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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文化)란 무엇인가? 문화의 개념은 너무나 다양하여 칼로 자르듯 말하기는 어렵다. 전통적 의미에서의 문화란 일반적으로 예술이라 불리는 작품 활동이나 실천 행위를 말하며, 더 넓게 말하면 예술을 이해하는 행위까지 해당하며, 가장 넓게는 한 인간이나 시대 또는 집단의 특정 생활 방식을 말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생활 습속이나 주거 환경과 옷차림까지 모든 영역이 문화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문화란 특정층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클래식 음악이나 듣고 오페라나 보는 것이 문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먹고 살기도 바쁜 현실에서 문화 운운하는 것 자체가 호사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인간의 삶 자체가 문화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단순하고 무지(無知)한 생각이다.
이처럼 문화에 대한 인식이 낮다보니 문화를 창작하는 전문 예술인에 대한 제대로 된 예우는 생각할 수도 없다. 연초에 지역의 기관장과 사회단체장의 모임이 있어 참가한 적이 있었다. 행사장 앞에는 기관장과 정치인들을 위한 특별석(?)이 준비되어 있었고, 사회단체장들은 뒤편에 자리가 있었다. 그런데 문화원장의 자리가 명패도 없이 일반 사회단체장 자리에 섞여 있었다. 기가 차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물론 문화원의 지위가 이처럼 천대받는 이유를 꼭 외부에서만 찾을 것도 없긴 하다. 전문 예술인들이 이끌어가야 할 문화원 구성원에 일부 전문성이 없는 지역 유지들로 채워져 지역 문화를 대중화하는 역할을 제대로 못함으로 스스로 격을 떨어뜨리는 자충수를 두기도 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문화원장의 예우는 갖추어 줘야 한다.
문화원장이 누구인가? 문화원장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며 지역의 큰어른이 맡아 하는 자리다.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행사장에 가면 문화원장은 최소한 기관장의 옆자리였다. 그만큼의 예우를 받았다. 기관장이 바뀌거나 정치가가 지역을 찾으면 우선적으로 문화원장에게 인사를 가는 게 예의였다.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지역의 문화를 책임지고 계신 분이 그런 대접을 받는데, 일반 문화인의 예우는 말해 무엇 할까?
문화의 중요성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한 나라의 문화가 사라지면 민족이 없어지고, 문화가 없어짐은 인간의 삶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기에 역사적으로 볼 때도 침략자들은 남의 나라를 빼앗으면 가장 먼저 피지배국의 문화를 없애는 일부터 시작했다. 일본만 해도 ‘민족말살정책’으로 우리말과 글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여 우리 문화 전체를 없애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만큼 중요한 문화를 지금의 우리는 너무 가볍게 여기고 있다. 얼마 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7호인 고성오광대 기능보유자이신 ‘이윤순’ 옹이 향년 93세로 세상을 떠나셨다. 고인은 지난 1960년 고성오광대에 입문해서 1971년에 고성오광대 기능 보유자로 인정받았고 말년에는 명예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이윤순 옹의 지역 사랑과 문화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다. 고성의 문화를 대표하는 ‘고성오광대’의 기둥을 세우신 분이시다. 몰티 뒷산의 도독골 산기슭 잔디밭에서 시작된 오광대놀이를 ‘모두가 보고 어울릴 수 있는 광장’으로 이끌어내신 분이시다. 오늘날까지 오광대놀이가 남아 있는 곳으로는 우리 고성을 비롯하여 다섯 군데를 꼽을 수 있는데, 그 중 고성오광대가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이윤순 옹을 비롯한 초기 회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윤순 옹의 별세를 맞아 ‘인간문화재’라는 사회적 가치와 그 분이 지역과 예술계에 미친 정신적 영향을 고려하여 고성오광대에서는 ‘문화장’을 치렀다. 이윤석 고성오광대보존회장과 한국탈춤단체 총연합회장 한우성 회장이 장례위원장을 맡고, 전국의 전통문화단체가 참여하여 마지막 예능보유자의 가시는 길을 함께 했다.
그런데 뭔가 아쉬운 것이 있었다. 고성오광대는 고성 군민의 자랑거리라고 외치던 정치나 행정은 그 자리에 없었다. 관계자 한두 명은 와서 행사 진행을 지켜볼 만하건만 행사가 끝날 때까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결국 고성오광대 문화장은 예술인들과 일부 군민들만 참여한 모습이 되어 버렸다.
선거철이면 이름도 잘 모르는 일반인의 상가(喪家)에도 얼굴을 내밀던 정치인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 고성오광대가 고성인의 자랑이라고 외치던 행정 관계자들은 그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우연의 일치겠지만 모두가 다른 급한 용무가 있어 참석이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이해를 하는 것이 고인을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이 될 것 같다.
그 분은 화려하게 박수 받고 떠나길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로지 고성을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시고,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셨기에 후배들과 지인들의 눈물만으로 충분히 자신의 삶을 보상 받으셨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승을 떠나셨을 것이다. 다만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문화보다 정치나 행정이 우대받는 세상만은 바뀌기를 원하지는 않으셨을까 싶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