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2025-06-25 23:30:43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원격
뉴스 > 칼럼

향토사학자 조현식 님을 기리다

이진만 논설위원
고성신문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11년 05월 27일
ⓒ 고성신문

필자의 고향은 고개만 넘어가면 되는 통영으로 고성에 정착한 지 30년 세월이 지났다. 옆동네다 보니 고향 운운하며 따질 것은 없지만, 누가 물으면 거리낌 없이

‘고성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가 되었으니 이제는 고성이 고향이나 진배없다. 고성의 흙을 밟고, 고성의 물을 마시며, 고성의 공기를 마시다보니 정신까지도 고성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고성의 역사를 공부하고 고성의 정신을 찾아다니게 되었다.



2005년에는 고성교육청의 위탁을 받아 고성의 인물사를 정리한 적이 있다. 그때 가장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은 향토사학자 ‘조현식’ 님의 자료였다. 당시, 놀랐던 것은 재야 사학자 개인의 업적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자료가 방대하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고성에 살아오면서도 고성 사람이라고 자부했던 필자에게도 님과의 만남은 충격이었다. 어쭙잖은 짧은 식견으로 고성을 잘 알고 있다고 큰소리 친 것이 부끄러웠다.



조현식 님의 향토 사학자로서의 업적을 다시 돌아보자. 부산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중에 향토사의 중요성을 깨닫고는 직장을 버리고 귀향을 했다. 이후 님은 1996년 76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40여 년간을 고성향토사 연구에 몰두하면서 잊혀져 있던 고성의 역사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냈다.



고성 땅 구석구석을 님이 밟지 않은 곳은 없다. 당시는 향토사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은 때였기에 님의 행동은 기행(奇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귀향을 한 것도 그렇지만, 교통도 불편하던 그 시기에 사료 수집을 한답시고 고성 곳곳을 돌아다니는 모습은 정상적인 사람의 모습으로는 보이지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의 멸시와 손가락질을 받으며 님은 고성과 관련된 옛 문헌을 뒤지고, 14개 읍면의 마을과 골짜기를 찾아다니며, 살아 있는 고성의 역사를 기록해 나갔다. 그 결과 1979년에 ‘고성민족운동사’를 발간한 것을 시작으로, ‘임진란 고성 십오 의사론’, ‘소가야의 맥에 대한 재고찰’, ‘왕조실록 고성사료’, ‘고성문화재 총서’, ‘고성읍면 연혁’, ‘향토수호와 당항포해전’, ‘옛 영역의 역사를 찾아’ 등 총 16권의 향토사료집을 발간하였다.



평생 한 권의 저서도 내기 어렵거늘 님이 발간한 16권의 향토사료집을 보면 님의 살아온 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가 있다. 당시는 지금처럼 컴퓨터가 있던 세상도 아니고 겨우 줄판(가리방)으로 긁어 인쇄를 하던 시대였다. 그러기에 책을 발간한다는 것은 그만큼 공이 들고 힘든 시대였다. 님은 어렵게 발굴한 사료들을 일일이 공책에 적어 베끼고 줄판으로 긁어야 했다. 책 발간도 군비나 사회단체의 지원도 제대로 되지 않아 사비를 털어서 했다. 어렵게 모은 재산을 모두 털어 의로운 일에 쓰는 사람이 쉽지 않은 요즘 세태를 보면 님의 고성과 향토사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얼마 전에 철성고등학교 교정에 자신의 모든 재산을 바쳐 지역 교육에 헌신한 재성학원 김재익 옹의 흉상이 세워졌다. 또, 고성고등학교에는 고속도로에서 구조 활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은 의사자 천찬호 씨의 추모비 제막식도 있었다. 의인(義人)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를 바라고 일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런 분들을 찾아내어 자라나는 세대의 사표(師表)로 삼아야 하는 것이 후배들이 할 일이다. 그러기에 고성과 고성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조현식 님의 업적을 다시 되새기고 그 정신을 후손들에게 남겨야 할 것이다.



불행히도 필자가 고성에 오고 한동안 같은 지역에 살았음에도 그 분 생전에는 먼발치에서만 몇 번 보았을 뿐 한 번도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없다. 이후 남긴 자료를 보며 우리가 님의 공로를 간과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고성 역사를 정리한 큰 업적을 남기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이름조차도 나이 드신 지역 토박이 어르신들이나 알 뿐 젊은 세대는 아예 모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조현식 님은 누가 뭐래도 고성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고성의 과거와 현재를 알며, 미래를 예견한 진정한 고성 사람이었다. 남산 한 귀퉁이도 좋고 문화원 마당이라도 좋다. 크지 않아도 좋다. 지역의 후배들에게 존경의 자리가 되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귀감이 될 수 있게 그 분의 업적을 기리는 작은 비석 하나라도 있으면 좋겠다.



 

고성신문 기자 / kn-kosung@newsn.com입력 : 2011년 05월 27일
- Copyrights ⓒ고성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름 비밀번호
개인정보 유출, 권리침해, 욕설 및 특정지역 정치적 견해를 비하하는 내용을 게시할 경우 이용약관 및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포토뉴스
가장 많이 본 뉴스
만평
상호: 고성신문 / 주소: [52943]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로123-12 JB빌딩 3층 / 사업자등록증 : 612-81-34689 / 발행인 : 백찬문 / 편집인 : 황수경
mail: gosnews@hanmail.net / Tel: 055-674-8377 / Fax : 055-674-8376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남, 다01163 / 등록일 : 1997. 11. 10
Copyright ⓒ 고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함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백찬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