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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월남전쟁 때 사용돼 엄청난 후유증을 남긴 고엽제가 60년대 후반 한국에서도 대량 살포된 것으로 밝 져 충격을 주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의 월남전 파병은 1963년 9월 의무부대 130명과 태권도 교관 10명 파견을 시작으로 65년 9월 육군맹호부대 파병으로 이어졌고 1974년 4월 주월 한국대사관이 철수함으로써 파병 종료가 되었다. 주한미군사령부가 지난 68년 미국 화생방사령부에 보낸 ‘고엽제 살포작전 평가보고서’라는 비밀문서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68년 1.21 사태이후 ‘식물통제계획 1968’이라는 작전계획을 세워 한·미 합동으로 서부전선에서 동부전선까지 휴전선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 이남 민간인 통제구역 일대 2천200만평에 고엽제를 집중 살포했다는 것이다. 비밀문서는 한국 근무 당시 고엽제 때문에 임파선암이 걸린 주한미군 출신의 한 퇴역 군인이 미국정부를 상대로 보훈혜택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정보공개법에 따라 당시 주한 미군의 보고서를 입수함으로써 외부에 알려졌다.
고엽제는 청산가리보다 독성이 수천배나 강한 다이옥신 등이 포함된 화학물질로, 단 1g으로 성인 2만명을 살상할 수 있을 정도로 인체에 치명적이다. 그뿐이 아니다. 경북 칠곡군 왜관읍의 미군기지 캠프캐럴 주변에 고엽제 매립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하여 기지 내 하수에서 환경 기준의 1천~4천배가 넘는 발암물질 및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미8군 사령부가 6월 23일 공개했다. 고엽제의 심각성이 때가 늦지만 고엽제에 대하여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고 국제적인 이슈로 부각되기 시작하였다. 필자가 도의원을 역임하던 1999년 어느 날, 경남 월남참전 고엽제 후유증 전우회 오승렬 회장이 나를 찾아 온 일이 있었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만리타국인 월남까지 가서 생명을 내걸고 사지를 넘나들며 전쟁에 참여하였는데, 그때 고엽제에 노출되어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지만 국가에서 보상을 해주지 않고 외면하고 있다는 하소연을 하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공이 정글에 숨어서 게릴라전을 펼치자 우리 아군의 피해가 막심하였고, 이에 미군이 베트공의 은신처인 정글을 파괴하고 적을 노출시키기 위해 미군전투비행기로 공중에서 고엽제를 지상에 투하하게 되었다. 그때 우리 한국군은 고엽제가 지상에 투하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고 고엽제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고엽제에 대한 사전교육과 인식부족으로 인해 우리참전군은 고엽제가 녹아 흐르는 계곡의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면서 고엽제에 노출된 것이다.
인체에 흡수된 고엽제로 인해 일부 장병들은 피부가 손상되고 이로 인해 각종 질병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 유전자가 변이를 일으켜 2세까지 선천적·후천적으로 기형아가 되는 등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대책을 세우지도 않고 보상도 하지 않아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비일비재하다고 하소연하는 것이다.
그런 고엽제 단체들 중에서도 유독 경남 단체의 회장이나 회원들이 고속도로에서 집단 시위도 하고 결사투쟁을 하기는 했지만, 고엽제 전우회 중앙회의 결집력도 약하고 특별한 대책도 없다며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런데 나에게 찾아와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이들을 위한 도의회 차원에서 정책 수립을 해달라고 부탁했던 그 회장이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다. 나는 그분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창원병원 영안실로 달려가서 가족을 위로하고 그 자리에서 서울을 비롯한 전국의 고엽제 간부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청취하면서 도정 질의서를 만들었다.
필자가 1999년 3월 3일 도정 질의를 하는 날, 고인의 명복을 비는 뜻으로 검은 넥타이를 매고 고엽제 상주가 되어 의정 단상에 섰다. 의회는 이미 개회 전부터 경남 각 시군에서 차량과 깃발을 앞세우고 모여든 고엽제 전우들 때문에 앞마당은 물론 2층 방청석이 꽉 차있었다. 후일 동료의원으로부터 후일담을 들어보니 도지사가 이 사실을 알고 ‘저분들이 정부와 국회에 가서 떠들어야 하는데 왜 여기에 왔지’하고 의아해 했다고 한다. 나는 “국가의 부름을 받고 만리타국에서 전투를 하다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고 돌아온 충신인 그들에게 정부가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그들을 외면하였다면, 경남에서라도 지원 조례를 만들어 시행하도록 도지사가 앞장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많은 월남참전 용사들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병마에 시달리고 있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고통 받고 있으니 이들을 위해서는 경남도의 다각적인 정책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화학전의 전상자로 당연히 취급받아야 하며 고엽제 후유증 환자에 대해 정부 차원의 지원에 앞서 경남도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하며 도비는 물론 시, 군비 증액 편성과 자녀들을 위한 학자금 제도가 마련될 수 있도록 해 줄 것을 촉구하였다. 나는 이러한 문제는 국가가 근본적으로 제도적으로 보상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행스럽게도 그 다음해부터 경남도를 시작으로 고엽제 후유증시군지회에 예산 지원이 조금씩 시작되었지만 근본적으로 국제적 명망을 떨쳤던 월남참전의 쾌거의 주역인 우리 용사들에게 국가가 짊어진 과거의 빚은 청산하고 국민을 위한 또 다른 복지를 생각해 주면서 국가 미래를 건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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