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고성신문 | |
‘귀신잡는 해병대’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할아버지 아들 손자 3대가 모두 해병대
사단법인 해병대 고성군연합전우회 박성대 회장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까지 3대(三代)가 해병대 출신이다. 그렇게만 듣고 만나 알고 보니 이 남자의 큰외삼촌과 작은외삼촌, 외사촌형님까지도 해병대 출신이다. 이 집안에 도둑이라도 들면, 여차하면 도둑은 뼈도 못 추리겠다. (사)해병대 고성군연합전우회 박성대 회장의 집안 남자들은 온통 해병대 출신이다. “설이 지나고 이틀 후에 군대 간다는 말도 없이 진해훈련소엘 갔어요. 아버지께서 어디 가느냐 하시기에 해병대 입대한다고 했지요. 아버지께서는 평소 군생활에 대해 단 한 번도 말씀한 적이 없으셨는데, 훈련소 면회 오셔서 당신도 해병대 출신이라 하시더군요.” 경상도 부자답다. 면 지역 청년들은 방위, 읍 지역 청년들은 육군에 입대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해병대 입대가 징집과 지원으로 나뉘던 때다. 작고한 그의 부친 박상석 옹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0년대 초반, 51기로 해병대에 입대해 연평도에서 복무했고, 박성대 회장은 광주민주화항쟁이 일어나기 3개월 전인 1980년 2월 20일, 398기로 해병대에 입대해 포항에서 군생활을 했다. 부자가 나란히 해병전우가 됐다.
“아들이 해병 부사관으로 복무했습니다. 제가 해병 지원을 권한 것이지요. 처음엔 이 녀석이 조금 고민하는 것 같더니, 해병 전통을 따라 당당하게 입대하는 모습을 보고 뿌듯하기도 하고 감회가 새롭기도 했습니다.” 2004년 부사관으로 자원입대한 아들 박창욱 군은 해병대보다 편한 군 생활과 남자다움의 상징, 해병대를 놓고 꽤 고민했다. 그리고 곧 아버지와 같은 결론을 얻었다. 이왕 복무할 거라면 해병대로 입대해야겠다, 싶었다. 어느 부모가 아들이 고되길 바랄까 만은, 박성대 회장은 아들이 좀 더 단단해지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이로써 박성대 회장 집안의 직계 3대가 모두 해병대 전우가 됐다. 전국에서도 손가락에 꼽을 기록이다. “해병대는 규율이 엄하기로 유명하지요. 제가 복무하던 시절에는 얼차려로 불리는 기합이나 구타가 흔한 일이었습니다. 훈련도 고된 과정이었고, 특히나 복무기간동안 광주민주화항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전군이 비상시기여서 더 힘들었지요. 참 신기한 것이, 그런 고생을 하니 전우애가 더 단단해지더군요.”
해병대는 한 기수 선배가 하느님과 동기동창이라는 우스개 소리들을 흔히 한다. 그만큼 군기가 바짝 든 것이 해병대다. 군대는 철저한 계급사회고, 상하관계가 분명한 조직사회다. 해병대는 더하다. 하지만 박성대 회장은 참을만 하더란다. 복무기간도 당시 해군이 36개월이었지만 해병대는 30개월로 짧았고, 젊으니 이 정도 고생은 할 수 있다 생각했다. 조금은 딱딱해보이는 팔각모 안 정수리 앞으로만 남아있는 짧은 머리에 새빨간 이름표, 칼날 같이 줄 잡힌 군복 아래 새까맣게 그을린 팔. 강인한 해병의 상징이다. 팔각모에는 국가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며, 벗은 믿음으로 사귀고 전장에서 물러서지 않으며, 살생을 가릴 것, 욕심을 버리고 유흥을 삼가며 허식을 삼갈 것을 당부하는 신라 화랑도의 세속오계가 담겨있다. 빨간 이름표는 해병의 피와 땀, 약동하는 젊음을 조국에 바친 해병의 정신이 들어있고, 노란 이름은 명랑하고 쾌활하며 평화를 수호하는 젊은 해병의 정신이 들어있다.
“해병의 전통을 지키는 것은 인간됨의 기본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음은 고생해도 다음날이면 털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힘을 해병대에 쏟은 것이지요. 이왕 군 생활을 할 거라면 남자답게 해병대로 가야겠다,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입대했지만, 해병대로 복무하면서 배운 그 정신들이 아직까지도 엇나가지 않게 하는 기준이 됐습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해병대원들이 전역한 후 사회적 비난을 받았던 적이 있다. 참전용사로서의 대우는 비참하기 그지없었고, 평화를 위해 젊음을 불살랐음에도 남은 것은 상처뿐이었던 해병전우들이 그 상처를 풀 방법이 없어 제멋대로 사는 것이 만연하던 때다. 해병은 만들어지는 것이라 했던가. 상처 입고 사회로부터 버려진 후배들을 위해 선배 예비역들이 팔을 걷어붙였다. 해병정신으로 똘똘 뭉친 전우들은 이제 발 붙인 지역의 안전과 평화를 수호하는 전우회로 해병정신을 잇고 있다.
고성군연합전우회도 고성군의 굵직굵직한 행사마다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 군민 누구든 큰 행사가 있으면 길목에서 팔각모에 빨간 이름표를 달고 선글라스를 낀 채 호루라기를 부는 해병전우회를 만난다. 교통정리며 방범활동을 비롯해 후배 해병들을 방문해 위로하고, 환경정화까지 한다. 나라에 충성하기 위한 그들의 방법이다. “비록 현역 해병은 아니라도, 귀신 잡는 해병이 내가 뿌리 내린 이 작은 동네가 평화를 지킬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해병은 나라를 지키고, 해병전우회는 지역민을 위해 봉사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 봅니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아닙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