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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가까워져 오니 물가가 올라 서민들은 차례 준비에 더욱 힘이 든다고 한다. “이 힘든 제사를 왜 모셔야 하느냐?”고 물으면 일반 국민은 물론 유학(儒學)을 전공한 학자들도 여기에 대한 명쾌한 논리적인 답변을 들어보기 어렵다. 나이 든 50~60대 이상 사람들의 답변은 조상숭배를 거론하고, 집안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제사를 모시면 친척이 화합하게 되고 더 가까워진다고 한다.
그러나 신세대들은 오히려 제수 준비와 손님 접대 등 갈등과 스트레스 때문에 병원 신세를 지는 일이 많다고 아우성이다. 제사의 주체인 신(神)의 유무와 귀신의 실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변은 들어보기 어렵다.
지금은 제사 문화 의식이 많이 쇠퇴 됐지만, 동양 유교사상 나라 중 우리나라처럼 제사를 철저히 모시는 나라도 없다. 중국은 유교사상의 발원지이지만 현재는 옛날 도교의 발생지역에서 변형된 불교 의식과 유사한 형태로써 모시는 절차가 남아 있다. 일본도 지역에 따라 유사한 의식이 남아있다. 우리나라는 유교가 아닌 심지어 불교, 기독교와 같은 타 종교에서도 의식은 다르지만 제사를 모시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왜 모셔야 하는지 합리적인 이론을 가진 사람을 만나보기 어렵다. 조상숭배의 인습으로써 선조들은 제사를 각 가문마다 가례집(家禮集)까지 만들어 의식화 해 온 것이다.
원론적인 정서에서 보면 사람이 아닌 동물인 소, 개도 새끼나 어미가 팔려가거나 죽어서 서로 떨어지게 되면 찾아서 울고, 먹지도 않는다. 사람도 어릴 때 순수한 마음은 그런 상황을 보면, 눈물을 흘리고 안타까워한다. 그런데 하물며 자기 부모가 아프거나 죽게 되면 인간 본심을 가진 자는 슬퍼하지 않을 수 없다. 성장하면서 모든 사물에 사역(使役)되어 순수한 본심의 감정마저 잃게 된 것이 현대인이다.
정신적으로 확고한 신념의 사상을 가지지 않으면 본심인 선심이 사물에 의해 흐려지게 된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물질만능주의에 동화되어 인간 본성을 잃고 물질적인 재산문제로 타인은 물론 심지어 부모, 형제간에 싸우기도 한다. 때로는 최악의 극한상태까지 되어 사회적 최대보류인 법 앞에까지 가게 되는 일이 많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제사의 신위(神位) 앞에 설 자격이 없다.
유학에서 제사가 거론된 것을 보면, 공자 제자 안연(顔淵)이 죽은 후에 계로(자로)가 공자께 귀신 섬기는 것을 물었다. 공자께서 대답하시기를 “사람도 잘 섬기지 못하면서 어떻게 귀신을 섬기겠는가?” “문사귀신? 미능사인, 언능사귀(問事鬼神? 未能事人 焉能事鬼)” 라고 하셨다. 또 “감히 죽음에 대해 묻습니다”라고 하자 “삶을 모르면서 어떻게 죽음을 알겠는가?” 감문사? 미지생, 언지사(敢問死? 未知生 焉知死)라고 하셨다. 여기에 공자와 계로의 문답을 보면 제사를 왜 모셔야 하는지 잘 알 수 있다.
또한, 귀신이 무엇인지도 잘 알 수 있다. 윗글의 주석(註釋)에서는 문사귀신(問事鬼神)?은 ‘제사를 모시는 뜻을 구하는 것’ 이라고 했다. 이 말을 해석하면 제사는 귀신을 섬기는 의식이고, 또한 조상들의 혼령을 모시는 것이다. 그래서 위대한(군자, 영웅) 사람들의 굳은 의지의 영혼은 후세에까지 남아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지주(支柱)가 된다. 따라서 위대한 사람들의 출생, 사망일에 의식(儀式)을 가지게 된다. 일반 중인(衆人) 혼령의 자애로운 사랑은 후손들 가슴 속에 남아 제사로 추모하게 된다.
제사는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이것을 해석해 보면 현재 우리들의 제사 의식은 주객이 전도된 하나의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 존엄성을 위한 본래의 뜻은 없고, 제사의 의식 행사만 가지고 왈가왈부하며 500년을 다투어 왔던 것이다. 생전에 부모님께 도리를 다한 사람만이 제사의 신위(神位) 앞에 설 자격이 있다. 의식(儀式)행사 위주로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본심으로 돌아가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도리를 다할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음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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