐지했는데, 그 이유는 맥주 보리 수요증가에 대비 등을 위해서다. 하지만 당시 밀 소비가 보리 소비보다 많았다. 밀 수확기가 벼농사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였다. 모내기가 늦어지고 재배기간이 짧아 쌀의 생산량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밀 수매는 폐지됐다. 밀 수매 중단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해 온 밀농사의 종말을 의미한다. 이 땅에서 밀농사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밀 수매 중단으로 재배면적은 더욱 급격히 줄고, 자급률은 0.05%까지 하락하게 된다. 그 결과 1990년대 후반 IMF로 경제가 휘청이던 당시에 밀가루 가격이 70% 이상 뛰어올랐지만 꼼짝없이 수입해야 했다. 2008년 국제 곡물가격이 폭등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곡물가격 인상은 물가인상으로 이어져 그 몫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갔다.



또한 미국 밀은 60년대 후반 형성된 개발 독재시대에 수출드라이브 정책의 기반이 되었다. 기술과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 수출은 정부의 막대한 지원과 저임금에 기반을 둔 싸구려 상품의 생산으로 이루어졌다. 정부는 저임금 기반 확보를 위해 노동공급 과잉을 유도해야 했고 노동력 공급지인 농촌의 붕괴를 촉진시켰다. 결국 저곡가정책으로 농촌의 붕괴를 촉진시켜 이농하는 농민들이 노동시장으로 공급되는 시스템의 구축을 통해 산업화는 완성되어 갔다.
이렇듯 수입 밀은 입맛의 서구화로 식량의 대외의존도를 높였고 더불어 농업을 산업화의 제물로 만들었다. 우리밀이 사라져가는 동안 우리 농업 역시 쇄락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이에 미국 등 수입산 밀이 우리먹거리를 차지한 지금 우리밀을 살리자는 움직임이 다시 일고 있다.



농사는 1989년 몇몇 농민 운동가들의 무모한 도전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부침을 거듭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몇몇 농민 운동가들의 우리밀살리기운동이 시작된지 20여년이 지나서야 정부에 의해 자급률 목표가 발표되고 정책으로 편입됐다.
수매가 중단된 지 5년째 되던 해, 사라진 우리밀을 살려내고 식량자급의 기초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이에 1989년 고군 마암면 두호마을 24개 농가가 4만9천50㎡에 이르는 밀을 파종한 것이 계기가 됐다.이를 시작으로 1991년에는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가 창립됐다. 초기 16만 회원들이 36억원의 기금을 모아 5년차인 96년에는 2,787ha에서 1만932톤을 계약 생산하는데 성공했다.
진주 진양농협은 양돈액비 등을 이용해 거름에도 신경을쓰고 골을 깊게 파 비 비해를 줄이는 등 다양한 재배방법을 도입한 덕에 지난해 습해 피해도 받지 않아 우수한 품질의 밀을 생산했다.



청정지역인 진양농협에서  재배한 자가채종 종자를 경북 지역에 300포 가량 건네 전국 밀생산 보급에도 노력하고 있다. 이에 비해 보리 주산지였던 해남은 보리수매가 중단죄면서 5년전부터 밀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처음 밀을 재배한 농민들은 다양한 재배기술을 익히기 시작했지만 4년만에 재고량이 많다는 이유로 밀농사를 못하게 됐다. 이처럼 우리밀이 정부와 농협의 무관심과 전시농정으로 인해 갈팡질팡하면서 지속적인 생산 재배가 안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성지역도 올해 거류 마암 구만 등지에서 2천500톤의 밀을 수확해 수매했다. 정부와 농협의 밀 수매가 중단되어 있어 고성밀재배농가에는 내년에 밀을 심어야 할지 고민에 빠져 있다.


 


# 제2의 녹색혁명’ 우리밀 정책 미흡



정부의 밀 정책은 의욕에 비해 내용이 빈약하기 그지없다.
정부는 제2의 녹색혁명이라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제2의 녹색 혁명은 만만치 않은 장애에 부딪히고 있다. 국내 모든 농산물이 그렇듯 가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이 생산기반을 구축하는데 머물고 있다. 생산기반을 구축하여 가격을 낮추고 품질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생산기반확충만으로 수입밀에 비해 3배 가까이 비싼 우리밀과의 가격차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것을 극복하지 않는 한 소비확대가 어렵고 결국 정부의 자급률 10% 목표는 공허해 질 수 밖에 없다. 모처럼 정부가 주곡 자급에 대한 의지를 밝힌 것은 환영할 일이다. 고성신문은 우리밀 기획특집을 통해 밀 농사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고 미래를 전망해 보고자 한다.


 


/글=하현갑 편집국장 사진=김대진 기자



 


Tip… *PL480(Public Law 480)미국의 농업수출진흥 및 원조법으로 미공법 480호, 줄여서 PL480 이라고 한다. 미국의 정상적인 농산물의 대외수출에 일정량 이상을 더하며, 국제시장을 교란시키지 않는다는 2가지 전제조건에 따라 △현지통화에 의한 판매 △기근 등 외국구제 △국제적인 무상공여, 잉여농산물과 전략물자의 교환 기타 등의 항목으로 구분하여 수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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