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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밤마냥 박박 깎은 머리에 교모를 턱 눌러쓰고, 절대 카메라는 보지 않는다. 큰북 작은북 트럼펫 트롬본 튜바에 지휘자까지 구색은 다 갖췄다. 지휘자 선 님마저도 카메라는 못 본 척.
경남항공고등학교가 고성농업고등학교이기도 더 이전에 고성농업중학교가 있었더랬다. 6년동안 한 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거쳐야 하던 시절이다. 일제강점기를 막 벗어나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힘겹던 시절이었다.
고성농중에서 음악 좀 듣는다 싶은 까까머리 남자아이들을 눈여겨본 선생님이 ‘헤쳐모여’를 명했다. 각자 악기 하나씩을 할당받고 한껏 폼을 재며 사진을 찍었다. 귀엽고도 거창한 이름도 있었다. ‘부라스밴드’.
지금이야 세련된 영어로 Bros. Band라고 했겠지만, 일본식 영어도 감지덕지 휘황찬란해 보이던 시절이 아닌가. 브로스가 부라스로 둔갑을 했다. 그러고 보니 부라스밴드는 형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똑같은 알밤머리에 낡은 교모를 쓰고, 낡은 교복 자켓에 하얀 핫바지를 입혀놓으니 생긴 것도 똑같아 보인다.
짝다리 짚고 선 트롬본 연주자에 뒷통수를 맞대고 하늘을 향해 선 트럼펫 연주자, 사진 한 장 박는다고 잔뜩 긴장해 한 손으로 부는 척만 하고 한 손은 차렷한 트럼펫 연주자에 다리를 꼬고 외로 선 튜바 연주자, 지휘봉을 참으로 성스럽게 쥐고 경건하게 선 지휘자…그 면면이 참 귀엽고 재미나다.
지금이야 웬만한 오케스트라 부럽지 않게 화려한 구성을 자랑하는 학교 관악부지만, 이 열댓 명의 단원만 단출하게 꾸려진 부라스밴드도 그 시절엔 선망의 대상이었고, 부러움과 질투가 뒤섞인 눈빛을 받았을 게다.
1948년 10월에 부라스밴드 창단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니 이 열한명의 까까머리 동무들은 이제 줄잡아 70대 후반 80대 초반에 들어섰겠다. 더러는 세상을 뜨기도 했을 것이고, 또 몇몇은 아직도 건강하고 활기찬 화려한 황혼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부라스밴드가 다시 뭉친다면 어떨까 생각해보니 그것도 꽤나 멋진 일이겠다 싶다.
* 부라스밴드 단원이었거나 아시는 분은 고성신문(055-674-8377)으로 연락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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